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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Mar 12. 2022

[5-2 ] 캠핑카 타고 떠나는 바이올린 여행

아티스트 웨이 마이웨이 2기

양재역 예술의 전당 지하에 있는 악기사에 들어간다. 사장님에게 바이올린을 보여 달라고 말한다. 어떤 바이올린을 살지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지만, 이것 저것 다른 것들도 구경해보고 싶었다. 눈앞에 펼쳐진 악기들의 런웨이,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황홀하다. 이 악기, 저 악기 사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손으로 잡아본다. 매끄러운 바디와 부드러운 곡선, 중후감 있는 색이 매력적이다. 줄을 튕겨본다. 잔잔하게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 아 좋다. 사려고 마음먹었던 악기를 달라고 한다. 카드를 꺼내며 '일시불'이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다. 당당하다. 처음 바이올린을 배울 때, 악기사에서 수 백 만원들이 즐비한 바이올린 속에서 10만 원짜리 입문을 바이올린을 사며 쭈뼛거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내가 천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사다니. 감개무량하다.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향한 곳은 캠핑카 전시장이다. 이제 아이들은 다 커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아쉽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바로 주말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이런 거를 두고 시원섭섭이라고 하겠지? 이제 큰 텐트를 치는 것 좀 힘에 부친다. 그래서 캠핑카를 사러 왔다. 너무 큰 차는 운전하기 힘들고, 혼자 다니거나 아내와 둘이 다닐 것이기 때문에 소형 캠핑카를 산다. 캠핑카에 싣는 첫 짐은, 아니 캠핑카의 첫 손님은 조금 전에 산 바이올린이다. 캠핑카를 끌고 집에 온다. 미리 정리해둔 그림도구와 노트, 간단한 식기류를 챙긴다. 오늘은 혼자서 캠핑을 간다. 오래전부터 가족들에게 얘기해둔 혼자만의 캠핑이다.


캠핑장에 도착한다. 쉘터를 꺼내서 설치한다. 캠핑카가 있어서 설치를 안 해도 되지만, 쉘터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위해 설치를 하는 것이다. 쉘터를 치고, 테이블을 한편에 놓아둔다. 다른 것을 하기 전에 바이올린을 꺼내 조율을 한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한다. 첫 곡은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달아 연주한다. 사람들 앞에 공연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듣고 얼굴을 찡그릴 정도도 아니다. 들어줄 만한, 캠핑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에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기웃거리지만,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간다.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서 동요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나비야를 연주하니, 아이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요를 계속 연주하자, 노랫소리가 점점 커진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다 온 것 같다. 문을 열고 나가자 열댓 명의 아이들이 쳐다본다. 아이들에게 '무슨 곡 연주해줄까?'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이것저것 대답을 한다. 그중에 한 곡을 골라 인터넷에서 악보를 찾는다. 악보를 보고 연주를 시작한다.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캠핑장에서 작은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동요 몇 곡을 끝내고, 다시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자 주변 어른들도 가까이 와서 모인다. 한 곡, 두 곡, 세 곡, 총 다섯 곳을 연달아 연주하고 멈춘다. 박수가 쏟아진다. 인사를 하고 연주가 끝났다고 말한다.


저녁은 햇반에 고기다.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혼자 온 것을 알자, 연주를 들었던 분들이 음식을 조금씩 챙겨주신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지만, 고맙게 받아둔다.  저녁을 먹고 불멍을 때린다. 불멍을 때리다가 책을 읽는다. 오랜만에 읽는 데미안이 가슴속 깊이 들어온다. 데미안이 '헤세야, 너 자신에게 가는 길을 찾았니?'라고 묻는다. 데미안에게 미소를 던져주며 책을 덮는다. 그리고 그림도구를 꺼내 세팅을 시작한다. 이젤을 펴고, 화판을 올린다.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물감과 팔레트, 붓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을 다 그리고 캠핑카에 가서 잠을 청한다.


지금 쓴 글이 앞으로 10년 후의 모습이길 간절히 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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