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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15. 2021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2)악기찾아 삼만리

40대 아저씨의 바이올린 세레나데

음악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었던 때론 음악이 나를 배척하고, 싫어하는게 아닐가? 라고까지 생각했던 나지만 - 아니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무척 부러워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악기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하모니카이다. 어렸을 적에 동네에 하모니카를 잘 부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을 참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따라다니면서 배워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으나 당시의 나로서는 배울 수 없는 악기였다. 음을 도저히 모르니 입에 닿는 부분의 위치로 음을 내는 그것은 나로선,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악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김광석인데, 그의 목소리와 노래도 좋거니와 기타를 치는 사이에 들려오는 감미로운 하모니카 소리가 매력적이다. 내가 김광석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하모니카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그 당시 대부분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문득 내가 다닌 시골 학교에서만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리코더를 배웠다. 내 기억으로 리코더는 곧 잘 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짐작건대 한 음과 그 음에 해당하는 손가락 위치를 기계적으로 잡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리코더는 시시한 악기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아마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음악 시간마다 연주를 했었고, 음악 시간은 내게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고, 재미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리코더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왕벌의 비행(맞나?)을 연주하는 공군군악대원을 보고 나서야 리코더가 대단한 악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리코더는 나와는 거리가 먼 악기가 되었다.


리코더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고등학교 때 실기시험 악기를 선정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친구가 단소를 선택했고 소수의 친구가 기타를 선택했는데, 난 그 소수의 무리에 끼기로 한 것이다. 사실 기타를 치는 친구들이 멋져 보였다. 리코더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난 겉멋이 들어 있었다. 기타를 배우는 것은 도전이라는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행위였지만, 실기평가라는 관점에서는 완전 실패였다. 실기평가 당일 "조율이 안 되어 있는데"라는 말을 듣고서야 조율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정말 심한 음치다.) 하모니카를 포기해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기타는 내겐 너무 어려운 악기였다. 젠장. 군대를 갔다 오고, 동아리방에서  선배가 기타를 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C코드와 Am코드 바꿔가며 치는 순간에 음이 달라지는 것을 알아챘다. 기타를 배운다고 기웃거리며 만진 지 7년이 되어서야 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정도였으니. (방백 : 아고야, 쓰다 보니 참 징하다) 하모니카와 기타를 그렇게 치고 싶어 하면서도 못 치는데 그 두 가지를 잘 하는(게다가 노래까지) 김광석을 좋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난 것인데, 내가 풍물을 좋아한 이유가 아니 계속 할수 있었던 이유악기 자체에는 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뭐랄까 쉽게 익힐 수 있고, 대학생활을 하는 내내 했었는데)

 

한동안 악기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이다. 어느 날 공문이 왔는데 교사 대상으로 '오카리나' 직무연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 공문을 보자마자 시간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바로 신청을 해버렸다. 앞뒤 재지 않고 신청을 한 것을 보면 1개의 악기를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했던 것 같다. 아, 시기상 몇 년 전에 음악을 전공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오카리나를 알려준다고 해서 오카리나를 사둔 게 있었다. 그래서 오카리나 연수를 바로 신청했던 것 같다. 1월에 먼 곳을 오가며 배웠다. 하루 3시간씩, 오카리나 책도 사고 그때 받은 악보도 있다. 아마 어딘가에 있을 텐데. 배울 때는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연수가 끝난 이후에 혼자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며칠 가지 않았다. 오카리나는 리코더의 변형 버전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한 개의 악기를 배우고 싶긴 하지만,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 소리가 참 곱고 예쁘고 멋지지만, 떨림이 전해지진 않았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오카리나를 떨어뜨려서 두 조각이 났다. 계속하고 싶었으면 새로 샀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담임하던 어떤 해에, 반에 아파서 며칠 동안 학교에 오지 못한 친구가 있었다. 그때 반 아이들 몇 명과 함께 그 친구 집에 방문했었다. 그때 그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마침 같이 간 친구 하나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 피아노를 치는 남자라니. 피아노를 치는 남자가 멋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종종 남자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피아노는 내게 너무나 먼 악기였다. (시골에서 살아서 피아노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배우기는커녕 만져보지도 못한 악기였다.) 그날 피아노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큰 아이는 6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먼저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래층에 피아노 학원이 있었고, 거기를 지날 때마다 기웃기웃 관심을 가지더니 한글을 떼자마자 다니기 시작했다. 이왕 배우는 거 집에도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피아노를 하나 장만했다. 비록 디지털 피아노로 저렴한 것이지만, 집에 피아노가 생겼다. 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다.


그즈음 난 학교를 옮겼다. 그 학교에는 1년에 2번 사제동행 작은 연주회를 개최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플룻을 배우는 선생님들이 여럿 있어서 플루트동아리가 있었고, 첼로를 배우는 선생님도 있었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연습해서 연주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소규모 오케스트라라고 할까? 학교 현관 입구에서 연주가 진행되었다. 첼로, 플루트을 비롯하여 여러악기(아 기억이 안난다. 지못미)가 있었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있었다. 음악 소리는 아름다웠는데, 내 눈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두 명의 여학생에게 고정되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연주회가 끝난 후 바이올린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날은 바이올린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 날이다.


그 이후에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신이치와 메구미의 악기에 대한 이야기. 신이치는 전공이 바이올린이고, 노다메는 피아노다. 드라마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계속 보여준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관현악단이나 피아노 공연을 보러 다녔던 것을 기억해 냈다. (비록 그땐, 티켓을 가져오면 음악 실기 가산점을 주는 게 있었긴 하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싫어하는 것을 그렇게 열심히 따라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숙제도 잘 안 하던 나였는데)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고, 바이올린도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두 악기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내가 배워 본 악기들이다. 그 중에 바이올린에 와서야 정착하게 되었다.

*오티움 : 결과를 떠나 활동 그 자체로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뜻하는 라틴어를 뜻하는데,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책 '오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3)그래 너로 정했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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