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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19. 2021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3) 그래 너로 정했어.

40대 아저씨의 바이올린 세레나데

마음속에 2개의 악기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남았다. 피아노에 먼저 도전을 했다. 집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이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피아노가 바이올린보다는 심리적 거리감이 더 가까웠다. 오해 마시길 상대적으로 가까웠다는 말이지, 피아노가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를 어떻게 배울까? 먼저 떠오른 것이 아이가 다니는 음악학원이었다. 학원비를 결제하며 넌지시 물어봤는데, 아이들과 비용이 똑같았다. 가족 할인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없었다. 너무 비쌌다. 사실 당시에는 피아노 학원이 가장 싸다는 것, 매일 가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것들을 몰랐다.(이런 바보) 만약 이때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더라면 아마 오티움이 피아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 아니겠구나. 마음속에 바이올린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것을 해보려고 아등바등거렸을도.(사실 100퍼 그랬을 거다)


다음으로 이마트나 홈플러스의 문화센터를 알아봤다. 학원이 1개월에 15만 원인데, 문화센터는 3개월에 13만 원이다. 우와~ 최고다. 엄격하게(대충 하더라도) 보면 시간 대비 따지고 보면 1개월 15만 원이 훨씬 싼 건데, 문화센터는 매일 학원에 가는 것이 힘든 성인들을 위한 자리라서 그런 건데, 나처럼 악보도 못 보는 음악에 완전 문외한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걸 몰랐다. 육아휴직 기간이라 시간은 되었지만, 돈은 충분하지 않았기에 되도록 싼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문화센터를 등록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다. 음악학원에 등록해서 기초부터 제대로 배웠어야 하는 건데) 드디어 배우러 간 첫날. 7개 정도의 디지털 피아노가 한쪽 벽면에 1열로 쭉 늘어져 있었고, 한 명당 1자리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은 채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이 한 명씩 돌면서 가르쳐주고, 교정해주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드디어 내 차례, '어느 정도냐?', '쳐본 적은 있느냐?', '어떻게 오게 되었냐?'등의 질문을 하셨고, '배운 적도, 쳐본 적도 없다. 악보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알긴 한다.',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등의 대답을 했다. 피아노를 치는 기본자세나 운지법 등을 알려주시곤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첫날인지, 두 번째 날인지 모르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몇 번이라도'라고 대답했다. 그다음 주부터는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이론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을 기대했었는데, 아무래도 성인반이라 그런 것인지. 어느 한 곡을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강습이 진행되는 듯했다.


악보를 보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그것부터 헤맸다. 악보를 볼 줄은 안다. 다만 오래 걸릴 뿐이다. 한눈에 "파솔라 파도~라 솔 도솔 "이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도레미) 파솔라파(솔라 시)도~라 솔 도솔"뭐 이런 식으로 짚어가며 익혀야 할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흑흑) 피아노의 가장 큰 장점은 음이 맞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냥 나는 음을 정확히 짚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게 문제지만) 나 같은 음치에게 이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아니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피아노의 단점은(나에게 있어) 오른손과 왼손이 다른 음을 친다는 것이다. 양손이 다른 음을 친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법이고, 오른손 먼저 익숙해지면 왼손을 익숙하게 하고 그런 다음 양손을 더듬더듬 쳐가며 익숙하게 하는 그 과정이 너무 생소했고, 어색했고, 어려웠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단점은 내가 바이올린으로 넘어가는데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였다.


