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세처럼 Dec 18. 2021

[4-1] 자네의 삶과 글이 하나가 되길

아티스트 웨이 마이웨이 2기, 4th

교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교실 문 앞에 이르러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한번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이들을 바라보지만,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인사하는 아이는커녕 쳐다보는 아이도 없다. 교탁에 서서 출석을 부른다.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만 잠깐 고개를 들뿐, 다시 자기들만의 세계로 돌아가는 아이들. 무심한 듯이 전달사항만 전달하는 그와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듣는 아이들.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허공만 보며 말하는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교실을 나서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던 그는 행여 아이들이 볼까 봐 얼른 밖으로 나간다. 질식할 것만 같은 공기에서 해방된 듯이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어린 시절의 일기를 꺼내 든다.


1985년(초1).  어느 월. 어느 날.

받아쓰기를 봤다. 또 0점이다. 제길. 왜 나만 이렇게 못 하지? 다른 애들은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지?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나만 바보인가? 아, 나만 유치원에 못 다녔지. 애들은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우고 왔겠구나. 이런, 나 앞으로 어떡하지?

1985년(초1). 또 어느 날.

받아쓰기를 봤다. 오늘은 100점을 맞았다. 선생님께선 '얘들아, 매일 0점만 받던 헤세가 오늘은 100점을 맞았네 다들 축하해 주자'라고 말씀하셨고, 아이들은 박수를 쳐줬다.  사실은 이랬다. 그날은 내가 교탁 바로 앞에 있었고, 선생님께서 '니은 아 받침에 리을 아 받침에 쌍시옷 디귿 아' 이런 식으로 작게 하나하나 다 알려주신 것이다. 그렇게 100점을 맞은 것인데, 선생님은 그건 쏙 감추고 칭찬해 주신 것이다. 앞으로는 받아쓰기를 잘할 것 같다.(실제로 그날 이후 70점 이상만 받음)

 1986년(초2)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산수 박사가 나와서 풀어봐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서 서로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헤세 야, 너 나와서 풀어보라고'다시 말씀하셨고, 난 나가서 풀고 자리에 앉았다. '역시 산수 박사라니깐' 선생님의 강조에 내 별명은 산수 박사가 되었고, 이후 아이들은 나에게 산수문제를  질문하곤 했다.


일기장을 덮으며 "그래, 맞아 그래서 선생님이 되려고 했지, 학생들의 장점을 찾아주고, 못하는 것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고, 꿈을 찾는 것을 돕고, 그 길을 응원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되려고 했었어.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지?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으니" 고개를  책상 위에 파묻는다.


"헤세 선생님은  상처가 많은 가봐요? 치유하고 싶은 게 뭘 까요?"

강사님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다들 의아한 눈빛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며 여러 가지 것들을 하고 있는, 긍정의 아이콘처럼 생활하는 그에게 상처라니? 치유라니?

"선생님이 예술치유모임이라는 소모임을 만드셨잖아요. 굳이 치유라는 단어가 거기 있었어야 할까요?"

그 역시 어리둥절하다. 이렇게 즐거운데 무슨 치유야?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쳐다보던 그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뇨, 그런 것 없는데요. 그냥 저는 단지 치유라는 단어가 뭔가 있어 보여서 쓴 건데요. 근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해요. 미안한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한다.) 휴직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아이들. 솔직히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 아이들이 저를 미워할 거라고, 저를 원망할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제가 아이들을 포기했어요. 그게 너무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오열하는 그.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진 듯이 쏟아져 내린다.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미안한 감정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선생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그를 둘러싸고 있던, 힘찬 에너지로 포장한 비눗방울을 찔러 터트려버렸다.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던 비눗방울이 터지자 앙상하게 마른 채 시들어가는 나무가 드러났다


그와 아이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이과반 중에서도 성적이 가장 낮았던 아이들, 아이들도 속으로 그런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왠지 의기소침해 보이는 아이들, 선택과목을 기준으로 한 반 편성은 아이들을 이미 낙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했을 텐데, 5년 연속 고3 담임으로 지쳐있던 그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기력한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이것 해보자"라고 말해도 시큰둥한 반응.

"다 같이 이런 것 해볼까?"라고 말해도 무관심.

무엇을 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대다수가 긍정적이면 그 속에 동화되어 큰 힘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달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관심한 상태에서 한두 명이 반대 의견을 내면 그것이 전체 의견인 양 정해지고, 그런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보려는 그의 노력은 매번 무산되었고, 무산될수록 그도 지쳐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노력이 멈춰버렸다. 그저 학교생활 전달자, 대입 정보 제공자, 기계적인 상담사가 된 것이다. 마음이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을 찾으려는 노력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 점수면 이런 이런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생각해 보렴"이것이 다였다.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변화를 가장 빨리 눈치챈 것은 아이들이었다. 뭐 그렇다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실낱같이 이어지던 '그래도 담임인데"라는 연대가 끊어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지친 그는 육아휴직을 핑계로 교직에서 도망쳤다.


