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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l 11. 2021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5) 극강의 즐거움 오케스트라

내가 바이올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말했다시피, 학교에서 진행된 작은 연주회와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서였다. 둘의 공통점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이다. 작은 연주회에서 바이올린이 관심을 돋보였던 것은(내게) 다 같이 했기 때문이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선 남자 주인공 신이치의 꿈이 지휘자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계속 나온다.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 '오케스트라를 꼭 할 거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오케스트라에 대한 동경은 가지고 있었다. 바이올린에 대한 글을 연재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인데, 내가 생각보다 음악을 훨씬 더, 아주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등학교 때 그 많은 공연을 - 오케스트라 공연, 피아노 연주회, 판소리 공연 등 - 단순히 성적을 위해서 따라다니긴 싶지 않다. 아니면 처음엔 성적을 위해서 따라다녔는데, 어느새 그게 좋아진 것일 수도 있겠다. 음. 쓰고 나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 한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학교에서 열린 작은 연주회에서 첼로를 연주했던 선생님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해 12월,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가 있었는데, 선생님을 통해서 티켓을 받았다. 큰 애와 함께 연주회를 보러 갔다. 연주회를 보면서 '아, 저 위에서 연주하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도 저 자리에 한번 서보고 싶다.'라는 강렬한 꿈이 생겼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한 반년 되었나?) 동료 선생님은 '3년은 배우고 오세요.'라고 말을 했지만, 음 내 손은 이미 카페에 가입하고 있었다. 공연장 입구에 서 있던 오케스트라 소개, 신입 단원 모집 글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바로 오케스트라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어떤지 보려고 했을 뿐이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 연습 사진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연습용 악보도 있었고, 연주회 영상도 있었다. 카페를 둘러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신입 단원 모집 글을 또 봤고, 총무님의 연락처를 봤고, 내 손은 그 연락처를 누르고 있었고, 입단에 대한 질문을 메시지로 보내고 있었다. 총무님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저 아직 가입할 생각은 없는데요. 바이올린도 잘 못 켜고요'

'배운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반년 정도 되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뇨, 아직 이른 것 같은데요.'

'그럼 구경이라도 오세요. 바이올린도 가지고 오시고요.'


처음엔 가입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하려고 갔다. 정말이다. 구경만 하려고 갔다. 연습하는 분들의 맨 뒤에 앉아서 구경했다. 다들 연주를 잘했다. 주 악기는 바이올린과 첼로였고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있었으며 호른과 콘트라베이스도 있었다. 모든 악기가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명 정도가 연주하는 것을 바로 뒤에서, 아니 이건 뒤가 아니지, 그 속에서 듣는 황홀함은 그 속에 있어 본 사람만이 안다. 1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나서, 중간 쉬는 시간에 총무님이 "새로운 단원이 왔어요."라고 하시며 나를 소개하신다. 얼떨결에 난 앞에 나가 내 소개를 했고, "배운 지 얼마 안돼서 잘 못 한다. 악보도 간신히 본다. 잘 부탁드린다."라고 말을 했다. 다시 자리에 앉는 내 손엔 2 바이올린 파트보(파트별 악보)가 쥐어져 있었다. "세르비아의 이발사"와 "베토벤 운명 1악장"이 있었다. 내가 이런 악보를 보게 될 줄이야. 정말 꿈에서도 생각 못 해 본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입단 전후로 바이올린 선생님과 오케스트라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오케스트라에 대해 고민하는 나와 달리, 선생님은 일단 무조건 찬성이셨다. 일단 들으면서 음악적 감각이 생긴다는 것이고, 연습에 도움이 될 것이며, 실력이 더 빨리 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을 거라고 하셨다. 본인도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무척 재밌었던 기억을 얘기하면서. '제가 민폐가 될까 봐요'라고 말하자, 괜찮다고 좋아할 거라고 하셨다. 나에겐 음악에 대해 바로 옆에서 접근할 기회가 돼서 좋고, 모임 입장에선 회비가 생기니 좋다고 하셨다. 그냥 가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도, 모임에도 모두 좋은 거니깐 부담 없이 가라고 하셨고, 부담 없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갈 때마다 부담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가끔 2 바이올린을 하는 분이 적게 오거나 늦게 올 때면, 난 지휘자님 바로 앞에 앉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더 부담되었다. 누군가가 "한번 연주해 보세요."라고 말이라도 하는 날은 으. 끔찍했다.


 매번 바이올린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악보를 보면서 듣기만 했다. 바이올린을 잡는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다. 활을 긋는 건 둘째 치고, 눈으로 악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레슨을 받을 때야 내가 중심이니까 지금 연주하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는 달랐다. 다양한 악기들의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어딘지를 알아보는 것은 힘들었다. 어쩌다 놓쳐버리면 머릿속이 하얘졌고, 눈동자는 제 위치를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그럴 때면 내 옆에 앉은 분이 바이올린 활로 위치를 짚어주셨는데, 난 악보 보는 것만도 벅찬데 연주하면서도 나를 챙겨주는 여유가 있는 그분이 부러웠다.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1시간씩 3시간을 연습했는데, 한 곡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섯 곡의 곡을 같이 연습했다. 지금 기억나는 곡은 제일 처음 받은 악보 "세르비아의 이발사", "베토벤 운명 1악장", "비제, 카르멘", "꽃의 왈츠" 등등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안에 계속 있다 보니 눈과 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레슨과 병행해서 그런 것 같다.)


