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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Apr 09. 2022

추억을 읽는 거야


학생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갔다. 자율수업 시간에 독서 서평이 있어서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서 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로나 성장에 관련된 책을 고르라고 하면서 "만화책은 안된다."라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도서관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활발하게 (교실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으로) 얘기하고 움직이면서 각자의 책을 골랐다. 덩달아 나도 책을 고르고 있었다. 문득 눈에 띄는 책이 있었으니 "슬램덩크"였다. 도서관에 슬램덩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완전판이라니.


손이 저절로 슬램덩크로 향했다. 마지막 24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보기 시작했다. 내가 만화책을 보는 것을 본 아이들이 "선생님 만화책은 안된다면서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만화책 보는 게 아니라, 추억을 읽는 거야"라고 얘기를 했다. 그렇다. 슬램덩크는 내게 추억이다. 무려 30년 전인 중학교 때, 그때는 농구가 남학생들을 휩쓸었다. 드라마로는 마지막 승부, 미국 농구에서는 마이클 조던, 한국 농구는 허재,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등 농구대잔치의 최전성기, 그리고 만화로 바로 "슬램덩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램덩크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스포츠 만화이다. 천재적인 운동신경을 가진 연애 초짜 강백호와 슈퍼루키 서태웅 콤비, 그리고 둘을 엮어주는 여학생 채소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방황을 끝낸 3점 슈터 정대만, 최고의 가드 송태섭, 농구가 전부인 고릴라 센터 채치수, 그리고 기본이 튼튼한 안경잽이 권준호가 주인공팀인 북산의 주요 멤버이다. 이정환이 이끄는 해남, 윤대협의 능남, 김수겸의 해남, 그리고 최강팀 산왕에 이르기까지 농구 생초보 강백호가 최고의 선수 대열에 이르는 1년간의 성장 로맨스 스포츠 만화는 당시 남학생은 물론이고 여학생들까지 꼭 봐야 하는 만화였다.   


마지막 승부는 심은하라는 스타를 탄생시켰다. 청순가련형의 다슬이 역으로 인해 심은하는 데뷔와 동시에 특급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안 그래도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던 장동건의 주가는 더 높아졌다. 빼어난 실력을 가진 고교 동창의 반목과 대결, 그리고 화해를 주요 스토리로 다룬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와 농구에 대한 인기, 스타들의 열연으로 안방을 뜨겁게 달구었다. 마지막 승부가 방영된 다음날엔 남학생들은 서로 농구장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뛰어가곤 했다.


NBA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는(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팀이 연일 승리하며 농구의 인기를 이끌었고,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 악동 데니스 로드맨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팀은 당대 최고의 팀이었다. 찰스 바클리의 피닉스 선즈,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 샤킬 오닐의 LA 레이커스,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켓츠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이름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조던 이후 농구에 대한 관심이 끊어져서 지금은 잘 모른다. 간간이 머리글 기사로 읽는, 역사상 최고의 3점 슈터로 평가받는 골든 스테이트의 스테판 커리 정도만 알 뿐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전이었다. 당시는 농구대잔치라고 불렸으며, 그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허재가 이끄는 기아팀과 이충희의 현대, 삼성 등의 실업팀, 그리고 대학 라이벌 연세대와 고려대, 중앙대 등 대학교 팀이 같이 겨루는 농구대잔치는 겨울 스포츠의 꽃이었다. 특히 연세대는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등의 걸출한 선수들이 폭넓게 분포하면서 실업팀을 넘어서는 저력을 발휘했고, 고려대는 현주엽, 전희철, 김병철(?) 등의 선수들로 연세대와 호각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당시 최고의 스타는 단연코 허재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농구선수이다.


 우리나라는 프로농구가 출범하였지만, 슬램덩크 연재가 마무리되고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이후 나의 농구에 대한 관심은 점점 엷어졌다. 지금도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이 그냥 뉴스에 나오면 잠깐 점수나 보는 정도이다. 학창 시절 때야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면서 놀기라도 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는 농구는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사실도 관심이 줄어드는데 한몫을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은 왜 만화책 보세요?"라고 물어봤을 때, 버무리려고 했던 "추억을 읽는 거야"라는 한마디가 추억을 진하게 불러왔다. 이 글도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내 머리에서 그런 멋들어진 표현이 나오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추억을 읽는 거야". 참 멋진 말이다. 자승자박, 자화자찬이지만, 멋진 걸 어떡하랴? 추억을 읽고, 추억을 쓴다. 추억이 돋는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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