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읽어왔다. 항상 손에 책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즐겨 읽는 편이다. 독서 편식이 심하긴 했지만, 지금은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내게 있는 여러 가지 습관(혹은 기호) 중에 ‘이것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독서습관이다. 전부터 한번 나의 독서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기록의 차원에서 자랑의 차원에서 성찰의 차원에서-오늘 써보려 한다.
1기. 권선징악이 몸에 배고, 칠전팔기를 등에 업고(초등학교)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은 책에 대해서까지 마음을 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이 있는 집에 가서 종종 놀았는데, 외삼촌댁과 동네 형 2명의 집이 생각난다. 외삼촌댁에는 한국 전래동화 전집이 있었다. 그리고 블록놀이가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두 가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축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핍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지금 거실을 가득 메운 책장과 꾸준히 사고 있는 레고는 그 시절 채우지 못한 결핍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다. 잠시 다른 곳으로 샜는데, 동네 형네 집에는 위인전 전집이 있었다. 전래동화 전집과 위인전은 정말 열심히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전래동화의 주제는 결국 “권선징악”이고, 위인전의 주제는 결국 “칠전팔기”가 아닌가? 어린 시절의 나는 독서를 통해 이 2가지가 저절로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많은 책을 읽었는데, 주로 읽은 책은 위인전이거나 셜록 홈스 시리즈였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위인전은 “콜럼버스”와 “이순신”이다.
2기. 남자들의 통과의례(?) 무협소설(중학교)
중학교 때는 무협지를 많이 읽었다. 어디서 처음 접했는지 기억은 안 나고, 그리고 언제까지 즐겨 읽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2기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것은 기억에 강하게 남은 무협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제목은 “협객행”이다. 무협지의 주제로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지만, 어떤 무협지에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협객이다. 내가 인식한 협객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는 의로운 사람이다. 주인공이 그런 협객을 하거나 주인공 옆에 존재한다. 검색을 해보니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 이미 약속한 일은 반드시 이행하며 자신의 위급함을 돌보지 않은 채 남의 위급함을 돕고, 사생 존망의 위급함을 겪었어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사기, 사마천)라는 글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 이후로 협객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 책이 기억나는 이유는 국어 선생님이 이 책을 보고는 “무협지는 머릿속에 남는 거도 없는데, 남자애들은 꼭 읽더라”뭐 그런 말을 하시면 핀잔을 주신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뭐, 그에 아랑곳 않고 많은 무협지를 읽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웅문이다. 참, 무협지에는 광룡강천, 절대지존, 의천도룡기 등등 수많은 한자어가 나오는데 한자에 관심이 있다면 한자 실력도 좋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3기. 삶은 슬럼프, 독서는 황금기(고등학교)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난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왔던 선생님을 포기했었다. 그땐 그랬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꿈을 포기하고, 그 허전함을 메꾸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겨울방학 내내, 그리고 2학년이 된 3월까지. 3월 말, 수학 책 한 권을 혼자 독학으로 다 끝내고 책을 덮는 순간, ‘꿈도 없는데 공부는 뭐하러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난 슬럼프에 빠졌다. 학교에서 계속 잠만 잤다. 점심시간에 한번, 청소시간에 한번, 집에 갈 때 한번, 이렇게 3번 깼다. 모범생은 아니지만, 열심히 생활하던 내가 갑자기 무기력해지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리고는 학교 독서실(자습하는 자습실)에서 11시가 되어 집에 갈 때 책만 읽었다(그때는 자습을 11시까지 했었다. 어메 징한 거). 그러니깐 2학년 1학기 때, 내가 유일하게 활기차게 움직였던 시기가 점심시간이었다. 학교 도서관(교실 하나를 개조한 작은, 지금의 학교들에 있는 도서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열악했다.)에 가서 책을 대출했다. 책 뒤에 있는 대여 목록에 내 이름을 적는 것이 재밌기도 해서 더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태백산맥(조정래), 아리랑(조정래), 백정(정동주)”등이다. 그때부터 1권짜리 소설보다는 10권짜리 역사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삼국지도 종류별(번역 작가별)로 다 읽으려고 했었다. 147.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숫자. 1학기 말,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책들을 찾아 헤아려본 숫자이다. 4월부터 7월까지 4달 동안 무려 147권의 책을 읽었다. 이때 읽은 독서는 지금의 내 삶에 많은 힘을 주고 있다. 특히, 여름방학이 끝나고 본 모의고사에서는 언어영역이 20점이 올라 있었고, 그 이후로 언어영역은 줄곧 상위권 점수를 유지했다.
