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음악 실기시험 때, 음악 선생님이 하신 말이다. 그때 1인 1악기를 배워서 연주해야 했다. 대부분의 아이가 단소를 선택했다. 나도 단소를 선택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겉멋만 들었던 나는 기타를 선택했다. 그리고 반에서 기타를 잘 치는 아이들에게 기타를 배웠다. 드디어 실기시험날, 내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떨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랬어야 할 것 같다) 연주를 시작했는데, 바로 선생님이 멈추라고 하고선 하신 말이 "어, 조율이 안 되어 있는데, OO아 조율 좀 해주렴'이었다. 난 속으로 '응? 조율이 뭐야? 뭐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 기타를 치면서 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다. 기타를 연주한 게 아니라 그냥 기계적으로 코드를 집고 손을 움직이기만 한 것이다.
'왜 오빠는 부를 때마다 음정이 달라져요?'
대학교 때 풍물패를 했었다. 동아리방에서는 민요를 많이 불렀다. 1학년 때 배우는 민요는 참 서정적이면서도 구슬프기도 하고 뭔가 마음속 깊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2학년이 되어서 후배들이 들어오고 후배들에게 민요를 불러주며 가르쳐줬다. 사실 노래를 못하는 걸 알기 때문에 나보다는 친구들이 거의 가르쳐졌다. 3학년이 되어서야 후배들한테 노래를 가르쳤다. 민요를 불러주고 있는데 어느 날 한 후배가 "왜 오빠는 부를 때마다 음정이 달라져요?"라고 말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음정이 바뀐다고? 음정? 그게 뭐야? 그 후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왜 내가 노래를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어떤 음인지 높은지 낮은지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내는 음정이 그 노래와 어울리면 그때는 들을만한 노래가 나오는 것이고, 어울리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었다. 난 그걸 몰랐다. 그땐 전혀 몰랐고,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어 이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쟤 또 자냐? 분위기 파악 못 하네 진짜 꼴불견이다.'
노래를 못하는 나에게 노래방은 정말 최악의 장소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찌나 노래방을 좋아하는지. 대학교 때 술자리는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젠장. 술을 마시다가-난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노래방에 간다는 말이 들리면, 그때부터 난 술을 들이켠다. 몇 잔을 연속으로 마시면 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이건 여담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 술버릇은 너무 좋다. 자다가 일어나서 집으로 잘 간다. 술 취한 나를 집에 가라고 하면 참 좋은데, 가끔은 굳이 노래방까지 데려간다. 아니 부축하며 끌고 간다. (이때는 술기운에 몸을 가누지 못하지만, 정신은 그래도 말짱하다) 노래방에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가장 구석자리를 찾아서 그대로 눕는다. 그리고 잠들어버린다. 노래방에서 잠만 자다 나온다. 가끔 중간에 깰 때가 있지만, 그럴 때는 계속 자는 척을 한다. 그럴 때면 으레 듣게 되는 말 "째 또 자냐? 분위기 파악 못 하네 진짜 꼴불견이다.", "쟨 왜 저러냐?" 때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른 척한다.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그때 깨면 서로 어색해질 테니깐, 사실 그보다는 깨면 노래를 해야 하니깐 자는 척할 수밖에 없다.
'이건 무슨 음일 까요?'
5~6년 전쯤 한 모임에서 엠티를 갔다. 거기서 얘기를 하다가 음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한 사람이 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침 거기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다 같이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순서대로 친다. 그리고 한 음을 친다. "이건 무슨 음일까요?" 다들 "파"라고 하는데, 난 모르겠다. 확실하게 아는 것은 도와 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순서대로 친다. 각각이 다르다는 것은 이제 안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를 치고 "이건 뭘까요?"라고 물으면 난 모른다. 그날 몇 번을 했는데, 한 번도 맞추지 못했다.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길과 그녀를 부럽게 쳐다보는 나의 눈길이 서로 부딪혔다가 헤어졌다.
음악에 대한(뭐 대부분은 노래에 대한 것이지만) 흑역사는 너무나 많지만, 이쯤 해도 충분할 것 같다. 더 쓰면 찌질해 보일 것 같다. (글로 쓰기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도 있다) 난 정말 음정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심각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음악 시간이 싫었고, 노래방을 좋아하는 사회가 싫었다. 대학생 때 이후로 술자리는 곤욕이었으며,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회식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회식하고 헤어지면 되는데, 왜 굳이 2차로 노래방을 갔다가 3차까지 가는 건지? 듣는 음악은 좋아했지만, 노래나 악기처럼 내가 표현해야 하는 것은 싫었다. 노래를 못하는 나에게 음악은 정말 적이었다. 그런 나에게 바이올린이 오티움이라니 참 놀라운 일이다. 역시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며, 알 수 없기에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티움 : 결과를 떠나 활동 그 자체로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뜻하는 라틴어로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책 '오티움'으로 유명해졌다. 참 좋은 책이다.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2)악기 찾아 삼만리에서 계속
적당한 그림을 그리려다가 글에 맞춰 가사를 써봤다. 큰 아이가 피아노를 치며 작곡을 했다. 아빠 작사, 아들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