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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24. 2021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4) 바이올린 레슨기

40대 아저씨의 바이올린 세레나데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건만, 마음속으로 "괜한 짓 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학원 문을 열고 쭈뼛쭈뼛 인사를 한다. 학원 원장님과 바이올린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23살의 젊은 여대생이었다. (그해 겨울 대학 졸업연주회를 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피아노 2대가 벽면을 향해 맞대고 있는 (연주하는 사람끼리 등을 맞대는) 방으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피아노 학원이 으레 그렇듯 피아노 1대와 의자 공간만 있는데, 이 방은 피아노가 2대라 가장 넓다.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꺼내라고 하시더니, 우선 조율을 먼저 하신다. (나 조율이 뭔지 아는 남자다.) 줄감개를 살살 돌려가며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데, 그저 바라보며 그러려니 할 뿐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어깨받침을 끼우고, 활을 조인다.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치고, 왼손으로 목을 감싸듯 잡는다. 오른손으로 활을 잡는다. 활을 현에 대고 쓱 그어보라고 하신다. "이이 이잉~"하는 고운 소리가 난다. 사실 뻥이다. 그건 바람일 뿐, "끽끽" 칠판 긁는 소리가 난다.


바이올린은 4개의 현을 활로 그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가장 두꺼운 줄은 낮은 솔(G 현) 음을 내고, 그 다음이 레(D현)음, 그다음이 라(A현)음, 마지막으로 높은 미(E현)음을 낸다. 왼손가락으로 현을 짚는 것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 손가락으로 현을 짚어서 현의 길이를 조절하고, 현이 짧아질수록 높은음을 낸다. 각 줄에서 아무것도 짚지 않는 것을 악보에서는 음표 위에 0으로 표기한다. 각 현을 1번은 검지로 짚고, 2번은 중지로 짚고, 3번은 약지로 짚는다. 4번은 소지로 짚는데 초보자에게 4번은 어려워서 초반에는 하지 않는다. G 현을 기준으로 0번은 낮은 솔이다. 낮은 라는 1번, 낮은 시는 2번, 도는 3번이다. D 현으로 넘어가서 레는 0번, 미는 1번, 파는 2번, 솔은 3번, A 현으로 넘어가서 라는 0번, 시는 1번, 도는 2번, 높은 레는 3번, E 현으로 넘어가서 높은 미는 0번, 높은 파는 1번, 높은 솔은 2번, 높은 라는 3번이다. 이렇게 보면 뭔 얘기가 싶지만, 이게 아주 중요한 거다. 왜냐면 악보를 볼 줄 몰라도 번호를 알면 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야를 예로 들면 "솔미미 파레레 도레미파솔솔솔 솔미미미 파레레레 도미솔솔미미미"이렇게 계이름이 되는데 이것을 "312 200 3012333 3111 2000 3133000" 이렇게 외워도 칠 수 있다. 여기서 중간에 도만 G 현을 짚고, 나머지는 D현을 짚는다. (캬 이렇게 쓰고 보니 전문가 같다. 근데 명심하세요. 바이올린은 글로 배우는 거 아닙니다.)


솔직히 이렇게 쓰면 참 간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뭔 얘기인지는 몰라도, 손가락으로 현을 짚고, 활로 그 현을 그으면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2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더 많지만 가장 중요한 사항만 먼저 보면 그렇다)

첫째, 왼손으로 제자리를 짚었는가?

둘째, 오른손으로 활을 제대로 그었는가?

왼손으로 1번, 2번, 3번을 짚는데,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음이 달라진다. 그 위치를 알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다. 그 위치를 제대로 알려면 음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난 그것을 알지 못한다. 진정 제대로 된 음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손가락을 짚으면 선생님이 "조금 당기세요.(음이 낮아요)", "조금 미세요.(음이 높아요)", "네 좋아요.(맞아요)"라고 말을 하신다. 선생님이 요구한 대로 손가락을 옮기긴 하지만, 음의 차이를 알고 옮기는 것은 아닐뿐더러, 옮기고 나서 켜면서도 왜 옮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른손에 대해 말하자면 활을 잡는 힘의 세기와 현이 활을 긋는 순간의 각도, 활을 쓰는 정도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 우선 기본적으로 한 개의 현만 정확하게 그어야 한다. 오른손을 살짝만 잘못 기울여도 2개의 현이 그어지는데, 그러면 음이 지저분해진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으면  "끽끽"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음은 정말 듣기 싫다.


