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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24. 2021

한때 작가였습니다만

나를 찾아라는 글쓰기 10기. 6th

2005년 2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했었다.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그때 더 좋았던 것은 달릴 때 일어나는 사색의 과정이었다. 달리면서 갖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집에 와서는 그것들을 기억나는 대로 간략하게나마 끄적였다. 달리는 순간 느끼는 그 청량함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신기한 아이디어들의 조합은 저절로 흥이 났으며, 그 시간을 더욱 즐기게 해 줬고, 내가 즐기는 만큼 더 양질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긍정적 기운이 발하는 나선형 상승곡선은 2월부터 6월까지 다섯 달간 나를 창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당시 글의 주제는 "미루기 NO"였다. 다음 카페 "프랭클린플래너 유저들의 모임"에 게시판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하고, 그 게시판 지기가 되었다.  2003년 대학교 4학년 때, '미루는 습관 고치기 집단상담'을 하면서 배운 습관에 대한 이론들, 내가 적용하면서 느낀 것들, 자기계발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든 이론들, 내가 직접 만든 이론(?)들, 내가 겪은 체험들을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분류를 굳이 따지자면, 자기계발에 속하는 미루는 습관에 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그대 꿈을 미루고 있지 않은가?"였다. 집단상담을 받은 당시 나는 오랫동안 잊었던, 버렸던, 외면했던 모른척했던 꿈을 다시 찾았고 그 꿈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해야 했다. 미루는 습관은 전력 질주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일을, 무언가를 미루는 것은 꿈을 미루는 것이다."라는 말은 나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박혔던 것이다. 17살 때 포기했던 꿈을 27살이 되어서 다시 찾았고, 더 이상 그 꿈을 미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미루는 습관을 "산"으로 설정하고, 산을 넘는 과정으로 글을 썼다. [고개 넘기], [장비 갖추기], [껍질 깨기], [실패 예찬론] 등을 챕터로 글을 써 내려갔다.


카페에 올린 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조회 수는 수천을 넘었으며,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 '공감 간다', '내 얘기다', '동기부여가 된다', '글을 참 잘 쓰신다', '도전해보고 싶다.' 등등의 반응이 있었다. '다른 곳에 올려도 되나요?'라는 댓글도 많았고, 난 '다른 곳에 올려도 됩니다. 단, 출처만 밝혀주세요.'라고 답글을 달았다. 그래서 당시 여러 곳에 스크랩이 많이 되었다.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이때, 4개월 정도 되는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다. 4달 동안 40개의 글을 썼으니, 평균 1달에 10개의 글을 쓴 것이다. 2월, 3월에 가장 많은 글을 쓰고, 그다음엔 속도를 봐가면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글을 쓰면서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미친 듯이 몰입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에너지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고 소름 끼치는 것인지 느꼈다. 정말 난 내가 이때 미쳐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생애를 통틀어 여러 가지 몰입의 경험이 있지만, 아마 이때가 가장 즐겁게 열정적으로 몰입을 한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쓴 글들에는 정말 주옥같은 문구가 많지만(다른 사람이 쓴 말이 대부분, 내가 만든 말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세 가지가 있다.


"일을, 무언가를 미루는 것은 꿈을 미루는 것이다."

미루는 습관 고치기 집단상담 첫 시간에 들은 말. 앞서 말했듯이 10년간 외면했던 꿈을 다시 꾸게 되었을 때, 늦잠 자거나, 과제를 안 하거나, 공부를 안 하는 등의 나태한 모습은 꿈을 미루는 행위로 느껴졌다. 아마 이때의 절박함이 나를 더 채찍질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패했을 때 비난(자책) 하지 말고, 그 순간 선택의 기회를 줘라"

나에게 가장 큰 변화의 기회를 준 말이다. 이전까지의 나는 무언가 실패하면 나를 자책하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6시 알람을 맞춰놓고 못 일어나면, '어이구 내가 그렇지 뭐, 내 주제에 무슨 아침형 인간을 한다고'라며 나를 비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잠자리에 누워 있었고, 그렇게 1시간 2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내게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 못 일어났네, 계속 자책하면서 빈둥거릴래? 아니면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네가 할 일을 할래?'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은 일어나는 것을 선택했고, 못 일어나더라도 나를 자책하는 횟수나 강도가 줄어들었다. 이 말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선언과도 같았다.  


