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5월호] 얼굴

by 하자윤



# 씬 1. 동네 미용실 – 낮 (2000년대 초반)
문이 열리며 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사십 대 여자와 키 큰 여고생이 들어선다.
사장, 고개를 들다 이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사장: 어머, 언니! 머리 하시게요?
여자: 네, 안녕하세요.
사장: (옆에 선 여고생을 힐끗 보며) 어머, 옆에는 누구예요? 동생?
순간 흐르는 정적. 여자는 당황해 멈칫하고, 여고생은 어색하게 웃는다.
여자: (당황한 표정) 아… 우리 딸이에요.
사장: (얼굴이 굳으며) 네? 딸이요? 이렇게 큰 딸이 있었어요?



인생에서 잊지 못하는 한 장면이다. 훗날 남편은 ‘장모님이 동안이신 것도 있지만 그 미용실 사장이 돈 내는 사람을 추켜세운 것’이라는 피의 쉴드를 쳐주었다. 여전히 위로되진 않는다.

딸의 미모는 왜 늘 엄마와 비교되는 걸까.

언젠가 부모님 가게에 온 손님이 나를 향해 “딸이 아빠 닮았네~ 엄마 닮았으면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쏘았을 때는 아빠 탓인지, 아빠를 택한 엄마 탓인지. 유전자 선택권도 없이 태어난 내 탓인지, 모두 까기 인형에게 모두 까여버렸다.


그렇다. 나는 노안이다.

미용실 에피소드도 그랬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려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베이비페이스가 유행이던 시절 베이비는 무슨, 그저 제 나이로만 보여도 감사한 삶을 살았다. 게다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가벼운 캐주얼보다는 단정하게 구두를 신는 것을 좋아해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라는 내 핑계다.) 제일 친한 친구도 하필이면 조그맣고 귀여운 타입이라 상대적인 대비 효과로 ‘이모와 조카’라는 별명도 붙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생긴 대로 살아라.

아빠를 빼다 박은 얼굴로 사십 년을 넘게 살았다. 얼굴에 손대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인 금기가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제 때가 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피부부터 손을 대보기로 마음먹었다.

평생 관리와 담을 쌓고 살았더니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유튜브에 ‘피부과 시술’을 검색해 보았다. 난생처음 듣는 주사와 레이저의 이름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정적으로 피부과 의사가 자기 얼굴에 직접 주사를 꽂는 장면을 보고는 조용히 핸드폰을 덮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예뻐져야 하나’


결국 직접 발로 뛰기로 했다.

첫 번째 병원, 피부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동네 아줌마들 사이 들어본 적 있는 병원이다. 어디가 고민이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전체적으로 다 고민이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피부 상황에 맞는 시술 몇 가지를 추천해 주셨다. 간단명료하지만 디테일한 계획과 함께. “고민해 보고 오세요.”라는 쿨한 태도에 신뢰가 갔다.


다음 날 찾은 피부과 전문의 병원. 대기가 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접수처에 시술 상담이라고 목적을 남기고 기다리고 있으니 상담 실장을 연결해 주었다. 의사가 직접 얼굴을 보고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상담실 문을 연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녀의 얼굴에선 반사판을 댄 듯 빛이 났다. 물광, 속광, 세상의 모든 광채가 그 조그만 얼굴에 응축된 것 같았다.

대충 선크림만 올린 거울 속 내가 보였다. 처참했다. ‘아, 다들 이래서 지갑을 여는구나.’ 금융 치료의 필요성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고객님의 문제점은 이거 저거 요거........” 실장의 입에서 박살 난 자존감이 가격표로 매겨져 돌아왔다. 피부과에 들어서면 차 한 대값 우습다더니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올게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너덜너덜한 마음을 안고 부모님 댁에 들렀다.

유심히 내 얼굴을 보던 엄마가 “어떻게 얼굴에 티가 없노. 피부가 참 좋네.” 하신다. 엄마 눈에는 내 전용 하트 필터가 씌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두드려 맞고 온 자존감이 쭈욱 올라갔다.

“엄마, 근데 나 오늘 피부과 예약 잡았다? 나도 이제 사십 대인데 관리해야지.”

아빠가 옆에서 들으셨다면 백 프로 아니 천 프로 반대하셨을 것이다. “고마 생긴 대로 살아라!”


하지만 생긴 대로만 살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 달려가는 시간을 조금씩만 잡아 지금의 얼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묘한 의무감도 생긴다.

내 옆모습을 다시 뜯어보던 엄마가 말을 덧붙인다.

“아빠 닮아가지고 턱이 좀 처진다야. 피부과 예약 잘하고 왔네.”

결국 중력이 엄마 필터를 이겨버렸다. 이 무자비한 중력에 슬슬 반격을 해볼까 한다.


자윤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준비가 되었다.



화려한 가격표. 과연 어느 피부과를 예약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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