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치 현안

패스트트랙 정국에 대한 단상

현안분석

by Hlee

최근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인한 국회가 시끄럽다. 선거제도 개편안에 대한 글인데 일단 패스트트랙의 내용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1.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란?


패스트트랙이란 국회법에 규정되어 있는 신속처리 안건 지정인데, 여기에 대한 설명에 앞서 먼저 법"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법"이 되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부도 입법안을 제출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의원입법안에 대해서만 논하겠다)


1) 국회의원이 법안을 작성하고 자신을 포함한 최소 10명의 "공동"발의자 서명을 받는다. 그럼 법안이 "발의"된다. 발의라 함은 특정 법안이 공식적으로 국회 내에서의 심의를 위한 안건으로 접수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이동하는 것이 바로 "상임위원회"다. 국회 내에는 각 정책분야를 담당하는 "상임위원회"가 있는데, 이 상임위원회에서 1차적으로 법안에 대한 심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법안이 상임위원회 심사를 받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법안은 상임위원회 내에서 상정 및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다. 그리고 각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여야 교섭단체 간에 의석수 비율대로 나누어 가지는데.. 여당이 발의한 중요한 법안이 야당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원회 심사대상 법안이면 이러한 법안에 대하여 야당 상임위원장이 즐겨 쓰는 견제 방법은 그 안건을 논의하지 않고 상임위원회에 상정시키지 않는 것이다. 여러 다른 내용과 절차도 있지만 그래서 하나 기억할 것은 상임위원회가 법안 넘어야 할 1차 허들이다.

3) 우여곡절 끝에 상임위원회 심사를 넘으면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라는 허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원래 취지는 법안의 언어나 내용이 기존 법체계에 맞게끔 말 그대로 "체계/자구"만을 심사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한국 국회에서는 관행적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는 제1야당이 가져간다. 그 이유는 여당이나 다수당이 국회의장 직을 가져가는데, 이를 견제할 최소한의 장치로 제1야당에게 법사위원장 자리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법사위원회를 두고 어떤 이들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을 다시 심사하는 일종의 "상원"의 기능을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4) 발의-상임위-법사위를 통과하게 되면 (새로운 법을 만드는 제정안이나 법을 전부 고치는 전부개정법률안을 제외하면) 이제 본회의에 상정되고 본회의에서 과반의 찬성표를 얻으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법이 된다. 제정안이나 전부개정법률안은 공청회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굳이 찾아보지는 않겠다.


아무튼.. 많은 내용이 생략되었지만 국회 내에서의 입법절차가 대략 저런데 지금 여당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법안은 선거제도 개혁의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의 내용을 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이다. 그런데 지금 이 법안들이 2번에 해당하는 상임위원회(선거제 개편안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수처 설치법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막혀 있는 상태이다. 패스트트랙이란 2012년 국회법이 개정(일명 국회선진화법)되면서 도입된 제도인데 전체 의원 또는 해당 안건 담당 상임위원회 "재적”위원 중 3/5 이상의 찬성에 의해 특정 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면 뭐가 좋냐면 2번, 3번에서 막히더라도 국회법에서 정한 기한 내에 상임위원회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이를 바로 본회의 투표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지 못하면 선거제 개편안이나 공수처 설치법은 20대 국회 임기 내 통과는커녕 심사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국회는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법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을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범여권(민주당/정의당/민평당/바른미래당의 일부)과 범야권(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일부)이 저렇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퇴근도 못하고 주말에도 출근하신 국회 보좌진 선후배 친구님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_-). 아무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2. 선거제도 개혁안/개편안과 21대 총선 시뮬레이션


정치학 전공자로서 나의 관심은 공수처보다는 선거제도에 쏠려있다. 선거제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 한 표가 국회 의석수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지를 정하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각 지역구 1등이 당선되는 최다득표자 당선(First past the post) 또는 소선거구제(각 선거구별로 1명만 당선) 의석 253석과 각 정당의 전국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47석으로 된 혼합형 다수대표제다(mixed member majoritarian system). 이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하는 게 범여권인데..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복잡한데 요지는 이렇다. 현행 선거제의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것은 소선거구제에서 1등만 당선시키면 2,3등 찍은 표들은 그냥 사표가 되고 소선거구제에서는 주로 거대양당(민주당-자한당)이 불균등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하여 소수당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의회에서 대표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당을 기준으로 각 정당들이 얻은 득표율과 각 정당이 실제로 의회 내에서 갖게 되는 의석의 비율을 최대한 맞출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즉, "비례성"을 높이자는 게 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된다. 30%의 득표를 얻은 정당은 국회에서도 30% 만큼의 지분만 있어야 하는 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는 거니까. 그럼 죄다 정당득표율로 하는 비례대표제 하자는 거냐? 그건 또 아니다. 일단 각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들의 "지역구 대표성"도 중요한 가치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 중요하게 여겨지는지는 모르겠다. 주어없다.) 지역구 대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정당득표율에 비례하는 의석배분도 되면서... 여기에 추가로 국회를 워낙 싫어하는 국민정서로 인해 국회 의석수 현행 300석으로 고정하는... 꽤 복잡하지만 생각해보면 단순한 것이 선거제도 개편안이다.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선거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냥 세 가지만 기억하자. 선거제도 개편안의 요지는 1. 비례성 증진, 2. 지역대표 보존, 3. 총 의석수 300석 고정이다.


