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2021년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마음속에는 그래도 며칠은 더 남은 줄 알았는데, 이틀이라니. 해마다 나름의 10대 뉴스를 정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것을 혼자서만 간직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용기를 내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올려보려고 한다. 10가지 뉴스를 정리하면서 올 한 해를 뒤돌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좋았던 일도 있고, 나빴던 일도 있고, 큰 의미를 가지는 일도 있고, 음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싶다.
1. 브런치 작가 선정
4월 1일 만우절. 만우절 거짓말인 것만 같았다. 믿기지 않았다. 작년에 100일 글쓰기를 같이 했던 분들 몇 분이 브런치 작가라고 하셨었는데, 정말 그분들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고, 나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썼던 글들 중에서 몇 편을 퇴고를 한 다음에 저장하고 신청을 해버렸다. 그렇다. '했다'가 아니라 '해버렸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그리고 4월 1일에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우와.... 신기한 일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엄청나게 많은 글을 올릴 줄 알았는데, 또 그건 아니었다. 왠지 모를 압박?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그런 부담이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인지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생각보다 많은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일주일에 2개를 올리는 것이 최소한의 목표였고, 충분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지금은 1주일에 1개를 올리면 성공이다. 계속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데, 한 달에 최소 15개 정도는 꾸준히 쓴 것 같은데, 브런치에 1주일에 글 하나 올리기 어려운 건 음 뭐가 문제일까?
그래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거울', '헤세에게',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3개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거울은 지지부진하지만, 한 발을 내디뎠고, 지금도 내딛고 있고, 내일도 내디딜 것이기 때문에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헤세에게'는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헤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인데, 오랫동안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아직 힘을 내고 있다는 뜻이라 좋다.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은 시즌 1은 7편으로 끝났고, 이제 시즌 2를 시작하려고 한다.
난 바이올린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몰랐었다. 바이올린 레슨을 그만둬야 했을 때 느꼈던 패배감, 그 이후로 느낀 공허함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 컸다.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고 싶지만, 레슨비가 너무 세서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큰 애가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게 되었고,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오케스트라 연습이라니 난 큰 애가 너무 부러웠고, 질투했고, 시기했다. 아내가 농담 삼아 '아들을 시기하는 아빠가 어딨냐?'라고 말할 정도였다.
큰 애에게 '바이올린 레슨 안 할래?'라고 몇 차례 물었다. 수차례 거절하더니만, 어느 날 받겠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좋았던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선생님을 알아봤다. "그룹레슨, 주 1회, 아빠와 아들" 선생님은 바로 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레슨을 다시 받게 되었다. 50분 수업 중에 큰 애가 30분을 하고 내가 20분을 해서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50분 레슨을 받을 때에 비하면 많이 아쉽기 마련인데, 그 아쉬움을 매일 30분씩 꾸준히 하는 연습으로 메꾸고 있다. 1시간 받고 연습을 안 하는 것보다 20분이라도 받고, 꾸준히 연습하는 게 몇 백배 나을 것이다.(물론 50분 다 받고, 연습도 꾸준히 하면 더 좋지만, 그건 말하지 맙시다.)
새로운 곡을 들어갈 때마다 벽을 느낀다. 반복해서 듣고, 악보를 보고, 연습하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완벽해서 넘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된다는 선생님의 판단을 믿는다. 그 판단이 옳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레슨을 받을 때 선생님이 '연습 많이 하셨네요.'라고 말해주시면 기분이 좋다. 나의 노력과 고초를 알아주시기 때문이다. 아니, 내 연습이 효과가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벽을 느끼고, 노력하고, 벽을 뛰어넘는 과정을 매주 반복하고 있다. 나날이 좋아지면서도, 나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할게 많다는 걸 깨닫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즐겁다. 아, 행복하다.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학교는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된다. 사립학교야 바뀌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공립학교는 최대 1/3 정도의 인원이 바뀌기 때문에 보직교사나 담임 등이 매년 큰 변화를 겪는다. 누가 부장이 되고, 누가 담임이 되고, 누가 비담임이 될지는 초유의 관심사다. 나는 작년 12월에 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가정 상황으로 인해 고사했다. 그리고 당연히 담임을 맡게 되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업무분장을 발표할 대는 부장, 부서, 담임 순으로 발표를 한다. 나는 당연히 내 이름이 담임군에 들어가 있을 줄 알았다.
