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아빠와 두 아들이 식탁에 앉아 있다. 식탁 위에는 공책 3개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빠는 토지를 필사를 하는 중이고, 두 아이는 일기를 쓰는 중이다. 우리 집에 일주일 전부터 자리 잡은 모습이다. 그리고 앞으로 꾸준히 만들어 보고 싶은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습관(행동, 능력)이 3개가 있다. 음악과 독서와 일기(글쓰기) 바로 이것들이다. 음악은 이미 아이들이 하고 있다. 큰 애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0살이 되면서는 바이올린도 배우고 있다. 박자 감각이나 음정이 꽤 정확한 편이다. 그리고 둘째는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제법 잘 치다.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가지고 두 형제가 연주하는 것을 볼라치면 참 부럽다. 어쩜 그리 악보를 잘 보는지.
독서는 나름 습관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큰애는 만화책에서 그림책으로 순조롭게 넘어갔고, 이제 글만 있는 책도 제법 읽는다.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읽어야 할 때 피하진 않는다. 그리고 독해력도 그 나이에 알맞게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학습만화를 즐겨 본다. 작은 애는 음, 그림책까진 읽지만 아직은 글만 읽는 책은 싫어하고 있다. 그래도 혼자 바닥에 앉아서 그림책을 꺼내서 읽고, 그것에 대해 조잘대고, 인상 깊은 장면은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 독서습관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여전히 만들지 못하고 있는 습관이 바로 일기이다. 그동안 몇 번을 습관화하려고 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9시는 일기 쓰는 시간이야"라고 말하고, 알람도 맞춰놓았지만, 하루 이틀 쓰고는 실패했다. 가장 큰 요인은 일기의 중요성이라든가, 일기의 재미를 아이들이 느끼기도 전에 "너희는 쓰거라, 나는 놀 테니"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일기를 쓰라 하고 아빠는 다른 것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저녁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글쓰기를 하거나, 필사를 하는 것이다. 집에 와서는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토지를 들으며(윌라 오디오북) 필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필사를 하기로 했다. 저녁에 8시가 되면 필사를 하려고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필사를 하다가 문득 "아이들을 내 옆에 앉혀서 일기를 쓰게 하자."라는 생각이, 정말 문득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기장 가지고 와서 옆에 앉아라"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자기들이 전에 써 놓은 일기를 (한 반년 전에서 1년 전에 쓴) 보더니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일기를 써 놓으면 이런 게 좋아. 예전 일이 기억나면서 재밌잖아. 그러니깐 조금이라도 쓰자."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식탁에 앉혔다. "뭘 쓰지 뭘 쓰지"라며 어려워하던 둘째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뭐 했어?라고 물어보며 쓸 거리를 찾아준다. 열심히 쓰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일기를 쓰는 사이에 나는 필사를한다. 필사의 양이 많아서 (한 장 분량은 좀 많긴 하다) 아이들의 일기가 먼저 끝난다. 일기를 다 쓴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논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얘들아 일기 쓰자"라고 말하면 이제는 아이들도 선뜻(나만의 착각일지도) 일기장을 갖고 식탁에 앉는다. 적어도 일기 쓰기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진 것 같다. 아빠와 나란히 앉아서 떠들면서 글을 쓰는 재미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필사도 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일기 습관도 길러주고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을 길러주고 싶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그것을, 아니 그 시간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