자, 그럼 이걸 갖고 여야가 왜 싸우냐? 일단 선거제도가 바뀌면 1년 남짓 남은 다음 총선에서 각 정당들이 경쟁하는 양상과 선거 이후 배분되는 의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선거제도 개편안과 현행 선거제도에 따른 21대 총선 시뮬레이션이다. 정당득표율이 들어가야 하는 곳은 가장 최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당지지율을 사용했고, 지역구 의석은 현재 의석수를 반영했다. 선거제도 개편안에 따른 지역구 의석이 감소되는 부분은 서울 -7, 경기 -3, 영남권 -7, 호남권 -6, 충청 -4, 강원 -1으로 하고 해당 권역 내 각 정당의 의석에 최대한 균등하게 임의로 반영했다.



일단 시뮬레이션이라 저대로 결과가 나오진 않을 거다. 그런데 보면 어떤 정당이 선거제도 개편안으로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볼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최대 수혜자는 역시 정의당이다. 만약 이 추세로 간다면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는 "교섭단체" 구성요건인 20석 이상의 의석을 얻게 된다. 그런데 현행 제도대로 가면 8석에 그친다. 반면, 거대양당 의석수가 살짝 줄어들고 바른미래당은 이래나 저래나 의석수가 줄어든다. 여기서 아마 민주평화당의 수치가 가장 비현실적일텐데.. 현재 민평당의 전국적 정당지지율이나 호남에서의 정당지지율만 놓고 보면 (각 지역구에서 민평당 의원들의 지지율은 모르겠으나) 저 의석 중 상당수는 민주당에게 넘어간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어떤 선거제도가 채택되든 지금 추세로만 가면 여전히 국회 과반의석은 범여권(민주당+민평당+정의당)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민주당의 의중이다. 과연 선거제도 개편안은 통과될 수 있을까?


3. 선거제도 개편안의 통과 가능성?


이래나 저래나 범여권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여 국회에서 정국 주도권을 가진다 치자. 그런데 지금 범여권의 맏형은 민주당이고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선거제 개혁이란 이슈는 좀 묘하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의석극대화를 추구하고,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줄 국회 내 다수세력을 갖고 싶어 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면.. 민주당과 대통령에게 있어서 최적의 결과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안정적인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민주평화당이나 바른미래당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보면 현행 선거제도 대로 가도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호남 의석 중 민주평화당이 가지고 있는 의석과 바른미래당 호남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의석을 포함해서 민주당이 20석을 가져가면 현행 제도하에서 151석 단독과반 확보가 가능하다. 거기에 지금 기타로 분류되어 있는 친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이 민주당에 입당하여 21대 총선에서 재선된다면 151석 + 3~4석 정도 해서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현 의석을 모두 보존하고 현재 정당지지율대로 정당득표를 얻는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은 미지수다.


선거제도 개편안의 시나리오대로 간다고 해도 민주당이 단독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바른미래당 내 호남의원 + 민주평화당 간의 연대 혹은 신당창당 가능성, 혹은 바른미래당이 분당 없이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아 시뮬레이션대로 20석 이상 확보할 가능성 등 변수가 생긴다. 아무튼, 선거제도 개편 시나리오에 따르면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범여권 과반의석(약 160석) 확보이다.


민주당의 선호는 단독과반 > 범여권 과반연합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현행 선거제도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독과반이 될 확률, 즉 현 의석을 다 가져가고 지지율을 현재처럼 유지하고, 민주평화당-바른미래당의 호남의석을 탈환하는 등 여러 변수가 있다. 그래서 결국 선거제도 개편안에 대한 민주당의 최종입장은 이러한 가능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제도가 지금 공수처라는 이슈와 함께 묶여있다는 것이다. 선거제도는 대중 인지도도 낮은 이슈이고 복잡한 반면, 공수처는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찬성여론은 60% 이상) 이슈이고 비교적 명확한 문제이다. 그래서 만약 민주당이 공수처를 둘러싼 여론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게 되면 아마 선거제도 개편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되어도 민주당 내부 반대로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민주당의 반대표로 선거제가 부결된다면 총선 이후 정의당과 소수당과의 관계가 매우 껄끄러울 것이며 선거제 개혁을 통과시키지 못한 지탄을 받기도 하겠지만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이를 상쇄하는 긍정적 여론이 조성되지 않을까 싶고 21대 총선 이후 소수당과 관계가 틀어진다 하더라도 과반의석을 확보할 정도로 호남의석을 탈환해오면 교섭단체 구성도 못하는 소수당을 크게 신경 쓸리 없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인 정의당이 아닐까 싶다. 선거제도를 통과시키고 싶으면 지금처럼 선거제도 이슈를 대중화하는데 머무르지 말고 민주당 단독과반-범여권 과반 간의 민주당의 기대효용의 격차를 줄이는 전략을 써야 선거제도 개혁안 통과의 가능성도 함께 올라가지 않을까? 즉, 범여권 과반의석이 되더라도 민주당과 대통령의 핵심 입법과제에 있어서 연정수준의 협력을 약속하는, 민주당이 신뢰할 수 있는 commitment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냥 선거제도 개혁의 전망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소설 같은 썰 한번 풀어보았다. 어찌될지야 뭐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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