교육과정부 계원을 발표하는데 순간 내 이름이 들렸다. 내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기에 깜짝 놀랐다. 부장도 아닌데, 비담임이라니. 이 무슨~~~ 교직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담임을 맡지 않게 되었다. 비담임은 담임이 갖게 되는 심리적인 부담이 없다는 것이 참 크다. 특히, 아침 조회와 종례를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점이 있다. 30분 정도의 시간을 더 사는 느낌이랄까? 아쉬운 것은 "내 아이들"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는 것이다. 왠지 모를 소외감이랄까? 그런 게 참 허전하다.
부서 업무는 음, 뭐랄까 가끔 구멍 뚫린 독에 물 붓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는데, 퇴근할 때가 되면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 계속 계획만 세우고, 세운 계획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그러느라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며칠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일 하나가 끝나 있다. 무척 바쁜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는 없고, 그렇게 며칠, 몇 주가 지나서 일이 진행되어 있는 그런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공문 처리할 게 정말 많다. 담임할 땐 공문을 만드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무슨 공문을 이리도 많이 받고, 많이 보내는 건지. 아무튼 첫 비담임은 나에게, 학교에게 모두 필요했던 적절한 인사였던 것 같다.
4. 해리포터 입덕
지난 1월, 큰 아이(초4)에게 책을 읽게 할 목적으로 해리포터 영화를 보여줬다. 1부를 보여주고, "책 읽으면 2부 보여요 줄게"라고 말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렇게 해리 포터에 입덕할 줄은 몰랐다. 아이를 읽게 하려는 목적은 반만 이뤘다. 큰 애는 2부부터 4부까지 책을 봤다. 그리고 5부부터 7부까지는 내가 봤다. ㅋ. 해리 포터를 다 읽고, 영화를 다 보고, 원서를 샀다. 원서는 1부부터 3부까지 읽었다. 그 이후에 흐름을 놓쳐서 못 보고 있지만, 1월이 되면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원서를 읽으면서 영어에 대한 부담이 많이 사라졌다. 왕좌의 게임을 영어 자막으로 다 봤다. 지금은 외화를 볼 때, 영어 자막으로 본다.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넘어간다. 한두 단어라던가, 몇 마디 이해 안 돼도, 전체적으로 이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원서를 읽으면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끝까지 읽기. 그건 정말 중요한 습관이라고 생각된다. 이해가 되건 안되건 끝까지 보는 것, 그러고 나서 다시 보면 처음과 분명 달라져 있다. 그게 뭔지 정확히 짚을 수 없을지라도 확실히 뭔가 달라져있다. 지금도 가끔씩 해리 포터를 켜놓고 그냥 딴짓을 한다. 귀로 뭔가 들리건 말건.
글을 쓸 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글감도 필요하고 필력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필요한 건 꾸준함이 아닐까 싶다. 전업작가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은 매일 또는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혼자서 쓴다면 그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그럴 때 있으면 좋은, 아니 꼭 있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글벗이다.
지금 나에겐 두 무리(부류? 그룹?)의 글벗이 있다. 매글과 일과삶이다. 매글은 희망님이 운영하는 '매일 글쓰기'로 두 주간 10편의 글을 쓰고, 한 주 쉬는 식으로 3주마다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기수가 끝나면 매거진도 만들고 있다. 매글 매거진은 2기까지 나왔다. 다소 무료해지는 찰나에 매거진이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전직 편집장님이 만드는 거라 그런지 예쁘고 볼만하다.
일과삶은 글쓰기 모임을 통칭해서 표현한 것이다. 일과삶님이 운영하는 글쓰기를 지금 3기째 연속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10기, 아티스트 웨이 마이웨이 1기와 2기, 각 10주 과정이니 30주를 함께하고 있다. 나찾글 10기 글벗들과는 한 달에 한 번 따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매주 주어지는 주제에 맞춰 글을 쓰다 보면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나만의 아지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냥 방 하나에 책상 하나, 거기에 이젤과 수채화 물품들을 맘껏 펼쳐놓고, 주말이나 시간 될 때 가서 그림을 그리는 공간을 꿈꿨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런 꿈이 이루어졌다. 오피스텔이 생긴 것이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텅 빈 오피스텔, 관리는 내가 해야 되기에 거기에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젤, 화판, 스케치북, 물감, 그림 관련 책 등을 모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복층에는 아이들이 놀 것을 가져다 놓았다. 지난주에는 아이들과 거기에 가서 자고 왔다. 아이들은 놀고 난 수채화를 그리고 너무나 좋았다. 비록 2년이라는 한시적인 시간이지만, 한번 그런 공간을 맛보면 다음에 또 맛볼 수 있겠지.
