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에게 오랜만에 쓰는 편지일세. 많은 일들이 있었다네. 아니 그보다는 두려움이 컸다고 해야 할까? 내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자네를 알게 되고, 자네에 빠졌지. 그리고 혼자 자네를 친구라 여겼지. 그리고 가끔 막힐 때면, 막막할 때면 이렇게 자네에게 편지를 쓰며 혼자서 넋두리를 하며 풀어내곤 했지. 그걸 혼자서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네. 그러다가 그 편지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네. 자네 이런 세상을 상상이나 했었는가? 누구나 자기만의 글을 쓰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세상 말일세. 처음에 자네에게 쓴 편지를 올릴 때는 뭔가 뿌듯했다네. 두 번째 올릴 때는 마음속 깊은 고민을 토로할 수 있었지. 근데 그렇게 두 번의 편지를 쓰고 나니 벌컥 겁이 나더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뭐라고 욕하면 어쩌지?' 참 겁이 났었네. 그래서 몇 번이고 자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다가 결국 쓰지 않았다네. 혹 내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미안하네. 그려.
글을 쓰겠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지낸 지 벌써 수년이 지났네. 자네를 알고 나서는 더 심해졌지. 그때마다 몇몇 분들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라는 말을 했었지. 근데 매번 포기했었다네 "내 주제에 무슨?' 그런 생각이 강했지. 또 도전했다가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네. 실패가 두려워 움직이지 못하는 멍청이가 바로 나였다네. 그러다가 지난주에 지인의 칭찬에 용기를 얻어 도전을 했지. '뭐 떨어지면 어때? 까짓꺼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지'그런 마음이었지. 신청을 하면서는 큰 상관이 없었네. 왜냐면 도전했다는 그것 자체가 내게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일세.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는 막연한 소망에서 '작가가 될 거야'라는 결심을 굳힌 계기였으니까 말일세. 그리고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자네는 알겠는가?
너무 기뻤네. 그래서 바로 하나의 글을 올렸지.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고 그런 게 너무 즐거웠지. 참 좋았네. 참 좋았어. 그런데, 또 다른 글을 올리려니 숨이 턱 막혔다네. 대체 어떤 글을 올려야 할지. 무서웠다네. 갑자기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왔지. 그래서 며칠을 고민했네. 이전에 썼던 글에서 하나를 올릴까? 생각도 했지. 그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지. 자네도 알다시피 그간 나는 퇴고를 거의 안 하지 않았나? 퇴고를 하는 습관도 들일 겸 좋은 방법이 되겠지. 그럼에도 뭘 쓸지 도저히 모르겠더군. 자네는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했나? 자신과 글을 쓰기로 약속한 때가 있는데, 그때가 지나가도 글을 쓰지 못하는 이 패배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을 어떻게 표현을 할지 막막하구먼. 너무 막막해서 자네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네. 내 근황도 알려줄 겸. 겸사겸사.
그런데, 내 필명이 뭔지 아나? 내가 감히 "헤세처럼"이라고 필명을 지었다네. 자네의 동의도 없이 말일세. 만약 자네가 내 앞에 있다면 자네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쑥스러워했을까? 아니면 뿌듯해했을까? 아니면 어이없어했을까? 그도 아니면 버럭 화를 냈으려나? 문득 이 상상을 하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너무 웃기지 않은가? 사실 뭔가 그럴싸한 필명을 하나 만들고 싶었네.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했지. 근데 딱히 마음에 든다던가, 입에 착 달라붙는 다던가 하는 필명은 없었네. 물론 그냥 내 이름 석자 박.현.수.를 그대로 써도 되지만, 난 필명을 만들고 싶었네. 그게 허영이라고 누군가 말할지라도 난 갖고 싶었네. 그것 만은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진실일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필명을 쓰는 단계가 있었네. 아이들에게 필명을 쓰라고 하기 전에 먼저 본보기를 보여줘야 했고, 고민을 하다가 자네를 좋아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헤세처럼'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했지. 사실 아이들에게 쓰는 말이라 어떤 치장이나 허영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 꿈을, 내가 살고 싶은 삶을-글 쓰고, 그림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자네의 삶-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네. 그래서 '헤세처럼'이라고 지었지.
그 필명을 그대로 나의 브런치 작가명으로 쓰기로 했다네. 사실 '헤세처럼'이라는 필명은 너무 노골적이라고 할까? 자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기절초풍에 대로할 만한 일 아니겠는가? 자네라고 친구처럼 부르고, 게다가 이름까지 따라서 필명을 쓰다니. 뭐 글을 정말 잘 써서 다른 사람들이 "헤세처럼이라고 할만하네"라고 인정한다면 모를까? 글도 제대로 못쓰는 어설픈 사람이 나타나서 감히 '헤세처럼'이라니 말일세. 처음에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는 것은 무척 꺼렸다네. 고민을 많이 했지.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헤세처럼'이라는 필명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이네. 자네처럼 글 쓰며, 그림 그리며 살고 싶은 내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서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네. 다른 사람의 시선이 겁나기도 하지만,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지. 사실 전부터 '헤세처럼'이라는 말을 쓰고 싶었었거든. 아이들과 하면서 만들었던 필명이 막혀있던 물줄기의 물꼬를 튼 것일세. 한번 쓰니 정말 마음에 들고, 계속 신이 나는 것 있지 않나?
그래서 블로그에 쓰던 별명을 헤세처럼 이라고 바꾸었네. 전에 쓰던 별명 '슬로비'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내 인생철학 같은 별명이었지. 그동안 그것을 뛰어넘는 별명을 갖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었네. 그런데 '헤세처럼'은 그걸 뛰어넘는 느낌이 들었다네. 슬로비가 뭘 하든 꾸준히 끝까지 하겠어라는 삶의 태도라면, 헤세처럼은 작가로서, 글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겠다는 의지, 희망, 포부, 열정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네. 그래서 슬로비를 버리는(?) 것은 많이 아쉽긴 하지만, 헤세처럼은 슬로비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르네. 지금 내 상황에서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선 슬로비는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세. 그렇게 블로그를 헤세처럼으로 바꾸고, 브런치 작가명도 헤세처럼으로 등록했네. 몇몇 분이 나에게 댓글을 달거나 대화를 할 때 "헤세 님은 ~~"이라고 말을 할 때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네.
내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자네의 책을 보며 거기에서 빠져나왔었고, 자네의 책들을 읽으며 작가로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지. 자네의 이름을 사칭한다고 누군가가 욕을 할지도 모르고, 글발이 자네의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자네의 삶을 동경하는 나에겐 '헤세처럼'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밤하늘의 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이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라네. 자네 허락도 없이 '헤세처럼'이라고 필명을 정해놓고, 이제야 자네에게 청하네. 자네의 이름을 내게 빌려주겠나? 내 비록 지금 당장은 자네처럼 대작을 쓸 재능은 없으나, 자네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항시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겠네. 어느 날 누군가가 '헤세처럼 님은 정말 헤세처럼 살았네'라는 말을 드기를 바라네. 허락해줘서 고맙네. 자네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았네. 자네가, 아니지 자네의 글이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처럼, 내 삶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게 북극성이 되었으면 좋겠네. 내 삶의 발자취를 가장 잘 남기는 방법이 바로 글 아니겠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아니 삶에 대한 작은 기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복인가? 역시 자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내 삶에 큰 복일세. 자네, 참 고맙네. 거기 있어줘서. 다음에 또 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