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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Mar 26. 2022

바이올린을 새로 샀습니다.

#나의 오티움(2-3)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3년 전에 처음 배울 때도 진심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진심이 되었습니다. 바이올린을 그만둘 때만 해도 바이올린이 저에게 이렇게 깊은 의미를 가지는 줄은 몰랐었거든요. 다시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애간장이 탔었는지. 작년에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 정한 지침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 30분씩은 꼭 연습하기. 레슨만 받고 연습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레슨을 받으면서 매번 레슨 일지를 적습니다. 무슨 곡을 배웠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등 배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 그리고 1주일간 그걸 중점적으로 연습을 했지요. 거의 매일 연습을 했습니다. 시골집에 가거나, 회사일이 정신없이 바쁘거나,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꾸준히 했지요.


7개월가량 지났을 때는 드디어 '힘 빼세요"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활을 잡는 오른손에 힘을 빼는 것, 현을 짚는 왼손 손가락에 힘을 빼는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감을 잡은 것이지요. 매일 꾸준히 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더듬더듬 거리며 악보를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계속 듣고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곡을 다 외우고 연주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 스스로 놀라울 정도지요. 물론 저는 이제 스즈키 2권 뒷부분을 나가고 있는 병아리이긴 합니다만.


진심으로 하다 보니 악기에 욕심이 생기더군요. 입문용 바이올린, 악기사에서 13만 원 주고산 바이올린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실력도 없는 놈이 악기 탓한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몇 달 전부터는 입문용 바이올린의 한계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슨 선생님께 물어봤었지요. "바이올린 취미용으로 얼마 정도면 살 수 있을까요?"라고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30만 원이면 우선 지금보다 좋긴 한데, 나중에 가서 아쉬울 수가 있어서요. 60만 원 정도, 아니면 조금 더 욕심내서 100만 원 정도는 사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셨죠.


바이올린 악기는 몇만 원부터 시작해서 몇십, 몇 백, 몇 천, 몇 억까지 다양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몇 억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쓰는 악기이고, 몇 백에서 몇 천은 바이올린 전공생들이 쓰지 않을까 싶네요. 나름 검색을 해보니 적어도 100 정도는 줘야 중급으로 괜찮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뭐, 바이올린보다 제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거지만, 제 실력도 좋아지고, 바이올린도 더 좋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취미생활에 백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바이올린에 진심인 저를 보며 아내가 바이올린을 새로 사라고 말한 것이 작년 제 생일 때였습니다. 그때는 바이올린 열쇠고리를 선물해주면서 그 안에 "바이올린 구매 가능권"을 같이 주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바이올린을 샀습니다. 이 한마디를 위해서 사설이 길었네요. 레슨 선생님을 통해서 샀습니다. 정말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난밤에는 얼마나 설렜던지 간 밤에 바이올린을 사러가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카키색의 바이올린 케이스, 왠지 예쁘지 않나요?

바이올린을 받는데, 케이스부터 왠지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아니 입문용 바이올린에 비해서 확실히 좋습니다. 튼튼한데 부드럽고, 색도 예쁩니다. 국방색(?)이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색이었는데, 이제는 좋아졌습니다.


케이스 내부, 베이지색이 너무 고급지다.


바이올린 케이스의 내부입니다. 베이지색 배경이 청초한 것이 마음에 듭니다. 적갈색의 바이올린 닦는 천과 같은 베이지색의 보호덮개 믿에 바이올린이 숨겨져 있습니다. 핸드폰을 사거나 태블릿을 살 때도 이런 오픈 샷을 찍어본 적이 없는데, 바이올린은 별걸 다 하게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언박싱을 하는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호덮개를 걷어낼 때, 얼마나 두근두근했는지, 정말 설렜답니다.


영롱한 빛깔을 내는 새 바이올린

보호덮개를 벗깁니다. 아, 보는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집니다. 이렇게 예쁠 수 있는 건가요? 영롱한 빛이 흘러나옵니다. 제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눈으로 봐도 입문용 바이올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와, 차마 손을 대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바이올린 위(화면상)에 보이는 것은 습도계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송진을 넣는 주머니입니다. 입문용 바이올린 케이스와는 구조가 다르더군요. 오른쪽에 있는 공간은 어깨 받침대와 천 등을 넣는 공간입니다.


송진입니다. 무척 고급스럽네요. 송진 케이스가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활에 송진을 바를 때는 불편하더라고요. 이것에 익숙해지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저렇게 쏙 들어갑니다. 너무 앙증맞고 귀엽습니다. 실용성은 떨어져 보이는 것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뻐서 만족합니다.



영롱한 바이올린

빛에 반사가 되면서 영롱한 빛을 냅니다. 눈이 부실 정도네요. 네 과장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압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리겠지요. 어떤 소리가 나느냐가 가장 중요하지요. 어깨 받침대를 걸고, 활에 송진을 바르고(처음 바르는 것이라 그런지 송진을 바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조율을 하고, 자세를 잡아봅니다. 그리고 활을 그었습니다. 오~~~~ 영롱한 소리가 나더군요. 입문용 바이올린과는 다른 소리가 납니다. 같은 음인데 다른 소리라니. 제18번인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오~~ 소리가 다른데, 끽끽 거리는 소리가 안나는 것 같아."라고 말을 합니다.


몇 개의 곡을 더 연주해 보는데 소리가 다릅니다. 확실히 다릅니다. 이래서 비싼 악기를 사용하나 봅니다. 백만 원짜리가 이럴진대, 천만 원짜리는, 억 짜리는 또 어떨까요? 뭐 그건 그림의 떡이지요. 전 이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레슨 선생님이 미리 조율을 하고 연주를 해봤는데, "소리가 따뜻하고 차분하게 나온다"라고 말을 해주셨습니다. 제 실력을 더 갈고닦으면,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처럼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소리는 이제 저에게 달려 있습니다.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서 마음이 심란한데 바이올린이 저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온과 행복을 주고 있네요. 정말 바이올린이 저에게 이렇게 까지 큰 존재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행복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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