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이전에 "간호법 사태"가 있었다

간호법 제정의 입법과정

by Hlee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갈등, 갈등, 갈등

국회에는 18개 상임위원회가 있다. 각 상임위원회는 정부의 각 부처의 업무를 관리감독한다. 내가 속해 있던 보건복지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국민의 복지와 보건을 책임지는 부처의 업무를 관리감독 하는 위원회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적인 이야기.


보건복지위원회 베테랑 보좌관 선배가 내게 해준 말이 있었다. "복지위의 본질은 직역단체 간 갈등"이라는 것이었다. 복지위가 겉으로 보기엔 국민의 복지와 건강에 대한 정책을 관리감독하고, 관련 입법을 하는 위원회라서 철저하게 정책, 민생 상임위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복지위는 수많은 보건, 복지 직역단체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갈등의 장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간호법 사태"를 통해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됐다.




간호법, 뭐가 문제야?

2023년 상반기, 정치권을 가장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간호법'이었다. 간호법은 그동안 의료법 내에서 규정되어 있던 간호사의 업무범위, 처우 등에 대한 사항을 개별 입법인 간호법에 규정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정하자는 간호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보건의료 직역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가 제고되고 간호사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간호사들의 처우개선, 업무범위 명확화 등을 위해 간호법 제정하자는 데 왜 간호법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정치적 갈등이 극대화된 것일까?


간호법 제정이 간호단체의 오랜 숙원이었던 만큼, 간호법 저지를 그에 필적하는 숙원사업으로 여기던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의사단체였다. 사실 지금까지도 왜 의사단체가 그토록 간호법 제정에 반대했는지 잘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있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의사 중심의 의료법 체계에서 간호사가 독립하게 된 다는 점에 대한 우려, 의료현장에서 의사-간호사 간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 간호법 제정은 곧 간호사 단독 개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등.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거다.


아무튼, 간호법에 대한 의사단체의 반감은 실로 엄청났다. 의사단체 쪽에 꽤나 친분이 있는 분과 나눈 대화가 간호법에 대한 의사단체의 반감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의사단체가 반대하는 다른 법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왔던 이야기인데..


"A 법안에 대해서도 의사단체에서는 반대하던데, 어느 정도로 반대하는 거예요?"

"에이 그 법안은 그냥 명목상 반대예요. 간호법이 에베레스트라면 그 법안은 그냥 동네 뒷산 정도?"


간호법에 대한 의사단체의 이러한 반감은 여야 갈등구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간호법을 둘러싼 여야의 셈법

먼저, 정부여당은 당시 간호법 제정에 대해서 소극적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반대면 반대지, 소극적 반대는 또 뭔가? 거기엔 그만한 사정이 있다.


당시 여당은 사실 간호단체와 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바 있다. 간호단체 회장 출신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줄 정도로 긴밀했다. 그래서 사실 간호법만 놓고 보면 반대할 이유도 없고, 명분도 약했다.


그런데, 의사들의 반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내세운 대표적인 국정과제들을 보면... 지역필수의료 강화, 비대면진료 법제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통합 돌봄 체계 구축 등. 무언가 보이는가? 어느 하나 의사단체의 협조 없이는 이행할 수 없는 대형 과제들이다. 특히,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민생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지역필수의료 강화라는 국정과제를 두고도 의사단체와 이미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결사 반대하는 간호법에 찬성한다? 의료 관련 국정과제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여당은 국회에서도 소수였다.


그래서 여당은 간호법 제정만 빼고, 간호단체가 요구하는 거 다 들어줄 기세였다. 간호법 제정 이전에 실질적인 간호사 처우개선부터 하고 간호법은 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것이 정부여당의 입장이었다.


야당은 이런 사정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야당은 야당 나름대로의 셈법이 있었다. 당시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은 대통령이 된 야당 대표는 170석 거대야당의 대표이기는 했지만 21대 국회 당시만 해도 당내 입지도 불안정했고, 검찰수사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을 결집시키고, 자신에 대한 수사에 집중되는 여론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 택한 전략이 쟁점법안 강행처리였다.


그렇다고 아무 쟁점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여당이 찬성할 수는 없지만, 사회 내 각 단체가 숙원사업으로 여기는 법안을 정치적 쟁점화시키고 그걸 국회 다수당으로서 강행처리한다는 전략이었고, 그중 하나가 간호법이었다.


