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천수를 누리고 가셨지만, 내가 바라본 그 뒷모습은 매우 쓸쓸했다.
시골 외가에 혼자 계실 수가 없어서 우리 부모님 집에서 얼마간 지내셨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 댁에 다니러 갔던 내가 오랫만에 외할아버지를 뵙고 형식적인 인사를 드렸다.
"시골에 계셔야 아는 분들도 만나시고 할텐데, 여기 와 계시니까 심심하시죠?"
"아는 사람들 이제 다 죽고 없어"
나는 더 이상 이을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말년에 암을 얻으셨다. 적극적 치료를 하기에 너무 늦은 단계는 아니었지만 치료를 거부하셨다. 당신의 시간이 다 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연로하셔서 병의 진행도 늦었기에 그 후로도 몇 년을 더 살다가 떠나셨다. 천수를 누렸다고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연세셨지만 떠나는 뒷모습이 쓸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숙명일까?
이 나이쯤 먹고 나니, 이제 이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별로 없다. '이생망'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소소한 인간적 욕망들을 충족시키며 그것을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것 말고 이 생을 통해 뭘 더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누군가 지금의 내게 묻는다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일찍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싶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누군가 지금의 내게 묻는다면,
"내 시간이 다 했을 때, 너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지는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다.
뜬금없이 이런 옛일을 떠 올리며 우울한(?)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은 뭐 별다른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머리하려고 미장원 의자에 앉았는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여기까지 이어졌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