영상이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세로로 길게 반이 접히고, 또 반이 접힌다. 그러고는 돌돌 말리더니 하나의 작은 구처럼 변해 책상 위에 떨어졌다. 백발노인이 그 회색 메모리 볼을 집어 든다. "메모리 볼"이라고 적혀있는 서랍을 연다.  서랍 안에는 같은 모양의 형형색색의 메모리 볼 수백 개가 들어있다. 회색 메모리 볼들이 있는 곳에 놓고 서랍을 닫는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더니 곧바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헤세에게

좀 전에 자네의 영상을 또 보았네. 자네 마음속에 집채만 한 돌덩이가 여전히 들어있더군.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은, 아니 되돌려서 다시 만들고 싶은 바로 그 1년. 그 1년이 자네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네. 자네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지. 그 아이들을 포기했다는 것이, 교사로서 심리적으로 포기했다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메모리 볼을 꺼내서 수없이 그때를 돌려보았네. 근데 내가 찾은 결론은 "어쩔 수 없다"라네.  자네는 아이들을 포기했다고, 그래선 안 되었다고 얘기를 하고 있지만, 자네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려는 마음을 포기한 건 자네 잘못이 아니네. 그 아이들은 너무 착했고, 너무 내성적이었지. 으샤 으샤 하면서 시끄러운 반을 추구하는 자네와는 맞지 않았어. 단지 그뿐이었네. 서로 핀트가 맞지 않았을 뿐이지. 어쩌면 그때 자네가 그걸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자네가 더 망가졌을지도 모르네. 물론 자네가 "아이들에게 학창 시절 마지막 고3 담임이 우리를 포기했어"라고 아이들이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것은 인정하네. 하지만 자네는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고, 도망가지 않았네. 그 자리에서 서 끝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난 대단했다고 생각하네. 그래도 마음이 가시지 않거든, 이제부터 만나는 아이들에게 갚아나가게. 휴직을 하면서 많이 울고, 많이 반성하면서 에너지를 좀 채우지 않았는가?


내 자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네. 자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육아휴직 기간에 자네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 마치 새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일세. 지금은 글쓰기나 바이올린, 캘리, 디지털 드로잉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또 하고 있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다시 찾은 듯한 인생, 참 멋진 인생이지. 근데 왜 내게는 자네가 아직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물론 하루하루 즐겁게 하는 자네를 보면 그 성장이 날로 놀랍네. 그런 자네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닐세. 다만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그 뭔지 모를 딱딱한 돌덩이를 왜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지 묻고 싶은 거라네. 자네는 이제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지. 그리고 교직을 그만둘 수도 없다는겠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데 왜 자네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가 글에는 등장하지 않는 건가? 자네 교직이 천직이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면 큰 상관이 없다만,-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건 아닐세-혹시 학교에서 도망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자네의 삶과 자네의 글은 서로 동떨어져 있다네,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고, 제각각의 길을 걷고 있지. 물론 학교(회사)의 일을 글로 써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 어떻게 보면 직장과 취미를 분리를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 다만 자네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문제이지.


자네 학교 얘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지 않는가? 아니라고? 거짓말하지 말게나. 자네는 두려워서 스스로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 뿐일세. 그 아이들이 '당신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어요', '선생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쓴 글이에요.'라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네가 그 아이들이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면돌파밖에 없네. 만약 아이들이 그렇게 찾아오면 미안했다고 정식으로 사과하게나.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자네를 더 옭아맬 뿐이네. 선택은 자네의 몫이겠지. 내가 자네의 메모리 볼을 후회의 감정으로 바라볼지, 아니면 후련한 마음으로 바라볼지 자네는 궁금하지 않나? 그건 지금 자네의 선택에 달려있네. 내게 어떤 감정을 주고 싶은가? 나는 후련함이라는 선물을 받고 싶다네. 40년 후의 자네가 그 선물을 받을 모습을 꿈꾸며 지금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네. 글 쓰는 삶을 살기로 했다면 자네의 후회, 두려움마저도 그 속에 녹여내길 바라네. 자네의 삶과 자네의 글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네.

사랑하네. 사랑한다네. 자신을 더 사랑하게나.


고개를 든 그는 일기장에 편지가 끼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편지를 꺼내서 읽기 시작하는 그의 어깨가 떨린다. 빰에 흐르는 눈물이 편지지를 적신다. 눈물에 젖은 편지지가 서서히 희미해지며 사라진다.


#아티스트 웨이

#글쓰기

#편지



작가의 이전글 [3-2] 대체 뭣이 중헌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