"실패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이건 내가 만든 말이다. [실패 예찬론]을 주제로 네 개의 글을 썼는데, 그중 세 번째 글의 제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고,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실패를 했을 때 정말 그것밖에 없는 걸까? 의문이 들었고, 많은 고민 끝에 난 도전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은 실패를 했을 때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를테면 100일도 전 같은 것이 많은데, 그런 거를 할 때 나의 마음가짐은 '100일 동안 빠짐없이 해야지'가 아니라, '100일 동안 꾸준히 해야지'이다. 예전에 이런 도전을 하다 하루 실패하면 다음날 다시 첫날부터 도전하던 내가 사라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난 '작심삼일 1년에 백 번만 하자'라고 말한다. 어쨌든 시간은 가게 마련이고 안 하면서 가는 것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하면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그건 지금의 내 신조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문구를 소개하다가 글이 갑자기  길어졌다. 줄일까? 뺄까?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흐름이 약간 어긋나긴 하지만 뭐 나쁜 내용도 아니고)


6월까지 열심히 글을 쓰고, 그 이후론 간간이 카페에 글을 올렸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월간 마음 수련의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이 쓴 글을 보고 그 학생에게 연락을 했었다고 했다. 카페에 있는 글을 스크랩했다는 답변을 받고, 카페에 가입한 후 주인장을 통해서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난생처음 잡지사와 취재를 했다.  그리고 잡지에 기사가 실렸다. 사진과 함께. 오 신기한 경험.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또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북플래너"라는 직업을 가진 분이셨다. 마음수련 책을 봤다고, 콘셉트가 좋아서 카페 글을 다 읽어봤다고 하셨다. 그리고 책으로 만들자고 하셨다. 난 처음엔 고사했다. 우선 책을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쓴 글들이었다.(그런데 프롤로그부터 고개 넘기, 장비 갖추기, 껍질 깨기, 실패 예찬론, 쉬어가기 등 무의식적으로 책을 염두에 둔 듯한 구성이 속 보인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무늬만 따라 했다.)  그리고 막 직장 초년생이라 책을 만들 여력이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책 내기를 고사했었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그 얘기를 했다.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그런데 거절했다고. 다들 아쉬워했고, 그러지 말고 책을 내라고 하셨다. 지인들의 말에 용기를 얻어 책을 내기로 했다. 북플래너님과 출판사 사장님과 만나서 계약서를 썼다. 글들을 정리하고 오타를 점검하고, 또 검토하고 책을 출판했다. 오 또 신기한 경험.


그게 12년 전 이야기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절판이 되었다. 출판사 사장님으로부터 그 내용을 가지고 다시 글을 쓰고 책을 내도 된다는 언질을 받았다. 그래서 리뉴얼한 글을 꾸준히 올릴 예정이다. 근데 아직 시작은 못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32살도 어리다면) 책을 냈었다는 사실은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내겐 양날의 검이 되었다. 글을 쓸 때마다 머릿속에 책이 먼저 떠오른다. 책이 먼저 떠오르니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먼저다. 좋은 표현, 좋은 내용, 좋은 문장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글과 비교를 하게 되고, 내 글은 엉망인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글감은 다양하고, 긴박하고, 재밌고, 흥미롭게 여겨지는 데, 내 글감은 유치하고, 뻔하고,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내기 전에는 내가 좋아서 글을 썼고, 신나게 글을 썼는데, 책을 낸 다음에는 그게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 쓰는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통이 되는 그 생각 "책을 써야지, 좋은 글을 써야지"를 버리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요즘 그나마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40개가 넘는 글을 썼다는 것, 그 글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것, 그게 인연이 되어서 잡지사에 취재를 했다는 것,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냈다는 것은 하나하나가 무척 신기하고, 경이로운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그 사실이 때론 나를 짓누르기는 하지만, 반대로 힘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찾으면, 그리고 그것에 몰입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런 창의적인 경험이 그때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재력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다. 다만, 아직 나를 불태울 만한 주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부 검열자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 하나는 3년째 보류 중이지 않은가. 나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불태우고 싶다. 달리기부터 시작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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