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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l 20. 2021

이왕 미친거 충실하게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10기(8th story)

때론, 속 빈 강정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고, 여겨진다. 열정은 내가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쫓아가게 하고, 호기심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하기 힘든 것들을 꿈꾸게 한다. 끊이지 않는 열정과 솟아나는 호기심이 결합하여 묘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 에너지에 휩싸여 끌려다녔다. 시간이 이 지난 후 정신을 차려보면, '잘했네!'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왜 그랬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다행인 것은 전자가 더 많다고 기억된다는 것이다.(나만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독한 말더듬과 볼썽사나운 악필로 인해 꿈을 선생님이란 꿈을 포기했었다. 비록 꿈은 포기했지만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말더듬는 것을 고치려고, 글씨를 잘 쓰려고 계속 노력했었다. 그 과정에서 때론 상처를 받고, 때론 좌절하고, 때론 숨어버리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벽에 부딪히면 '내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곤 했고, 터널을 만나면 '난 안되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포기했다. 하지만 움추려드는 모습이 싫었고, 당당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또다시 도전했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상처받고, 좌절하고, 다시 시도하고. 그 사이클을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27살 나이일 때 9월 어느날, 난 내가 더이상 말더듬이가 아니고 악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이제 말더듬이 아니잖아. 이제 글씨도 잘 쓰잖아. 그럼 선생님을 포기할 필요가 없잖아. 그런데 늦지 않았을까? 아냐, 늦더라도 다시 해보자."라고 다짐하던 그날의 전율을 기억한다. 아니 전율의 기억을 기억한다.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가, 어느날 뒤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가 있더라."는 깨달음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7살의 깨달음이후 17년이라는 세월동안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시도해보고,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속에는 그것들이 차곡차곡, 서서히 쌓여나가고 있었다. 마치 흙탕물에 깨끗한물 한방울 넣는다고 바로 달라지지 않지만, 한 방울 한 방울 계속 넣다보면 어느순간 깨끗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그런 나이다. 

그런데 유독 글쓰기는 그게 안된다. 즐기질 못한다. '과연 내가 글을 잘 쓰는가?'하는 생각이 의문이 때때로 들곤 한다. 나는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잘 노출하는 것에 불과할 뿐일꺼야라고도 생각한다. 글쓰기 모임에서 발표를 적극적으로 하는데, 발표를 하고 나면 의레 듣는 말인 '잘 쓰시네요.'라는 말은 그저 인삿말일수도 있지 않을까? 의아할 때가 있다. 내 글을 가만히 뜯어보면 표현이 단순하고, 문장은 간결하다. 읽기 싶다. 일부러 그렇게 쓰는 것이냐? 아니다. 더 어떻게 쓸 능력이 안되는 것이다. 아주 적절한 은유라던가, 촌철살인 같은 통찰적인 표현을 쓰고 싶은데 그럴 능력이 없다. 뭔가 문학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표현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능력이 안된다. 

내가 원하는 표현이 있는 글을 볼 때면, 나는 질투의 화신이 된다. 좋은 글을 읽고 나면 우선 감탄을 한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을, 아니 사람의 능력을 부러워한다. 부러움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부러움은 화살로 변신을 하고, 화살촉은 나를 조준한다. '나는 왜 그런 글을 못쓰는가?라며 회의하고, '나는 왜 그런 표현을 쓰지 못할까?'라며 스스로를 비난한다. 그것이 심할 때면 한 동안 글을 쓸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지난 1월에는 그것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마음속으로 '절필'을 선언했었다. 내 주제에 무슨 글을 쓰겠다고,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내가 쓰는 글은 쓰레기조차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다 포기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무의식이 나를 불러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수 많은 글들이 엉켜있다. 어느 하나라도 풀어서 쓰기 시작하면 무엇인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방법을 몰라서 에세이필사를 하고, 시필사를 하고, 책을 읽고, 모닝페이지를 쓰고 글쓰기 모임을 하고 이러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발버둥있다. 누군가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동은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난 그 부질없는 짓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 


좌절을 하면서도 계속 걸어간다. 걸어가다 보면 끝내는 무엇인가를 해낼 것임을 믿는다. 그러면서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을 충분히 즐겼고, 충실히 거쳤어 그러니까 후회는 없어!"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래도 해내고 싶다. 

어제의 나를 위해, 내일의 나를 위해, 무엇보다 오늘의 나를 위해 글을 쓴다. 어제의 나를 위해 쓰는 글은 아이를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어머니의 손길 같은 글이 된다. 나를 공감해주며, 치유해준다. 내일의 나를 위해 쓰는 글은 힘내라며 뒤에서 힘껏 밀어주는 아버지의 손길 같은 글이 된다. 열정을 가지고, 꿈을 향해 나가는 힘을 준다. 오늘의 나를 위해 쓰는 글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어린이 같은 글이 된다. 그냥 순간을 즐기라고, 과정에 빠져 있으라고 부추긴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지금 글쓰기에 미쳐있구나.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여럿있지만, 지금의 나는 오로지 글쓰기만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글쓰기=속빈강정'이 될 수 있겠다. 글을 쓰는 순간 내가 채워지고, 글을 쓰는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진정 강하게 느끼는 구나. 지금의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글쓰기에 미쳐 있기 때문인 것이구나. 이런 미친 놈. 이왕 미친거 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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