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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05. 2021

당돌한 노출광.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10기. 4번째 이야기

"오빠가 바이올린 어떻게 관심을 가졌지?"

"응? 노다메 칸타빌레 보면서"

"그리고 혼자 바이올린 배우로 간 거지?"

"응, 검색하고 바이올린 사고 레슨 받으러 갔지."

"그리고 몇 달 안돼서 그냥 사람들 앞에서 연주한 거고"

"그랬지?"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음, 난 단계에 맞는 실력이 있고, 그 실력을 그대로 보여준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빠는 잘하는 사람만 공연하고, 그러는 게 맘에 안 드는 거지?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도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보는 거고?"

"그렇지. 우리는 완성된 것 잘하는 것만 보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봐. 그냥 그 자체로 즐기는 거, 그 사람이 성장하는 거 그걸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며칠 전에 아내와 한 대화이다. 주변에 나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내도 그 중 하나이다. 겨우 이 실력으로 연주를 했다는 것에, 아니 그 실력으로 연주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고 말을 한다. 나는 사람이 무언가를 배울 때, 그 사람의 수준에 맞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에 맞는 실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을 보면 한 달에 한번 '향상음악회'를 갖는다. 그리고 찍은 영상을 보내주신다. 그것을 보면 딱 아이에게 알맞은 딱 그 정도의, 그리고 한 달 전보다 조금 좋아진 모습이 있다. 그리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칭찬한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성인 역시 이런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의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형편없지만, 그게 그 순간의 나의 수준이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난 그것만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자격과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연필 인물화를 배울 때였다. 당시 강사님은 네이버 밴드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거기에 사진을 많이 올려달라고 하셨다. 난 사람들이 많이 올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와 다른 회원님이 많이 올리셨고, 다른 분들은 거의 올리지 않았다. 수업 때 '사진 좀 올려주세요.'라고 말을 하면 하나같이 '아직 잘 못 그려서, 부끄러워서'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렇지 잘 못 그리지. 부끄러울 수 있지.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다른 사람과 사뭇 다르다. 못 그리기 때문에 배우러 오는 것이고, 처음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 못 그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의 그림이 내게 맞는 그림이다. 있는 그대로 올리고, 선생님께 댓글로 가르침을 받는다. 그리고 교육 날에 수정해가면 또 가르침을 받는다. 즉 다른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을 배울 때, 나는 두 번 세 번을 받게 된다.

왼쪽부터 2018년 11월, 2018년 12월, 2019년 4월

​나는 이것을 '노출'이라고 표현을 한다. 나를 노출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 위해서 2달 동안 두 곡을 집중 연습했다. 매일 머릿속으로 계이름을 되뇌고, 여러 차례 연습을 했다. 그 경험만으로 내 실력이 전보다 훨씬 좋아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연필 인물화도 그랬다.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빨랐으며, 짧은 시기에 더 높은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더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공유했다. 난 노출을 했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을 원했고, 인정을 받았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의 인정에 상관없이 나의 그림을 그리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 노력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 기억은 잘 모르겠으나 결정적인 계기는 떠오른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학교 심리센터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인 "미루는 습관 고치기 집단상담"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았지만, 게으름의 끝판왕 수준이었다. 마음은 급했는데, 생활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때 참여하게 된 것이 바로 저 프로그램이다. 절박했던 만큼 나를 꼭 바꿔보고 싶었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8명(9명)의 참가자 중에 가장 많이 나를 오픈했다. 5주라는 기간 동안, 첫날 자기소개부터, 자기 상황, 매주 진행되는 정도, 느낀 점, 바뀐 점, 부족한 점 등등 모든 것을 오픈했다. 그리고 오픈한 만큼 변했다. 하나하나 적용해 보려고 했고, 적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과정이 끝난 후에 상담 선생님께서 후기를 한번 써보라고 했고, 그 후기는 대상이 되어 상금 1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글을 쓰고 상금을 받았던 적도 있었구나). 그때 확실하게 "더 많이 노출하라."가 내 삶의 태도가 된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때 쓴 글 오늘의 여기까지 오게 된 시발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무한도전을 그리고 놀면 뭐하니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했던 장기 프로젝트들-프로레슬링, 스포츠댄스, 봅슬레이, 조정, 가요제-와 놀면 뭐하니에서 진행된 드럼, 트로트, 하프, 싹쓰리 등등을 보면 처음엔 못 한다. 하지만 못 하는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노력한다.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물론 방송으로 보여주는 모습 외에 숨겨진 것들이 있겠지만, 그것들은 고려하더라도 무한도전과 놀면뭐하니는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유재석이 되게끔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최고 강점이자 장점이자 재능은 "꾸준함에 대한 성공 경험"이다. 무엇을 하든 "꾸준히 하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다. 마라톤을 처음 도전할 때도 그랬다. 첫 연습 때 한 바퀴가 330m인 공원을 두 바퀴도 채 뛰지 못하고 걸었었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4개월 후에는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시간은 비밀, 그저 완주에 의미를 둘 뿐이다) 무엇을 해도 꾸준히 하면 내가 목표로 하는 단계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긍정, 끝까지 해내려는 끈기가 내게 있다.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꾸준함의 힘"그것뿐이다. 그게 나다.


#강점

#장점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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