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네디언 록키를 본다는 것은 일생동안 남는 기억 중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캐네디언 록키는 그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런 록키가 있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록키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의 3대 대도시 중에서 캐네디언 록키와 가장 가까운 밴쿠버에서도 차로 9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캐네디언 록키의 거점 도시인 밴프(Banff)에 도착할 수 있다.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 오려면 최소 2박 3일을 달려야 한다. 캐나다의 4대 도시인 캘거리가 100km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 가깝다. (캘거리는 아직 못 가봤고, 겨울에 춥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는 도시지만 록키가 가깝다는 것 하나만은 정말 부럽다)
그러니 제 아무리 캐나다에 살고 있다 해도 록키를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캐나다에서 만 5년을 살았지만, 이제야 두 번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나마 부모님과 장모님이 방문하신 것을 계기로 두 번 모두 효도여행 차원에서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였다면 5년간 한 번이라도 다녀왔을까 싶기도 하다.
한국에는 '백두산 천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록키는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캐나다 살아도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 록키다. 이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사설이 길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보니, 한 번 갈 때 제대로 보고 와야 한다. 그러려면 충실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여행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두 번의 록키 여행과 이를 위한 조사를 통해 나름대로 축적한 밴쿠버 출발 록키 여행의 노하우를 공개해 보고자 한다. 특히 여행사 패키지가 아닌 직접 운전을 통해 록키를 다녀오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될 것 같다.
1. 캐네디언 록키(Canadian Rockies, 혹은 Canadian Rocky Mountain Parks)의 개요
캐네디언 록키는 말 그대로 록키 산맥 중에서 캐나다에 있는 부분을 의미한다. 미국과의 국경에서 시작해 BC주의 북쪽 주 경계에 가까운 지역까지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길이는 1450km이며, 폭도 150km나 된다. 면적은 18만 제곱미터 달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넓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록키 가봤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록키는 록키 산맥 내 총 5개의 국립공원 중 4개의 국립공원이 모여 있는 Canadian Rocky Mountain Parks 지역을 의미한다. 바로 그 유명한 밴프(Banff)와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를 중심으로 하여, Yoho National Park, Kootney National Park, Banff National Park, Jasper National Park가 모여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독특한 풍광을 인정받아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한인 여행사의 3박 4일 버스 투어는 추천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
부모님을 모시고 간 첫 록키 여행을 계획했던 4년 전에는 나도 한인 여행사의 3박 4일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편도 9 시간 씩, 총 18시간을 운전해서 다녀올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사의 일정표를 자세히 살펴본 이후에 이 생각은 바로 접었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은 1일 차에 새벽같이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당일에는 록키에 도착하지도 못한다. 여행 첫날의 숙소가 레벨스톡(Revelstoke)이라는 도시에 있는데, 레벨스톡에서 본격적인 록키의 첫 번째 목적지인 Yoho National Park까지 가는데 2시간이 걸린다. 출발한 다음 날 아침에 두 시간을 더 달려서야 겨우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하는 셈인 것이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숙소 역시 록키 내부(밴프, 레이크 루이스, 재스퍼 등)가 아닌 인근의 도시들에 있는데, 이는 하루의 일정을 마친 후에 숙소로 돌아가면서 길에 시간을 버리고, 다음 날 아침에 여행지로 가면서 또다시 시간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3박 4일의 일정 중에 정말 록키 안에서 제대로 구경을 하는 시간은 1박 2일도 채 안 된다는 것이 내가 일정표를 살펴본 후 내린 결론이었고, 그래서 좀 힘들더라도 직접 운전해서 다녀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직접 운전해서 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편도 9시간을 운전해서 록키로 가는 일이 쉽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우선 가는 길 내내 풍광이 워낙 좋아서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운전 또한 어렵지 않았다. 내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밴쿠버에서 록키까지는 사실상 도로가 외줄기인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저 계속 직진만 하다 보면 록키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록키에 도착하고 나서는 힘들게 차를 가져온 보람이 더 크게 느껴진다. 여행사 버스의 일정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곳에 가서 내가 원하는 만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록키 내부의 도로망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하기도 쉬운 편이다.
4. 록키 가는 길에 주유소가 나타나면 반드시 기름을 만땅으로 채워라.
밴쿠버에서 록키를 가는 길에 레벨스톡을 지나치면 골든에 도착할 때까지 약 150km에 달하는 구간에 주유소가 없다. 그러니 차에 충분한 양의 기름이 없다면 레벨스톡에서는 무조건 주유를 해야 한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재스퍼로 가는 길인 Icefield Parkway에는 약 130km 정도 주유소가 없는 구간이 있다. 밴프나 레이크 루이스, 혹은 캔모어에서 반드시 기름을 가득 채우고 재스퍼로 이동하자. 이런 상황은 재스퍼에서 밴쿠버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찬가지다. 연료탱크가 3/4 이상 차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꽉 채워두는 것을 잊지 말자.
Alberta가 British Columbia보다 기름값이 많게는 20% 정도 싸다. 그러니 기름은 가급적 Alberta 주에 속한 지역에서 넣는 게 이익이다.
5. 계절에 맞는 옷을 준비하되, 날씨와 온도 변화에 대비하는 Layer도 준비하자.
한여름에 밴프 시내 같은 곳에서는 반팔에 반바지 입고 돌아다녀도 되지만, 온도와 날씨 변화에 대비하여 레이어드 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록키의 여러 포인트들 중에는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 이런 높은 곳은 날씨 변화도 무쌍하고 기온도 낮다. 방수되는 바람막이 잠바같은 것은 꼭 챙기자. 신발은 본격적으로 하이킹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운동화면 충분하다. 하지만 하이킹 생각이 있다면 당연히 하이킹 슈즈도 챙기는 게 좋겠다.