우선 박자 감각이 생겼다. 2/4박자는 하~나 두~울, 4/4박자는 하나 둘 셋 넷 등등으로 박마다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박자를 맞춘다. 박자에 맞추어 악보를 보니 놓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8분 음표나 16분 음표가 눈앞에 나타나도 이제 당황하지 않는다. 박자와 눈에 여유가 생기니 소리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어, 클라리넷 소리가 높아졌네', '플루트 독주 부분이네' 등등 다른 악기의 소리를 감상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바이올린은 언제 켤 거냐고?) 하루는 콘트라베이스가 내 자리 옆에서 연습했었다. 그때 매번 마디를 시작 때마다 저음으로 "띵"하면서 박자를 맞춰주니 얼마나 좋았던지. 콘트라베이스의 소리가 그렇게 감미로울 줄이야. 오케스트라를 연습하고 나면, 바로 그날이나 적어도 다음 날에 연습 후기를 썼다.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아~ 글을 쓰다 보니 그때가 무척 그리워진다.


오케스트라를 시작하면서 바이올린 레슨도 성격이 달라졌다. 전에는 스즈키 교본을 보면서 기본기 위주로 진행했는데, 이제는 오케스트라 악보를 보면서 그것을 복습, 예습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게 더 나았던 것 같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면서 3시간 동안 열심히 보고 듣고 한 것을 선생님과 같이 맞춰 본다. 활을 어떻게 켜는지 어떤 느낌으로 연주하는지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어려운 부분은 직접 연주를 해주시며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맞춰보고, 다음에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러 가면 이전보다 더 잘 보이고 잘 들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난 안돼, 난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나도 하면 된다는 것, 내 귀가 막귀가 아니고, 내 눈이 장식이 아니라는 것,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크고 두꺼운 불신의 벽을 깨뜨린 것은 앞으로 남은 음악 인생(?)에 어마어마한 재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휘자에 대한 얘기도 꼭 해보고 싶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볼 때면, '지휘자가 왜 필요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들 전문가일 테고, 악보를 볼 줄 알고, 자기 악기만 제 박에 맞춰서 연주하면 되는데 지휘자는 왜 필요한 거야?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제발)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면서 '아, 지휘자가 중요한 거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었는데,  오케스트라에 있다 보니 지휘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첼로 음이 낮아요.', '클라리넷 속도가 빨라요. '거기 반음 높이면 좋겠어요.' '따따따가 아니라 따라라, 이런 느낌으로' 등등의 얘기를 할 때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마다 곡의 해석이 다르고, 연주가 다르며, 1박의 개념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야 워낙에 음치이자 박치이다 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할 줄 알았다. 아니, 다 잘하는데 미묘하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로 묶어 좋은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지휘자이다. 정말 지휘자님을 볼 때마다 내가 느낀 경이로움은 음악을 만나면서 느낀 경이로움 중에 최고였다. 중간에 지휘자님이 바뀌었는데, 정말 지휘자마다 또 다르다. 곡의 해석, 지휘하는 방법, 사람들을 이끄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면 신이치가 오케스트라B팀을 지휘하면서 고민하던 부분이 단원들의 능력 끌어올리기, 사람들 간의 관계 조율하기, 서로를 화합시키기 등등이었는데, 그것을 실사판으로 경험한 것이다.


한 번은 재활병원에 봉사 공연이 잡혀있었다. 어르신들이 많았기에, 어버이 은혜나 아리랑, 애국가, 그리고 무조건 같은 트로트와 가곡도 연습했다. 오케스트라로 트로트와 민요를 연습하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로 의상을 통일했다. (우와 우와) 그리고 목에는 스카프 같은 그런 것을 맸다. 나의 첫 공연이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마지막 공연이다. 그땐 몰랐지만) 공연을 하기 전에 옷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아하~ 그 기분이란,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공연을 기다리는 분들 사이로 입장을 한다. 내 자리에 앉는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클래식 곡들보다 상대적으로 쉬어서 나도 연주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캬~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아, 이래서 오케스트라를 하는구나 싶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음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만큼은 최고인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전공으로 하려 했다가 못한 사람이고, 누군가는 그냥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고, 누군가는 일이 바빠서 매일 녹초가 되지만 토요일 연습만은 꼭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들으며 지휘에 따라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삐걱대고, 다 같이 '우리 이거 못할 거 같은데요'라고 웃으며 말을 하지만, 연습하는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게 다시 몰입한다. 한 주, 두 주 시간이 지나며 전에 안 되던 것이 될 때, 다 같이 느끼는 그 카타르시스. 연주하다 눈이 마주칠 때 느껴지는 그 동질감.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듯한 그 느낌. 글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는 그 즐거움. 오케스트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신세계였고, 즐거움이었으며, 행복이었다. 그 행복은 갑자기 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바이올린과 헤어진 것이다.


*오티움 : 결과를 떠나 활동 그 자체로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뜻하는 라틴어를 뜻하는데,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책 '오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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