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세처럼 Sep 30. 2022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른 충실한 삶

잠시 글쓰기를 쉬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마음을 적신다. 왠지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하늘이다. 마음이 왠지 모르게 허전해서 뒤돌아보니 글을 쓰지 않은지 3개월이 되어간다. 왠지 모를 허전함은 그 때문이었다. 지난 7월 이후 쓰지 않고 있는 글. 매일 같이 글쓰기를 했었는데 그것이 먼 옛날의 일만 같다. 9월에는 다시 글쓰기를 해보려고 지인이 하는 타로 글쓰기를 신청했는데, 처음에만 조금 참여했을 뿐 지금은 흐지부지 되었다. 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 글을 쓰지 않는 걸까? 왜 쓰고 싶지 않은 걸까? 많은 생각을 했다.


몇 달 사이에 바뀐 일상 또는 관심사를 나열해보았다. 

열심히 했었지만 지금은 안 하고 있는 것 : 모닝 페이지, 운동, 글쓰기, 그림, 캘리

열심히 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 바이올린, 필사

새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 캠핑(장비 검색, 장비 구매, 카페 활동, 캠핑 가기 등), 수업 준비.


한번 분석을 해보자.

지난 6~7월 생기부를 쓰면서 에너지가 완전 고갈된 상태에서 잠깐만 쉬자고 글쓰기에 손을 놓아버렸다. 그때 육체적, 정신적 타격이 컸었다. 그리고 가정적인 이유로 운동을 할 수 있던 시간적 여유가 사라졌고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위로 밤잠을 설치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모닝 페이지에서 멀어졌다. 그림에 대한 열정은 부담으로 변경되었고, 캘리마저도 지금은 못하고 있다. 어떤 것은 무 자르듯이 단칼에 내 손에서 잘려나갔고, 어떤 것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서서히 알게 모르게 멀어져 갔다.


바이올린은  내 인생의 활력소다. 물론 레슨을 받고 있기에, 레슨을 따라가려면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도 한 몫한다. 그렇지 않으면 레슨비가 아깝지 않은가? 아마 글쓰기나 캘리, 그림 같은 것도 레슨을 받는다면 꾸준히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바이올린은 다르다. 하지 않을 때 생기는 금단현상 같은 미칠 듯한 갈증이 바이올린에만 있다.(글쓰기도 약간 있기는 했다.-방어막 치기) 바이올린은 순수(?)하게 재미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재밌다. 그리고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어느 순간 그 벽을 넘어설 때 느끼는 쾌감은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게다가 요즘, 바이올린 실력이 부쩍 늘어난 것을 느낀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말이다. 매주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레슨 일지를 적는다. 그리고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한다. 그 꾸준함의 즐거움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 글들 캡쳐화면(앨범형과 리스트형)


필사는 "토지 20권 전권 필사"라는 목표가 있다. 몇 년 전에 토지 1권을 필사를 했었는데, 지난 4월부터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1권부터 다시. 1권을 다 필사하는데 총 159일이 걸렸다. 20권을 다 필사하려면 10년이 걸릴 대사업이다. 필사를 하면서 느낀 건 "이걸 언제 해 하는 시간에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루 2페이지, 바쁠 땐 1페이지를 매일 꾸준히 하다 보니 400페이지를 다 필사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2권을 필사를 하고 있는데, 이게 재밌다. 읽는 것(책)과 듣는 것(윌라 오디오북) 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10년 후에 필사 노트를 전시하는 날이 생기길 바라본다.

170일 분량의 필사 전체(좌), 블로그에 올린 필사 일부(우)


새롭게 생긴 건 캠핑이다. 매일 같이 캠핑장비를 보고, 또 본다. 이 텐트 저 텐트 보고, 이 장비 저장비 보고 그냥 눈으로만 봐도 너무 즐겁다. 캠핑이 왜 즐거운지 자문을 해보면? 음. 모르겠다. 그냥 좋다. 밖에 나가서 텐트 치고 그 밑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다. 텐트 치고, 걷고 혼자 해야 돼서 무척 힘든데, 왜 그걸 감수해가면서 즐기는지. 우리 꼬맹이들은 왜 캠핑을 계속 따라다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언젠가 아내가 아이들에게 "캠핑이 왜 좋아?"라고 물어봤는데, 아이들의 대답도 "몰라"였다. 그냥 좋은 거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마냥 즐겁다는 것이다. 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니(사실 이건 엄청 작은 부분) 그보단 아이들이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용인할 뿐이다. 덕분에 난 캠핑장비를 하나씩 하나씩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주간 블로그 챌린지에 올리는 캠핑 글들(좌), 캠핑사진과 고카프 방문 사진(우)

그리고 또 하나,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큰 부분일 수 있겠다. 2학기 개학을 하면서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일명 변형된 거꾸로 수업. 나 혼자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영상을 찍어두면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각자 그 영상을 보고 각자 문제를 풀면서 진도를 나간다. 난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질문에 대답하고, 그리고 학습 진도를 체크한다. 나름 수업방식은 괜찮은 것 같다. 근데 이 준비를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에 2시간씩 소모된다는 게 문제다. 강의를 찍고 액티비티를 편집하다 보면 2시간 가까이가 후딱 지나간다. 영상을 찍기 위해서 학교에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온다. 그러다 보니 모닝 페이지를 쓸 시간이 없다.

수업 영상 녹화 파일들(좌), 수업에 사용하는 액티비티들(우)


그러고 보면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에너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에 사용되던 에너지가 지금 다른 곳에 가 있는 느낌이랄까? 바이올린과 필사에 있던 에너지는 그대로 있고 글쓰기, 모닝 페이지, 캘리에 대한 에너지가 캠핑과 수업으로 대이동을 했다. 그러니 지금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서 자책감이라던가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꾸준히 필사를 하면서 글쓰기 근육을 키우고 있는 것이며,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내 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고 있는 것이고(이건 정말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 정말 충실히 즐기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캠핑은 빠져있을 시기에, 빠져있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푹 빠져 있어도 될 것 같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거니깐. 지금 내게 있는 에너지는 필사, 바이올린, 수업 준비, 캠핑에 올인하고 있다. 에너지의 총량을 다 쓰고 있으니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른 삶을 충실히 살고 있으니 이럼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더 하려고 하면 그건 욕심일 뿐이지.

 

다만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쉽다. 아니 많이 아쉽다. 그럴 여건이 안되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한번 대책을 세워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글쓰기는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바이올린처럼 말이다. 좀 쉬면서 릴랙스 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냥 맘 편히 내려놓고 꾸준히 가자.

(이 글은 지난 9월 24일(목)에 처음 썼는데 그날 이후로 집에서 매일 스쿼트 100개를 도전하고 있다. 아직은 50개밖에, 그리고 다른 홈트도 하나씩 늘려볼 계획이다. 운동은 어떻게든 해야 한다. )


#에너지

#바이올린

#캠핑

#필사

#토지

#데스모스

#액티비티

#그림

#캘리

#모닝페이지

#운동

작가의 이전글 가족이 함께 일기를 쓰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