6. 휴대폰과 모바일 인터넷은 아예 먹통이 되는 곳이 굉장히 많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산 꼭대기에서도 휴대폰이 빵빵 잘 터지지만, 캐나다는 전혀 그렇지 않다. 록키로 가는 동안에는 물론이고 록키 안에서도 인근에 마을이 없다면 휴대폰 신호가 아예 먹통이 되는 곳이 상당히 많다. 숲이나 산속으로 들어가면 안 터지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도로상에서도 안 터진다. 전혀 신호가 안 잡히는 도로가 수 십 km 이상 지속되는 곳도 많다. 그러니 휴대폰 내비와 모바일 인터넷으로 즉석 해서 정보를 찾는 방법에만 의존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일반 내비를 준비하거나 휴대폰 내비에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하여 두는 것이 좋고, 기타 지도나 가이드 북 같은 것도 준비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7. 많은 것을 보려 하기보다는 좋은 것을 느긋하게 즐기는 여행을 하자
록키를 꼼꼼하게 다 보려들면 몇 달의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사전 조사를 통해 미리 꼭 보고 싶은 것들을 느긋하게 충분히 즐기는 방식의 여행이 개인적으로는 록키에 더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8. 수세식 화장실이 보이면 쥐어짜서라도 일을 보자
워낙 방대한 규모의 록키 산맥이다 보니 깨끗한 수세식 공중화장실을 모든 곳에 설치해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 스팟에는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푸세식이라고 해도 엄청 더럽고 냄새가 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세식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수세식 화장실은 Lake Louise나 Johnston Canyon, Icefield Visitor Centre, The Crossing Resort 등의 주요한 지점에만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 화장실을 많이 가리는 분들은 수세식 화장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두거나, 수세식이 보이면 안 급하더라도 쥐어짜서라도 최대한 일을 봐 두는 것이 좋겠다.
9. 야생 동물(특히 곰)에게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자
록키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야생동물들을 마주치게 된다. 록키에서 야생 동물들을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 사이에 있는 Bow Valley Parkway와 레이크 루이스와 재스퍼 사이에 있는 Icefield Parkway이다. 엘크, 무스, 곰 등의 야생 동물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데, 그래서 Bear Jam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곰이 보이면 사람들이 다 차를 세우고 곰을 구경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교통 정체가 생기는데, 이를 Bear Jam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도로 상에서 만나게 되는 야생 동물들은 딱히 사람을 경계하지는 않는 눈치다. 구경꾼들이 있거나 말거나 그냥 자기들 할 일에만 열중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미 수많은 구경꾼들에게 익숙해진 탓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거나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귀여워도 이들은 야생동물이고, 자신이 위협받는 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만일 록키에서 더 깊은 산속으로 하이킹을 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이 Bear Spray다. 길가에서 만나는 곰들은 크기도 비교적 작고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Black Bear이지만, 록키의 깊은 숲 속에는 Grizzly도 있다고 한다.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만나는 야생 동물은 길 가에서 만나는 녀석들만큼 사람에게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10. 딸기아빠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3박 4일(혹은 4박 5일) 코스는 이렇다.
밴쿠버에서 록키를 다녀오기에 3박 4일이나 4박 5일 일정이 적당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한 달을 있어도 부족한 곳이 록키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록키의 4계절을 다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박 4일 일정을 만들어 본 것은 버스 투어의 일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버스 투어로 다녀오는 것과 직접 운전해서 다녀오는 것이 같은 일정에서 얼마나 큰 퀄리티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비교가 될 것이다.
이 일정은 우리 가족이 이번에 실제로 실행한 일정이기도 하다. 한 가지 차이점은 우리 가족은 펜틱턴에서 1박을 한 후, 켈로나에서도 1박을 해서 전체 일정이 4박 5일이었다는 점이다. (연로하신 장모님과 아이들이 있기에 천천히 다녔다)
한 번에 9시간씩 운전을 하는 것은 괴로우니, 가는 길에 1박 정도 쉬어주면 좋은데, 그렇게 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에 Okanagan Valley지역이다. 켈로나나 펜틱턴이 쉬어가기 좋은 도시다. 더 상세한 일정은 앞으로의 여행기 포스팅을 통해 풀어보도록 하겠다.
1일 차 - 밴쿠버에서 켈로나(or 펜틱턴)까지 이동 후 1박
- 켈로나, or 펜틱턴에서 관광 혹은 activity (Penticton River Floating 강추)
2일 차 - 켈로나(or 펜틱턴)에서 밴프까지 이동
- 시즌이 맞다면 Kelowna나 Vernon에서 Cherry Upick
- Yoho National Park 구경 : Natural Bridge, Emerald Lake, Takakkaw Falls
- 시간이 되면 Lake Louise, Lake Moraine 구경 (시간이 안 되면 2일 차)
- Lake Louise나 Banff, Canmore에서 1박
3일 차 - Banff 다운타운, Surprise Corner, Surphur Mountain Gondola 등
- Bow Valley Parkway에서 야생동물 구경
- Banff에서 Jasper까지 이동하면서 관광 : Peyto Lake, Athabasca Glacier, Athabasca Falls 등
- Jasper downtown 및 인근 관광(Jasper Sky tram, Maligne Canyon 등)
- Jasper 혹은 Valemount에서 1박
4일 차 - 캠룹스를 경유하여 밴쿠버 귀환
맨 위의 사진은 이번 여행(2019년)에서 찍은 것이다. 이번에는 일정 내내 날씨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에 갔을 때는 내내 날씨가 좋았다.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몇 개 공유해 본다. 나는 사진을 특별히 잘 찍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들이대고 셔터만 누른다. 록키에서는 그래도 이 정도의 사진들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