무엇인가를 새로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기본은 자세와 태도, 연습을 포함한다. 할 줄 아는 것과 제대로 하는 것이 다른 법이고 제대로 하면 할 줄 알던 것을 더 잘하게 된다. 그러면 바른 자세는 어디에서 시작할까? 바른 자세는 힘 빼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게 되었다. 레슨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힘 빼세요."였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 힘을 주게 마련인데, 힘을 빼라니 무슨 말인가? 활을 그으려면 활을 잡아야 하고, 손을 움직여야 하는데, 모든 과정에 힘이 들어가는 법인데 힘을 빼라니. 그게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선생님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자신의 손을 만져보라고 한다. 활을 쥐고 있는 손을 만질 때, 손에 힘을 줬다 뺐다 한다. "이게 현수님이 연주할 때고요, 이게 제가 연주할 때에요. 현수님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저는 힘을 빼고 있죠."라고 말하며 알려주신다. 힘을 주었을 때, 손에 긴장이 가득하다. 근육이 잔뜩 부풀어(사실 근육은 보이지 않는다) 경직되어있다. 힘을 빼면 손이 유들유들하고 부드럽다. 활을 손으로 꽉 쥐고, 힘주어서 긋는 것이 아니었다. 활은 현에 얹는 것이고, 손가락은 활이 빠져나가지 않게 받쳐줄 뿐이었다.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명대사(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한 말)가 떠오를 법하다. 팔을 움직여 활을 미끄러트리는 것이었다. 힘을 빼라는 말은 힘을 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힘, 적절한 힘만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몇 개월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레슨이 끝날 때면, 선생님이 과제를 내주신다. "이거를 몇 번은 연습하고 오세요."라든가 "매일 세 번씩만 하세요."라고. 비록 음은 몰라도, 그래서 손가락이 제대로 짚었는지는 몰라도. 바른 자세를 가지려고 계속 노력했다. 주어진 과제를 꾸준히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계속하다 보니 내게 신기한 능력이 생겼다. 바로 음을 알게 된 것, 음을 구분하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바이올린을 켜다가 '어, 이상한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도었다. 쉽게 말해서 400Hz와 401Hz는 구분하지 못해도 400Hz와 410Hz는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 그것이 될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하면 되는구나'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된 순간이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으로 부족하겠지만, 내가 재미있고, 즐겁게 살기 위한 취미로서는 꾸준히 하면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는 오를 수 있다. 바른 자세와 꾸준한 연습, 그리고 그것을 꼭 지키려는 마음가짐(태도)은 무엇인가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이고, 난 그것들을 잘 지켜냈다. 처음에는 악보를 보는 것도 힘겨워하던 내가 악보를 그럭저럭 볼 수 있으며, 음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집에서 혼자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환골탈태가 따로 없다.

바이올린을 즐기는 나의 모습과 바이올린을 그려보았다.


이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장단점을 확인해보려 한다. 이건 백 퍼센트 내 기준이다. 피아노의 장점은 음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 건반을 누르면 그 음이 나온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음이 나왔다면 내가 잘못 누른 것이고, 올바로 누르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피아노의 단점은 왼손과 오른손이 다른 음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 놀아야 하고, 악보를 2개를 같이 봐야 한다. 나처럼 악보 보는 것도 힘든 사람에게는 위, 아래 묶여있는 악보를 보는 건 정말 곤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백 프로 내 기준이다) 바이올린의 장점은 오른손과 왼손이 같은 음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한 음을 내기 위해 같이 움직인다. 악보도 하나만 보면 된다. 단점은 정확히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왼손으로 1번, 2번, 3번을 짚는데, 내가 짚은 곳이 맞는지, 그 음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내 귀로 그것을 판단해야 하는데, 내 귀는 그것을 판별하지 못했다.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려운 점은 양손이 따로 논다는 것이고, 바이올린을 배울 때 어려운 점은 정확한 음이 내 손가락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바이올린을 꾸준히 배우면서 느낀 것은 연습이 그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3개월의 연습 끝에 연주할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다른 곡도 연습하면 양손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한 것에 후회를, 아니 후회까진 아니다, 미련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데 바이올린을 하길 잘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협연의 즐거움을 느꼈던, 내가 가슴속으로 열망하고 있던, 학창 시절에 멋모르고 공연을 보러 다녔던 바로 그것,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음치였던 나에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신세계였다.


*오티움 : 결과를 떠나 활동 그 자체로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뜻하는 라틴어를 뜻하는데,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책 '오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5) 극강의 즐거움, 오케스트라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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