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분석
"국회선진화법"이란 국회에서 빈번히 발생하던 "몸싸움"을 방지하고 국회운영을 선진화하자는 취지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지칭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내용은 이미 언론 및 많은 논문들에서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쟁점이 되는 부분만 언급하겠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1)다수당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의 강화, "합법적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 제도"와 2)중요한 의안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안건신속처리제도", "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 등 입니다.
이 법은 19대 국회 초기에 여야 합의에 의해 통과되었는데, 통과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국회선진화법의 재개정"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을 재개정하자는 논의는 여당인 새누리당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식물국회론"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는 등 기존의 여-야 합의제도를 더욱 강화하여 입법과정을 지체시키고, 이것이 입법생산성의 저하를 불러온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두 번째는 안건신속처리제도 하에서의 "3/5 규칙"이라는 초과반 규칙이 의회운영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과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학계에서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국회선진화법이 입법생산성을 저하시켰는지, 그리고 국회선진화법이 다수당의 입법주도권을 저해하였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주제는 2회에 걸쳐서 다룰 예정이고 먼저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18, 19대 국회 의안통계를 활용하여 제18, 19대 국회의 의안처리 현황을 비교해보고, 다음 포스팅에서는 국회선진화법 이후 다수당의 입법생산성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입법생산성이란?]
입법생산성(legislative productivity)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견해는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Mayhew(1991)는 입법생산성은 의회가 얼마나 많은 "중요한" 법률을 만들어내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에 "중요한" 입법만을 선별하여 의회의 입법생산성을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는 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중요한" 입법을 선별하는데 있어서의 자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이 "중요한" 입법인지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법안의 내용상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입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입법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의회 내에서 발의된 모든 의안 중 실제로 법률에 반영된 비율을 통해 입법생산성을 측정할 것입니다.
[제18, 19대 국회의 의안처리 비교]
여기에서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의 의안통계를 활용하여 제18, 19대 국회의 입법생산성을 비교해볼 것입니다. 먼저, 제18대 국회와 제19대 국회(2016년 1월 8일까지)에서 발의된 의안의 건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행정부)도 의회에 직접 의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것인데, 발의주체별로 의안건수를 살펴보면 국회의원들은 18대 국회에 비해 19대 국회에서 더 많은 의안을 발의하였습니다. 반면, 정부가 발의한 의안건수는 18대 국회보다 19대 국회에서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림 1>과 <그림 2>는 단순히 발의된 의안건수를 살펴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의안들이 얼마나 법률에 반영됐는지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의안의 법률반영률(원안가결, 수정가결, 대안반영폐기 포함)은 아래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3>을 보면 개별 의원에 의해 발의된 의안과 정부에 의해 발의된 의안의 법률반영률이 19대 국회에서 다소 낮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원 발의안의 법률반영률은 18대 국회에 비해 19대 국회에서 약 3% 포인트 하락했고, 정부발의안의 법률반영률은 약 10% 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19대 국회 하에서의 입법생산성이 18대 국회에 비해 다소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원장" 발의안은 소폭으로나마 19대 국회에서의 법률반영률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국회에서는 발의된 의안 중 동일한 법률에 대한 개정안 중 내용이 유사하거나 상임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조율된 의안들은 "위원장(대안)"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의안으로 통합됩니다. 즉, 위원장 안은 여야 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의안이고, 이러한 의안들은 국회선진화법 이전이나 이후에나 100% 가까운 법률반영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를 두고 국회선진화법 이후에 입법생산성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림 3>에서 보다시피 법률반영률이 대폭 하락한 것은 정부발의안 뿐이고, 의원 발의안이나 위원장 발의안의 법률반영률은 국회선진화법 이전이나 이후나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정부발의안의 경우도 여전히 65.7%라는 높은 법률반영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었다는 비판은 조금 가혹한 평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