4기. 인생의 황금기, 나를 꽃피우는 자기 계발(대학교 군 제대 이후~직장 생활)
대학교 시절은 사실 흥청망청 살았다. IMF 시대의 과도기랄까? 대학 분위기가 많이 바뀐 시기이기도 하다. 96년 연세대에서 열린 한총련 집회를 너무나 부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의해 국민들은 학생운동에 눈을 돌렸고, 98년에 터진 IMF로 대학생들도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점점 약해져 가는 학생운동의 맥락을 체험하고, IMF의 시작을 볼 때 즈음에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고 오니 학생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예를 들어, 군대 가기 전에 실험 보고서는 5장이 기본이었고, 거의 대부분 그 정도만 했는데, 후배들은 20장은 기본, 별의별 그림과 자료들이 다 들어가 있었다. 왜 그럴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대세였다. 공부하는 대학, 스펙 쌓는 대학으로 분위기가 넘어가 있었다. 그 분위기 탓은 아니지만, 잃어버렸던(포기했던) 꿈을 되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의 삶을 전반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했다.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그때 읽은 책 한 권이 내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1%만 바꿔도 인생이 바뀐다.”(이민규)가 그 책이다. 작가는 생활을 바꾸기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지 1%만 바꿔도 된다고 말한다. 그 1%가 부담 없이 다가왔다.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것에 줄을 치고,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세상의 모든 굼벵이들을 위하여’(~~ 엠멋) 등등 많은 책을 읽었다. 내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관록이 붙을 때까지 10여 년 동안은 정말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었다. 플래너를 쓰기 시작했고, 관련 카페에 가입했고, 글도 쓰고 했고, 그때 쓴 글들이 묶여 내 자기 계발서로 나오기까지 했었다. 하나에 푹 빠져서 그거만 하니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하는구나 싶다.
5기. 독서 암흑기, 끊어지지만 않게(직장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책을 깊게 읽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읽기는 했다. 직업에 관련된 책, 단권 소설들, 자기 계발서 등을 주로 읽었다. 이 시기에 만난 책 중에는 인생 책으로 꼽을 만한 책이 있는데 바로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다. 인생수업은 처음 읽은 이후로 지금까지 5번 정도 읽은 것 같은 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눈에 들어오는 부분도 다르다. 1년에 한 번씩 읽으려고 했었는데, 그러진 못하고 2년에 한 번씩은 읽는 것 같다. 이 책이 기억나는 것은 2011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쓴 후기 때문이다. 그때 후기를 쓰면서 처음으로 내면 아이에 대해 인식했고, 어린 시절의 나를 다독여주는 나만의 치유법을 처음 시작했다. 책 읽기가 그리고 글쓰기가 치유가 되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6기. 독서 편식에 벗어나다.(육아휴직과 독서모임)
육아휴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육아에만 충실하다가 집 앞에 도서관에 있는 글쓰기 강좌를 듣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각종 동아리 활동들, 주민센터에서 진행되는 각종 문화행사(주민센터에 이런 게 있는 줄은 몰랐었다.) 같이 글쓰기를 배우던 지인을 통해서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아줌마들 사이에 아저씨 혼자였다.) 그 모임에 들어가면서 나의 독서가 정말 다채롭게 되었다. 각종 심리학 서적(융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이다.), 그림책, 예술서, 영화에까지 정말 다양하게 읽었다. 그림책을 보고 그것에 대해 2시간 넘게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였다. 자기 계발서에만 10년이 넘게 읽은 독서 편씩 자에게 다양한 식단이 차려진 것이다. 이 시기에 '토지(박경리)'를 읽었다. 정말 멋진 좋은 책이다.
7기. 문학의 꿈을 꾸다.(마담 보바리를 넘어서고 펼쳐진 세상)
독서모임에서 고전을 읽기로 했다. 첫 책이 누군가의 추천으로 결정된 ‘마담 보바리(구스타프 플로베르)’였다. 두꺼운 책이다. 그리고 상세한 묘사가 압권인 책이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왜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알아야 되지?”라는 의문을 강하게 가졌던, 그래서 읽지 않고 던지려 했던 책이다. 너무나 지지부진해서 결국 모임 때까지 다 읽지 못했다. 원래 소설책으로 토론을 할 때는 다 읽지 못하면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론을 모르고 참여하는 것이 싫었고, 결론을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난 스포일러를 극도로 싫어한다.) 근데 이때는 처음 읽는 고전이라 어렵기도 해서 그냥 참여했고, 거의 듣기만 했다.
