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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l 11. 2021

친구여, 자네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게나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10기(7th), 헤세에게 쓰는 편지 NO.5

친구, 잘 지내는가?

요즘 자네의 편지가 오지 않아서 내 이렇게 먼저 펜을 들었네. 자네가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었으니, 나도 그에 응하기로 했지. 자네는 지금 딱 내 인생의 절반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 그런 자네가 나를 멘토로 삼고, 나를 동경하며 나에게 편지를 썼을 때 무척 반가웠다네.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듯, 고해성사를 하는 듯 담담하게 내뱉는 자네의 글을 보면 어렴풋이 나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네. 자네가 데미안을 읽었을 그때, 나는 데미안을 썼었지. 그것만으로 마치 무슨 인연인 양 의미를 부여하는 자네가 조금은 우습기도 했지만, 내심 반가웠다네. 어찌 되었든 데미안은 내 삶의 결이 들어간 작품이고, 자네가 그 결에 뭔가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은 40대 초반의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방증이 아니겠나?


근데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네. 자네 참 당돌하더군. 자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나? "헤세가 가장 잘 쓰는 줄 알았는데, 문장이나 내용이나 완성도로 보면 더 좋은 작품들도 너무 많더라고요. 헤세보다 뛰어난 소설가가 있다는, 그것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해요."라고 말하거나 "헤세의 그림은 그냥 보면 잘 그린 그림은 아니거든요. 그냥 자기가 좋아서 그린 그림이에요. 어떻게 보면 헤세가 그려서 유명해진 그런 것도 있다고 봐요."라고 말을 한 것 말일세. 자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나? 나 여기서 자네의 얘기를 들으면 조금 섭섭하기도 했네. 하하. 물론 농담일세. (사실, 자네의 그림은 정말 뛰어나다네 그림을 배우면서야 알게 되었지. 감히 내가 저런 말을 하다니. 친구 미안하네. 내가 몰랐네. -헤세처럼)


내 어찌 자네 마음을 모르겠나. 그다음에 한 말들이 나를 사로잡았다는 것 자네도 알겠지. 자네는 이렇게 말했지. "뛰어난 소설가는 많지만, 제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는 작가는 헤세밖에 없더라고요."라고, "헤세의 그림은 그냥 자신의 그림을 그린 거예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한 거죠. 그래서 헤세의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결이 달라요. 느낌이 다른 거죠. 투박한데도 편안해요.'라고 말일세. 자네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네.


자네는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맴돌고 있네. 아니 생각이라기보다는 걱정과 기우라고 할까?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 자네의 글을 나쁘게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자네의 글이 유치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 자네의 글이 인기를 얻지 못할 거라는 생각 등등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자네를 꽁꽁 묶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자네가 내 그림을 보고 했던 말을 그대로 자네에게 해주고 싶네. "자네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네가 쓰고 싶은 것을, 그냥 자네의 글을 쓰게" 자네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떻고, 누군가 자네의 글을 흉보면 또 어떤가? 자네의 꿈은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길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냥 자네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것,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자네의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물론 자네가 나를 동경하고 있기에,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잘 알고는 있네. 또한 그 마음 때문에 자네의 글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매번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 내 결코 자네의 마음을 비웃는 것은 아닐세. 다만, 지금 자네의 위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말일세. 사람들은 '대작'에 관심을 가질 뿐, 그 대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네. 뭐 때론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순식간에 하나의 작품을, 그것도 엄청난 대작을 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엄청난 고뇌의 시간이 있었다네. 나는 자네에게 '그 시간을 충분히 거쳤는가? 충실히 거치고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네는 그 고뇌의 시간을 시작하긴 했는가?라고 묻고 싶네. 아, 자네는 시작은 했군. 말을 바꾸겠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네는 그 고뇌의 시간을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네.


나의 말이 자네에게 힘을 주는 말이 될지, 아니면 자네를 좌절시키는 말이 될지 잘 모르겠네. 아니 사실, 자네는 알고 있지 않나. 나의 말이 지금 당장은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만큼 난 자네를 믿고 있네. 그러니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자네가 무슨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는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네. 그 글이 엉망이어도 상관없네. 자네의 글은 자네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서, 자네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설렘을 느끼게 해줄 것이네. 사실 글이란 것이 다 그렇네. 자네 왜 책을 읽고, 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가? 하나하나가 다 자네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 아닌가? 그것이 감동일 수도 있고, 깨달음일 수도 있고, 정보일 수도 있지. 무엇이든 줄 수 있다면 그 글은 그것으로 생명을 갖는 것이네. 자네가 쓴 글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자네가 알아줬으면 좋겠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결같이 "자네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게"일세.


자네가 쓰는 글 하나하나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네. 만약 자네가 책을 낸다면, 내 온 세상에서 가장 먼저 자네의 책을 읽어보겠네. 자네 겉으로는 '책에 대한 욕심을 버렸어요.'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가슴속에 강하게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럼 쓰게. 단,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쓰게. 책을 내는 가장 빠른 길은 자네가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쓰는 걸세. 다른 길은 없네. 내 여기서 자네를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겠네. 힘내시게.


2021년 6월 24일(목)

헤르만 헤세가 헤세처럼에게

매거진의 이전글 감히 '헤세처럼'이라고 필명을 지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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