학교에서 캘리 동아리를 2년째 담당하고 있다. 강사분을 초빙해서 뭔가 작품을 만드는 것을 진행했는데, 그때마다 강사비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작품 재료는 동아리비로 쓴다고 하더라도, 문득 꼭 '강사분을 꼭 초빙해야 되나? 내가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꾸준히 캘리를 했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기로 했고, 자격증을 땄다. 그때 시작한 아침 캘리를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사실 12월은 생기부 쓰느라 못했지만, 곧 다시 시작 예정) 지금 목표는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2시간짜리 원데이 클래스, 4시간짜리, 8시간짜리, 10시간짜리, 20시간짜리 강의 교안도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도서관에서 캘리그래피 원데이 클래스를 열어보는 것이 작은 목표이다.
나에겐 여러 가지 성공 경험이 있다. 아니 "꾸준한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도전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벽보다 높은 계단이 되어 벽을 넘어간 경험들이 있다. 그 경험을 나는 '껍질 깨기', '실패 예찬', '성공 경험', '성취 스토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그것들을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어서 교육과 정안에 넣었다. 1학년 자율시간에 10차시 과정 만든 것이다. 영상을 찍고, 유튜브에 올리고, 학습지를 만들었다. 솔직히 처음엔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라는 확신 앞에 그 고민은 날아가 버렸다. 올해 내가 한 선택 중에 정말 좋은 잘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듯한 그런 시간이었다.
TV 중독이 심한 나는 결혼을 하면서 TV를 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10년 동안 집에 티브이가 없었다. 티브이가 없어서 좋은 점은 아이들과 얘기할 시간이 많다는 것, 티브이가 없어서 나쁜 점은 아이들을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큰 애가 원격수업을 하는데, 집에 계속 있으면서 작은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계속 유튜브 등의 영상을 본다. 눈 바로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아서 보는 것이 싫어서 큰 화면에서 편하게 보라고 티브이를 사기로 했다. 삼성, 엘지를 고민하다가 중소기업의 스마트티브이를 사기로 했다.
크기도 무려 65인치를 사기로 했다. 중소기업 티브이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엄청 좋다. 가격이 싸면서도 화질도 좋고 무려 5년이나 무상 보증을 해준다. 누군가는 중소기업 티브이는 2년이면 고장 난다고 하는데, 비싼 거를 사서 10년을 쓰는 것보다 2년마다 바꾸는 게 난 더 낫다고 생각된다. 솔직히 2년이면 그만큼 기술이 좋아져서 더 나은 제품을 싸게 살 수도 있다. 비싼 돈 주고 대기업 제품을 사는 것보다 이게 가성비가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마트티브이를 사서 유튜브나 넷플리스, 왓챠를 보고 있다. 아쉬운 건 그 당시 75인치와 85인치는 한 달 정도 있어야 출시되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65인치를 산 것이다. 65인치도 충분히 큰데 계속 보다 보니 좀 부족한 감이 있다. 5년 후에는 85인치 티브이를 살 것이다. 지금 가격으로 대충 비교하자면, 대기업 티브이 한대 살 돈으로 65인치 사고 85인치 사도 돈이 남는다.
10. 그림 그리기 책 완독
내 책상에 있는 책은 크게 소설, 에세이, 글쓰기, 그림, 바이올린 이렇게 다섯 종류이다. 그림 관련 책은 색연필화, 수채화, 연필 드로잉, 꽃그림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어느 것 하나도 끝까지 그린 것이 없다. 그런데 디지털 드로잉 책은 처음으로 끝까지 다 그린 책이다. 그리는 동안에는 그림 실력이 느는 줄 몰랐는데, 다 그리고 나니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겠더라. 스케치라던가 색칠이 전과 달리 자신감이 붙었다. 책 한 권을 끝까지 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거 완독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 듯한데 뭐라고 해야 되는 거지? 암튼 책 한 권을 다 따라 그렸다. 그 끈기와 인내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