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은 아닌데요, 불법도 아니에요

비대면진료 법제화 입법과정과 시범사업

by Hlee

국회에서의 정책은 "말"에서 시작된다

보좌진으로 합류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참여해 본 입법과정이 '비대면진료 법제화'였다.


비대면진료 법제화 이슈와의 첫 조우의 계기는 2023년 초 '원내대책회의 말씀자료'였다.


당시 모시던 의원님이 원내부대표를 겸하고 계셨어서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을 하셨더랬다. 각 당에는 적어도 십 수 명의 원내부대표가 있고, 대다수는 발언하지 않고 원내대책회의 참석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초선 의원은. 그러나 당시 원내대책회의에 재선 의원이신 보건복지위원회 간사께서 참석을 못하게 되면서 보건의료 현안에 대한 발언 대타로 우리 의원님이 선정되었다.


초선 의원에게는 이런 발언의 기회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나름의 기회이기도 하다. 당시는 새 정부 출범 초기라 전 정부의 실책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서두로 하고, 말씀자료 후반부쯤에는 정부여당의 우선순위 정책이면서 우리 의원실이 주도할 수 있는 이슈를 언급하자는 게 당시 의원실에서 정한 발언의 방향성이었다.


그래서 당시 의원실에서 선정한 아이템이 '비대면진료'였다. 내가 합류하기 직전 우리 의원실에서는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였다. 당시 새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고, 통과만 된다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입법이었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비대면진료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가도록 하자.




비대면진료, 20년은 된 해묵은 이슈

처음 이 말씀자료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비대면진료를 부각시켜라' 정도의 디렉션만 받았었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은 '비대면진료가 대체 뭔데?'였다. 생각보다 내용은 간단했다. 원격으로 전화 또는 화상통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비대면진료의 취지는 매우 좋다.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이라고 해도, 의료법의 대원칙은 기본적으로 대면진료이다. 그런데 병원이 없는 산간오지에 사는 분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직장인. 이런 사람들 생각하면 비대면진료 법제화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과거 기록들을 검색해 보니 20년 정도는 된 주제인 듯했다. 원격의료, 원격진료, 비대면진료 여러 명칭으로 불리던 비대면진료(여기에서는 편의상 '비대면진료'로 용어를 통일하여 사용하겠다')는 사실 보건의료계에서는 해묵은 이슈였다.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대면으로 진료 허용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뭐가 문제지? 이게 왜 20년 동안 안 된 거지?


아무튼,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원내대책회의 말씀자료를 마무리하는 거였어서 마지막 문단에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정도로 말씀자료를 우선 마무리했다.




엔데믹과 비대면진료 법제화, 그리고 입법시계

원내대책회의에서 비대면진료를 부각시키자는 미션을 수행하고 나고 한 달? 두 달? 지났을 무렵 복지부에서 과장과 실무자가 찾아왔다. 아무리 늦어도 4월 임시회에는 비대면진료 법제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비대면진료는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 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한 거였다. 감염병 경보가 '심각'단계일 때는 한시적으로 비대면진료를 실시하도록 하는 감염병예방법상 예외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 (이 미팅 전까지 이렇게 시행되고 있는지도 솔직히 몰랐다...) 그렇다면 왜 4월에는 법제화해야 하는 것인가?


6월 초에는 WHO가 엔데믹 선언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데믹 선언이 되면 그에 발맞춰 우리도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낮춰야 하는데, 한시적 비대면진료는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에서만 허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비대면진료의 편의성 때문에 이미 쓰고 있는 사람이 천만 명에 달하는데 법제화 없이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하향조정하면 그날부터 비대면진료가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위한 입법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복잡한) 비대면진료 법제화의 정치

이미 1,0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혜택을 보고 있는 비대면진료. 게다가 장애인, 산간오지에 사는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높여주는 좋은 제도. 이 명분에 더해 엔데믹을 앞두고 있으니 당연히 모두가 합심하여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지 않겠나. 그럼 법안을 발의한 우리 의원실도 공로를 인정받고. 그런데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쉽다던가?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직역단체) 먼저, 의사단체와 약사단체의 반대라는 관문을 넘어야 했다. 의사단체는 비대면진료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약사단체는 약물 오남용을 조장하는 제도라는 명분으로 비대면진료 법제화에 반대입장을 견지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반대이유이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도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주관적인 해석 포함) 사실, 의사단체는 명목상은 반대였지만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의사단체는 주로 개원의, 소위 말하는 동네 의원이 단체의 주를 이룬다.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에는 비대면진료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만 허용되고 있었고, 병원급은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있었다. 대형 병원이 비대면진료 제도를 통해 환자를 독식하는 구조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의사단체의 반대는 강력한 반대라기보다는 비대면진료 행위에 대한 수가 책정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협상력 제고 차원의 반대에 가까웠다.