그래도 참 신기한 게도 3개월 동안 꾸준히 배우다 보니(여기서 배움은 꾸준한 연습을 포함한 것)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오른손 멜로디를 정확하게 짚으면서 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지금도 가능하다. 하핫) 왼손은 버벅대면서 정말 힘들게 더듬더듬 거리면서 칠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으로 다 연주한 날 어찌나 뿌듯해했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제 두 손을 합칠 차례. 위아래 악보를 보아가며(아 악보도 따로 봐야 했구나, 으악, 떠올리는 순간 너무 싫다. 양손을 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악보를 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왼손을 기준으로 동시에 누르는 것, 오른손만 누르는 것, 왼손만 누르는 것을 연습했다. 마치 오래돼서 무너지기 직전인 다리를 조심스레 건너는 것처럼 한 건반 한 건반 확인해가며 치느라 긴 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근데 역시 꾸준히 하면 안 되는 게 없다. 매주 교정을 받고, 노하우를 얻은 다음, 집에 와서 그것을 연습하고, 하루에 두 번씩 어떻게든 끝까지 연주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손에 익었다. 완주하는데 7분이 넘게 걸렸었는데, 그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인식했을 때의 쾌감이란. 문득 든 생각인데(여담이지만, 난 글을 쓸 때 느끼는 이 '문득'이 너무나 좋다. 이 '문득'이라는 통찰은 내가 글을 계속 쓰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라는 곡명과 참 어울리는 연습 과정이다. 몇 번이라도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좋아지더라. 왠지 그런 것 같다.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어, 이제 노래같이 들리는데. 잘 치는걸?"이라고. (훗 나 피아노 치는 남자야.)


피아노를 배우던 나를 생각하며 그려보았다. 악보는 '언제나 몇번이라도'를 대충 그린 것이다.


아마 그때 계속 배웠더라면 지금쯤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칠 수 있었겠지? 그때 문화센터가 아니라 음악학원에 등록했더라면? 또는 좀 비싸더라도 개인 교습(바이올린처럼)을 신청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도 간간이 그때 멈춘 것이 아쉽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바이올린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방법으로 피아노를 배웠는가에 상관없이 아마 바이올린으로 넘어갔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센터가 3개월이 끝나갈 즈음, 난 바이올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레슨비를 알아봤고, 악기 가격을 알아봤고, 무엇보다 지금 시작해도 될지 알아봤다.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했다. (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하려고 하는 질문은-그 질문이 정상적(?)이라면-반드시 누군가가 했다) "나이 40에 바이올린을 시작해도 될까?" 그런 키워드로 검색을 했고, 역시나 있었다. 답변들로는 "어렵지만 배울 수 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게 좋다." 등등의 긍정적인 답변들이 다수였다.


평소 나의 인생관은 "어차피 시간은 간다"이다. '지금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 적용해보면 늦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나만의 명언이다. 지금 배우건 안 배우건 시간은 간다. 배우고 보낸 10년과 안 배우고 보낸 10년은 그 결이 다를 것이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 로망,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배우기로 했다. 개인 레슨은 보통 4만 원씩 받는 것 같다. 그 당시엔 숨고를 몰랐었다. 숨고를 알았더라면 집에서 편하게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어찌 보면 그게 다행일지도) 대부분의 학원이 16만 원(1시간 4만 원, 한 달 기준)이었다. 그러다가 14만 원으로 레슨을 하는 한 곳을 찾았다. 와 심봤다. 거기로 정했다. 전화해서 악기는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고 문의했고, 원장님은 "세계 악기사"를 알려주셨다. 거기서 입문자용 악기를 사면 된다고 했다.


악기를 사러 갔던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벽에 걸려있는 무수히 많은 바이올린. 10만 원부터 시작해서 몇 백만 원까지 붙여있는 꼬리표들. 사장님께 입문자용 바이올린을 사러 왔다고 했다. "아이가 몇 살이죠?"라고 묻는데 괜히 얼굴이 뜨거워진다. 왠지 쑥스럽고 부끄럽다. "아뇨, 제가 배울 건데요"라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들어왔다. 그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악기들을 들러볼 뿐인데, 괜히 주늑 들었다. 왠지 전공자처럼 보이고, 바이올린이 좋아 보였다.(사실 바이올린 가방이지만) 사장님이 바이올린을 꺼내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신다. 송진이니 활이니 보관 방법이니 어깨받침이니 어쩌고저쩌고. 뭐가 이리 복잡한 건지. 설명을 들으면서 '어 내가 잘못 선택한 거 아냐?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왈칵 밀려들었다. 그 두려움을 가까스로 밀어내고 13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샀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채 가게 문을 힘차게 밀고 나오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그 미소가 맺힌다.


*오티움 : 결과를 떠나 활동 그 자체로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뜻하는 라틴어를 뜻하는데,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책 '오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4) 바이올린 레슨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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