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10기. 다섯 번째 이야기
고등학생 때,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친구에게는 껌이 하나 있었고, 나에게 '야, 껌 하나 있는데 반씩 나눠 먹을래?'라고 물었다. 난 '아니, 난 반만 먹으면 어느새 껌을 삼켜서 안 먹어, 괜찮아.'라고 말을 했다. 그때, 그 친구가 기분이 많이 상한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그때 '내 말이 심했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우선 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팩트) 껌을 반 개만 씹으면 어느 순간 삼키게 된다.(팩트) 난 껌을 삼키는 것이 싫다.(팩트) 그래서 먹고 싶지 않았다.(팩트) 난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다.(팩트) 문제는 뉘앙스겠지. 상대방의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니깐
이런 식의 반응은 지금도 종종 나타난다. 특히 아내와 대화를 할 때, 아내가 말하고 나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뉘앙스의 말이 먼저 나온다. 이럴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잘 안된다. '공감 능력 결여'는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며, 가장 오래 넘고 있는 산이자. 가장 오래 넘어야 할 산 같다. 내 행동이나 말의 기준이 거의 대부분 '옳고 그름'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 사건의 옳고 그름을 먼저 본다. 종종 다른 사람의 입장을,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경청', '배려'라는 책을 읽고 또 읽었었다. '아, 경청이 필요하구나, (감정을) 배려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 MBTI를 보면 나는 전형적인 사고형(T) 인간이다. 성격유형검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한 사람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데는 정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MBTI는 내게 나를 이해하는 용기를 주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난 그런 사람이다.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는 그런 사람.
머릿속으로 시비를 가리고 있더라도, 입으로는 '그렇구나'라고 말하자라고 마음을 먹고 연습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고민을 하고, 마음 상하지 않게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거 해볼래요?"라고 권하면, 예전에는 '싫은데요'라고 말했을 법도 한데, 요즘은 '아 그럴까요?'라고도 말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상대방이 말하자마자 '난 좋아요'라고 말했다. 참 장하다.
무언가를 배우기로 마음먹으면 다른 사람보다(일반인 기준) 습득 속도가 빠른 편이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기 때문이다. 앞에 돌(방해)이 있으면 깨트리거나 넘어가거나 돌아간다. 나의 호기심과 배움 욕구와 강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은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배우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살아왔다. 오랜 기간을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큰 문제는 없었다. 근데 그게 나름 문제였다.
어느 날 문득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가 내 귀에 들어왔다. '빨리 타오른 불이 빨리 식는다.'라고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무엇인가 도전하고, 나름의 성과를 낸다. 성과를 냈다 싶으면 그때부터 열기가 식기 시작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식어버린 열정. 그리고 난 그것으로부터 멀어진다. 전형적인 용두사미다. 용의 머리처럼 엄청 크게 시작하고, 뱀 꼬리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아니 많이 있었다. 시작은 거창하게 했는데,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는 다짐들, 프로젝트들.
내가 '용두사미'를 강하게 인식한 것은 2003년 즈음이다. 무슨 사건을 두고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고 싶었던 것이 많은 만큼.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다가 다른 것이 하고 싶으면 또 그것을 향해 직진한다. 전에 하던 것은 흐지부지된다. 이 과정에서 무슨 문제(또는 깨담 음)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서 이전에 하던 것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 같다. 그때 난 슬로비(slobbie)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라는 뜻을 가진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월간 좋은 생각에 소개되었다. '천천히 그러나 일은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너무 급격하게 변화되고 빨라지는 생활 속에서 천천히 삶을 즐기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로 기억하고 있다.
내게 일을 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고. 그때 찾은 대답이 "난 끝을 잘 맺으면 일을 잘하는 것 같아."라는 대답을 찾았다. 그래서 난 better를 "꾸준히"라고 해석했다. 내 별명을 슬로비라고 정하고(이때부터 올해까지 무려 16년간) 사람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슬로비입니다."라고 소개를 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는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가장 큰 한마디이다. 빨리 타오르고 빨리 식는 사람이 아니라, 빨리 타오르면서도 꾸준히 타는 또는 천천히 타오르고 높게 타오르면서도 천천히 식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무엇을 하더라도 진득하니 끝까지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나 자신의 문제에만 매달리며, 오로지 자신의 논리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오롯이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틀을 깨뜨리려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