약사단체의 반대는 의사단체의 반대보다는 명확했다. 한시적 비대면진료 체제 하에서는 약 배송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플랫폼을 통해 약을 배송받을 수 있으면 동네 약국에 굳이 가서 약을 살 필요가 없으니 환자들이 비대면진료 플랫폼으로 몰리고 있었다. 약사단체에게는 생존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


(야당)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비대면진료 자체를 놓고 보면 찬성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맞긴 했다. 그런데 비대면진료 법제화가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 목록에 포함된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국회에서 정부의 국정과제를 집중적으로 견제하는 게 야당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시적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이 문재인정부 시절 이루어졌고, 코로나19 방역은 'K-방역'으로 명명되며 문재인정부 최고의 정책성과로 브랜드화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대놓고 반대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당시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 심사를 담당하던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 중 약사 출신 의원이 다수 있어서 이들 주도로 비대면진료 법제화 법안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수면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정부여당) 정부와 여당은 비교적 단순했다. 국정과제이기도 하고, 폭넓은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대면진료 법제화 추진에 앞장섰다. 약간의 결의 차이가 있다면 정부는 비대면진료 법제화라는 국정과제를 달성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여당은 전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입법을 주도함으로써 1년 후 다가올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었다.


이런 구도를 종합해 보면 당시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던 야당이 당 차원에서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 의사단체의 반대도 비교적 약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사단체와 야당 내 약사 출신 의원들의 반대를 넘어서면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됐다.




뜻밖의 복병, 플랫폼 기업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제도 도입에 따른 최대 수혜자와 피해자를 꼭 봐야 한다. 수혜자가 피해자보다 많으면, 혹은 많다고 여겨지면 제도는 도입된다. 비대면진료 입법과정이 착착 진행되던 과정에서 비대면진료 제도화의 수혜자이자 잠재적 피해자인 플랫폼 기업의 목소리가 간과되었다.


다시 시계를 2020년으로 돌려보자.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 비대면진료가 도입되었다. 모든 국민이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이 된 거다. 그럼 비대면진료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당시 한 스타트업이 비대면진료를 위한 플랫폼과 병의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비대면진료 허용이라는 제도를 현실로 실현시켰다. 이후 약 3년 간 비대면진료 플랫폼 기업이 다수 등장했고 이들을 통해 비대면진료 서비스가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하나의 산업군으로까지 거듭났다.


그런데 2023년에 논의되던 비대면진료 법제화 법안에서는 비대면진료가 가능한 환자의 범위는 축소된 형태로 반영되어 있었다. 우선 초진이 아닌 재진환자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약 배송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었다. 동네 의원과 약국으로 향하는 국민들의 발걸음을 끊지 않으면서도 비대면진료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절충안인 셈이다. 그러나 전 국민이 비대면진료를 사용하던 환경에서 성장한 비대면진료 플랫폼 기업들이 30여 개나 되는데, 갑자기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국민의 범위가 좁혀지면 이건 시장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에게 있어서 시장 축소는 곧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공개적으로 입법이슈에 대해서 직접적인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이윤을 위해 감히 국가의 법과 제도에 관여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은 차치하고,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너무 무리하면 이권 개입으로 수사대상도 될 수 있고 수사까지 받지는 않더라도 감히 국가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면 이후 행정적 제재를 받거나 지원사업에서 배제되는 채찍을 맞을 수도 있어서이다.


그러나 비대면진료 법제화 국면에서 비대면진료 플랫폼 기업은 수동적 입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기업들은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개별 기업이 아닌 '업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비대면진료가 가져다주는 국민편익을 강조하며, 급기야 원산협의 입장을 담은 대안적 성격의 비대면진료 법제화 법안까지 나왔다.


골자는 초진환자까지 비대면진료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즉, 한시적 비대면진료 당시 전 국민이 사용하던 비대면진료 체제를 법제화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도였다.




합법도 아닌, 불법도 아닌

재진환자 중심의 비대면진료 법제화가 어느 정도 합의점으로 이른 시점에서 원산협발 법안의 등장은 입법 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안이 쟁점화된 것이다. 초진환자 허용 vs. 재진환자만 허용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비대면진료 입법논의는 공전했다. 초진환자까지 비대면진료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에 대해서는 의사단체도 이전보다 강력하게 반대했다. 환자 초진은 어디까지나 의사 고유의 영역인데 여기에 플랫폼이 끼어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사실 원산협이 초진환자 전면허용의 내용을 담은 비대면진료 법제화 법안을 낸 것은 통과가 목표라기보다는 재진중심으로 비대면진료 제도가 안착될 바에야 법제화 논의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도 깔린 것 아니냐는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도 들려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비대면진료 법제화 법안이 4차례나 법안소위 안건으로 올라갔음에도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6월 엔데믹을 맞이하게 됐다. 당시 정부는 법안 통과가 무산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자, '시범사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보건의료기본법상에는 새로운 보건의료 제도를 도입할 때는 시범사업을 도입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는데, 시범사업은 법적 근거 없이도 정부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일종의 만능 카드였다.


6월 초 예정대로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는 하향조정되었고, 한시적 비대면진료는 종료되고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한 재진환자 중심의 비대면진료가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초반에는 의사단체, 약사단체 의견이 반영돼 재진환자 중심의 시범사업이 되었지만 점진적으로 초진환자 대상자가 확대되었고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의대증원에 따른 전공의 이탈 이후에는 전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직도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몇 년째 시범사업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어 국민은 중단 없이 비대면진료의 혜택을 누리기는 했다. 결국 25년 12월 비대면진료 법제화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 법제화에 이르렀다. 어쨌든 해피엔딩이라고 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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