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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Aug 07. 2021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6) 굿바이 바이올린.

40대 아저씨의 바이올린 세레나데

첫 오케스트라 공연이 성공리에 끝났다. 정말 꿈도 못 꾸었던 일이 내게 일어났었다. 너무나 즐거웠고 의미 있었던 오케스트라였지만, 그것은 내게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다. 반대쪽 칼날이 나를 향한 것이다. 어르신들이 관객이었기에 쉬운-클래식 보다 상대적으로-곡을 연주한 것이 내게 문제가 되었다. 멋모르고 클래식만 할 때는 '그냥 어렵다.'라는 느낌이었는데, 어버이 은혜나 애국가, 무조건 같은  노래를 연습하고 오니 체감이 확 높아진 것이다. 뭐랄까? 찬물에 있을 땐 그 물이 차가운 줄 모르고 있다가, 따뜻한 곳에 갔다 오면 그 물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너무 어려워졌다. 처음에 할 땐, '어려운데, 그래도 계속하면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난 절대 못 해", "이런 건 내가 하는 게 아냐", "내 주제를 정확히 알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이올린 개인 레슨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기간에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것인데,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 혼자 외벌이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데 내 취미생활로 매달 16만 원씩 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짐이 되었다. 그 짐은 함박눈이 처음에는 변변치 않게 보이지만 어느새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것처럼, 내 마음을 다 덮어 버렸다. '이제 레슨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선생님께 말하던 그날 눈물이 나오는 줄 알았다. 꼭 연습하고 싶은 곡이 있어서, 남은 한 달 동안 그 곡을 연습하기로 했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피아노로 연주한 그 곡. 한 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지만, 결국 끝까지 다 배우진 못했다.


그렇게 레슨이 끝났다. 오케스트라를 그나마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레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오케스트라에 대한 심리적인 두려움이 더 커졌을 때, 레슨을 멈추니 오케스트라는 내가 잡을 수 없는 구름이 되어 버렸다. 이건 뭐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멍하니 있다가 멍하니 왔다. 열심히 들은 후에 레슨에 가서 물어보며 연습을 했었는데, 그 공간이 사라지니 열심히 듣지 않게 되었다. 심리적인 부담감, 혼자 뒤처지는 듯한 고립감, 사라진 레슨에 대한 허망함 등등의 마음이 중첩되더니, 오케스트라에 가는 즐거움을 눌러버렸다. 즐거움에 비해 너무 커져 버려서 마치 즐거움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 잘 견디면 되었을 텐데, 견디질 못했다. 처음엔 한 주만 빠지더니, 두 주를 연속으로, 세 주를 연속으로 그러다가 저절로 발걸음이 끊겨 버렸다.


어느 날 한 분에게 연락이 왔다. 오케스트라를 갈 때면 항상 상냥하게 웃어주며 대해주시던 여성 단원이었다. "왜 안 오세요? 다들 궁금해하세요. 선생님 글도 보고 싶다고 하시고요. (그때 매번 연습이 끝나면 연습기를 카페에 올렸었다)" 나는 레슨을 못 받으니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나 혼자 하는 거면 어떻게든 나가겠는데, 이건 같이 하는 거라서 못하겠다. "그렇게 말을 했다. 여러 대화가 오갔지만, 대화는 나의 심리적인 부담을 그분이 이해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이후 12월에 정기연주회를 할 때, 그분이 잊지 않고 티켓을 보내주셔서 공연을 보러 갔다. 지휘자님의 지휘 아래 여러 곡을 연주하는 단원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 만감이 교차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자연스럽게 이 단어가 나왔다.) '저 자리에 나도 있었어야 했는데', '왜 포기했지!', '부럽다' 등등.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님께 인사를 하고, 단원들과 인사를 했다. 다시 나오라는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어두웠다.


레슨이 끝나고, 오케스트라도 끝나고 참 오랫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레슨 마지막 날 꾸준히 연습하기로 선생님과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바이올린을 쳐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모임에서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예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어느 새부턴가 난 바이올린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별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해보라고 권유한 것은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2달 전쯤 '오티움(문요한 저)'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 바이올린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와 헤어진 지 2년 반이 넘었다.


"(7) 못다 한 이야기들, 그리고 다시"에서 계속


*오티움 : 결과를 떠나 활동 그 자체로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뜻하는 라틴어를 뜻하는데,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책 '오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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