모임이 끝나고 “책이 재밌을 것 같다. 혼자서라도 꼭 읽고, 독서후기로 참여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동안 정말 힘겹게 읽었다.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후기를 썼다. 이 두꺼운, 그리고 힘든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내 독서 인생에 정말 큰 이정표를 세워졌다. 먼 훗날 다시 독서 변천사를 쓰게 된다면 그때 어떤 형식으로 쓰더라도 전환점에 쓰일 책이 이 책일 것이다. 마담 보바리 이후 고전에 자신감이 생겼다.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적과 흑’(스탕달), ‘달과 6펜스’(서머싯 몸), ‘달콤 쌉싸름한 초코릿’(리우라 에스키벨)이 마담 보바리를 읽고 나서 5개월 사이에 읽은 고전들이다. 이제 고전 읽기에는 관록이 붙었다. 2권짜리(적과 흑)을 읽고 나니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올해 ‘파우스트’(괴테)와 ‘목로주점’(에밀 졸라)을 읽을 때도 어렵기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자신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마담 보바리를 포기하지 않고 읽은 덕분이다. '노인과 바다(어니스티 헤밍웨이)', '동물농장(조지 오웰)'도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그리고 세 권짜리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까지 읽게 되었다.
8기. 헤세를 만나다.(인생의 롤모델을 찾다.)
마담 보바리 이후 고전을 읽자는 의견이 많아서 고전이 우리 독서모임에 추가되었는데 그때 ‘데미안’을 읽으며 헤세를 만나게 되었다. 데미안을 읽은 이후 헤세에 빠져서 전시회도 가고,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등을 읽었다. ‘유리알 유희’는 책을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를 했는데, 이 책을 읽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빌려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때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헤르만 헤세 시리즈를 다 샀다. 9권을 다 샀고, 결국은 다 읽었다. “유리알 유희”를 읽고 나서는 그 뿌듯함에, 하지만 결말은 슬퍼서 좀 힘이 빠지긴 했다. 그래도 헤세라는 존재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고, ‘헤세처럼’은 나의 삶의 모토가 되었다. 내 이름 이니셜은 HS. 헤세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지인은 HS를 헤세라고 읽고, 슬로비헤세라고 불러준다. 아하하.. 지금 나의 필명과 SNS 활동명은 헤세처럼 이다. 푸핫... 헤세가 화낼 일이다.
9기. 다양한 장르에 도전.
‘수레바퀴 아래서’를 주제로 도서관에서 강의가 있었다. 그때 만난 선생님이 너무 좋고, 인상 깊어서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책을 만나고 있다. 파우스트나 목로주점도, 그리고 코스모스도 그 선생님 덕분에 읽게 된 책들이다. 나 혼자였다면 알지도 못한 책들을 접하고 있다. “깊은 강”이나, “자기 앞의 생”, “흰 개”같은 책들은 혼자라면 쉽게 접하지 못할 책들이다. 그런 책을 만나게 참 좋다. 그리고 여러 가지 에세이 책들을 지금 읽고 있다. 김훈, 권여선,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김애란 등등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필사하고, 문장을 익히고 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책 읽는 독자에서 책 쓰는 작가로의 변신에 대한 열망은 어쩌면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워서 매일 좌절하고 있지만, 그 좌절마저도 지금은 즐겁다. 너무 가식적인 말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쁘지는 않다. 매일 좌절하고 힘 빠져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는 건 맞다. 언제가 독서 변천사 10기를 쓰게 되면 그땐 “작가 일기”가 들어가면 좋겠다. 내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 책을 쓰기 위해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질 그날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할 일은 책 읽고, 글 쓰고, 고민하고, 또 글을 쓰는 일이다.
번외 편. 판타지 소설
판타지 소설은 군대에 있을 때 처음 봤다. 그때 '드래곤 라자(이영도)'를 봤는데,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세계관, 각 종족에 대한 작가의 통찰, 그리고 표현이 너무 좋았었다. 드래곤 라자를 시작으로 판타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반지의 제왕(JJ. 톨킨)'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는데, 1권만 잘 넘기면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다. 1권이 세계관을 설명하느라 다소 지루하고 어려운 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판타지 소설이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로도스도 전기(다른 이름은 마계마인전)도 재밌게 읽은 판타지 소설이다.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가즈 나이트, 룬의 아이들(전민희), 달빛조각사(남희성) 등등 정말 많은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해리포터(J.K. 롤링)"이다. 해리포터는 책으로도 읽고, 영화로도 보고, 원서로도 읽은(아니 읽고 있는) 책이다. 판타지 소설이 좋은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이 정말 멋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것을 상상할 수 있지?"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화로는 "반지의 제왕"을 제일 좋아하고, 그다음이 "해리포터"이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은 무심코 1편을 틀면 3편까지 9시간을 내리 보게 되는 무서운 영화이다. 정말 최고의 책, 최고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