당시 야당 입장에서 간호법 추진은 꽃놀이패였다. 간호법이 야당 주도로 통과되면 간호계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정부여당의 저지로 통과되지 못한다고 해도 정부여당과 간호계 간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간호법을 둘러싼 입법전쟁

야당은 수적 우위를 이용한 강행처리 전략을 구사했다. '직회부'라는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던 국회법 조항을 꺼내 들어 상임위 단계에서의 여야 협의절차를 우회하고, 법사위를 넘어 본회의에 간호법을 상정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여당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론전이었다. 간호법에 반대하는 의사단체, 간호조무사단체 등 13개 보건의료 직역단체가 연합한 보건의료연대와 적극 소통하며 간호법 강행을 '직역 이기주의'로 규정했고, 간호법을 강행처리한 야당은 야당대표의 범죄 혐의로 향하는 국민적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간호법을 이용하며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프레임으로 맞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여론을 여당의 편으로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여러 명분을 갖다 붙여도 간호법을 원하는 간호사와 야당은 약자, 간호법을 저지하는 의사단체와 여당은 기득권/강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 여당 입장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간호조무사단체였다. 의사-간호사 구도에서 간호사는 약자지만, 간호사-간호조무사 구도에서는 간호사도 또 하나의 강자집단이기 때문이다.


당시 간호조무사단체는 '학력상한제 폐지'라는 숙원사업 입법을 간호법 사태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현행 의료법에 의하면,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특성화고를 졸업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간호학과 4년제 학사가 있어도, 박사학위가 있어도 간호조무사 학원을 수료해야만 응시할 수 있었다. 이는 간호조무사라는 직군을 고졸로 제한하는 일종의 '카스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누가 반대했나? 간호사단체였다. 이번에는 약자인 간호조무사의 숙원사업을 막아서는 것은 강자인 간호사단체였다.


당시 내가 속해있던 의원실에서 간호조무사단체의 요청을 수용해 '간호조무사 학력상한제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이 과정이 정말 험난했다. 법안 하나 발의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큰 반발에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 의원실로 항의전화가 빗발친 것은 물론이고, 우리 법안에 공동발의를 해준 의원실에게까지 전화폭탄이 떨어졌다. 국회 정문 앞에는 우리 의원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보좌관님과 함께 법안을 들고 발로 뛰며 공동발의자를 모았지만 역부족이어서 의원총회 가시는 의원님 붙잡고 의총서 도장 2개만 더 받아오셔야 한다고 등 떠밀며 겨우 10명의 공동발의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법안 덕분에 간호사 대 간호조무사라는 또 하나의 강자 대 약자 구도가 성립되며 의사 대 간호사 구도가 다소 희석되었고, 우리 의원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이후 간호법은 야당 주도로 국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끝내 좌절되었다.




간호법 부결 그 이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인해 간호법이 다시 국회에 돌아오고 재의결에서 끝내 부결되었을 때, 입법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간호사들의 눈물을 동반한 씁쓸한 승리였다.


그럼에도 간호사단체에게 간호법 국면은 그 정치적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50만에 달하는 전문자격을 보유한 회원 수를 기반으로 중앙-시도-시군구 단위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 그리고 전국 간호대학의 대학생을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인프라까지 갖춘 막강한 직역단체로서 스스로의 힘을 증명해냈다. 간호법 사태 이후, 복지위 내에서 간호단체가 반대하는 입법은 결코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필수의료 강화 등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의사단체의 편에서 간호법을 좌절시킨 정부여당은 그로부터 1년 후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으로 의사단체를 적으로 돌려버렸다. 의대증원 정책은 의정갈등으로 이어졌고, 이어서 총선 패배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간호법은 의정갈등의 여파 속에서 총선 직후 국회의 문턱을 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간호법의 본래 취지와는 무관하게 여당과 야당, 의사단체, 간호단체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과 역학관계가 간호법의 운명을 좌우했다. 우리가 정치환경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여기 질문 하나. 간호법 통과를 두고 그렇게 치열하게 대립했었는데, 간호법 이후 과연 현장 간호사들의 처우는 얼마나 개선되었을까?그 답은 현장의 간호사들만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답이 간호법을 둘러싼 이 길었던 싸움의 의미를 나타내는 척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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