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승과 참패, 프레임인가 경험적 현실인가?
21대 총선 압승/참패: 프레임인가 경험적 현실인가?
21대 총선은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충격적인 결과를 안겨주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4년차에 나타날 수 있는 회고적 평가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압승을 거두어 단일정당으로는 최초로 선거를 통해 180석을 획득하였다. 이에 반해 미래통합당은 103석에 그쳤다. 이를 두고 여당의 압승, 제1야당의 참패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고 각 정당은 이 프레임에 맞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요즘 오랜만에 최장집 선생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다시 읽고 있는데.. 지금도 유효한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이를 잠깐 소개하자면..
"정치는 정당에 의해 주도되기 이전에 언론에 의해 틀이 짜인다. 정책아젠다와 이슈를 설정하는 것도 언론이다.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원, 장관에서부터 정치참모와 고급관료의 일이란 심하게 말하면 언론의 보도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맞춰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든 한 가지 질문은.. 과연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미래통합당의 참패라는 프레임은 과연 인식(perception)을 넘어 경험적 현실(empirical reality)인가?
역대 총선의 결과를 의석점유율의 지표를 통해 살펴보고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미래통합당의 참패라는 두 프레임의 명제를 한번 검증해보자.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사실 이 부분은 너무 명확해서 논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살펴보도록 하자. 민주화 이후 선거결과를 살펴보면 21대 총선 이전에 승패가 가장 명확했던 선거는 2008년 총선이었다. 이때 당시 한나라당은 153석을 획득했고 사실상 한나라당 2중대였던 친박연대가 14석, 친박무소속 약 12명 정도가 당선되었다. 보수계열 정당인 자유선진당의 18석까지 포함하면 개헌가능선인 200석에 조금 못미치는 197석이었다. 그야말로 보수가 압승한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한나라당만의 의석은 153석이었고 이는 지역구/비례 모두 포함한 의석이었는데 반해, 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의석만 163석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맞다.
의석 변화를 살펴보아도 18대 총선 직전 한나라당 의석은 112석이었으며 18대 총선을 통해 41석을 추가로 획득하였다. 더불의민주당의 경우, 21대 총선 직전 의석은 128석이었고 21대 총선을 통해 52석을 추가로 획득한 셈이다.
거기다가 18대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였으니 집권여당에게는 코트테일 효과(coattail effect: 대통령 취임 직후 치뤄지는 선거에서 여당 프리미움이 발생한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인데 반해 21대 총선은 회고적 평가(집권여당의 성과에 대한 평가; 야당의 언어로는 '정권심판론')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집권 4년차에 치뤄진 선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이견없는 압승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명제는 프레임을 넘어 경험적 현실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미래통합당의 참패? 그렇다면 미래통합당은 과연 참패했는가? 역시 18대 총선과 비교해보자. 사실 이번 선거가 미래통합당에게 지금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는만큼의 엄청난 참패인가 하는 의문을 계속 가져왔다. 아마도 나는 '참패'라는 상대적 개념을 생각하며 비교점을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18대 총선 직전 통합민주당의 의석 수는 136석이었다. 그런데 18대 총선결과, 통합민주당은 지역구와 비례를 모두 포함해 81석을 얻는데 그쳤다. 무려 55석이 감소한 것이고, 비교점을 4년 전인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152석)에 둔다면 무려 71석(!!!)을 잃은 것이다. 이에 반해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 직전 의석수가 112석이었다. 21대 총선으로 잃게 된 의석수는 겨우 9석에 불과하다. 2016년 20대 총선과 비교해도 122석에서 103석으로 의석이 줄어든 것이니 19석을 잃은 것이다. 물론 집권여당의 집권 후반기에 치뤄진 선거라는 점에서 좀 더 많은 의석수를 얻을 것이란 기대치가 있었겠지만 숫자만 본다면 과연 이걸 참패라고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물론 보수정당의 역사상 최대의 참패는 맞긴하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과는 달리 122석을 획득하며 제2당으로 주저 앉았을 때가 마지노선인줄 알았는데 103석까지 떨어졌으니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래도 '참패' 프레임에는 여전히 동의하기가 좀 어렵다.
그렇다면 이걸 왜 굳이 얘기하느냐? 현재 정치지형은 압승/참패 프레임에 의해 형성되어가고 있으며 각 정당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뭔가를 보여줘야한다. 이 정도 압승을 안겨주었는데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대선)때 어떻게 되겠는가? 더불어민주당이 밀고 있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형 뉴딜'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실행되고 있는 정책들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경제적 성과를 위해서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건 것이며 이를 통해 180석 집권여당의 힘을 보여줄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미래통합당은 "참패론"으로 인한 위기를 수습하느라 아노미 상태에 빠진듯하다. 오늘자 기사에 따르면 아무런 공식적인 선출절차를 거치지 않은 외부인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에게 당헌/당규를 뛰어넘는 권한과 무제한 임기를 보장하는 비대위원장직을 권유할 것으로 보인다는데... 앞서 살펴봤듯이, 수치만 놓고보면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맞지만 이런 과격한 조치를 취할 정도로 참패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전국 선거 4연패와 2022년 대선, 21대 총선에서 대권주자 대거 낙선이라는 맥락을 살펴보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과연 참패는 경험적 현실인가? "보수정당은 주류"라는 인식에 기반한 피해의식은 아닌가? 차분하게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늘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승리나 패배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기억해야 한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압승과 참패의 주인공이 지금과 정확히 반대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