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센터'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업무 비수기 중 떨어진 날벼락, 의원실 불법점거
나에겐 꽤나 다사다난했던 21대 국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큰 사건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인한 "의원실 불법점거"였다.
국회의 업무주기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명확하게 나뉜다. 성수기는 단연 9월 1일부터 100일 간 지속되는 정기국회 시즌이다. 정기국회 시즌이 바쁜 이유는 10월에 국회의 1년 농사라고 할 수 있는데 국정감사가 20여일 간 실시되기 때문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이 아니면 11월 말이면 대체로 비수기다. 안 바쁜 시기란 의미이다. 특히, 상임위 예산안 예비심사까지 끝나고 나면 법안소위를 제외하면 특별히 바쁜 일이 없어 나름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나의 법안으로 인해 이 평화가 순식간에 깨지게 되었다.
때는 21대 국회가 끝을 향해 가는 23년 11월 중순. 의원님과 보좌관님은 법안소위 참석을 위해 의원실을 비운 상태였고, 나와 몇몇 친구들만 의원실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 4시쯤이었나, 의원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10여 명의 사람들이 소리를 치며 우리 의원실로 쳐들어왔다. 그 중 절반 정도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당시 이들은 의원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XXX 의원 사기꾼!!" "장애인복지법 개악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의원실로 밀고 들어왔다.
사실 화가 난 상태에서 의원실에 항의성 방문을 하는 민원인을 목격하는 일은 엄청 자주 있는 일도 아니지만 딱히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항의의 강도가 훨씬 강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 "IL센터"
의원실로 들이닥친 이들은 그 유명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른바 '전장연'의 소속단체 중 하나인 A단체 회원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난걸까?
당시 우리 의원실에서 발의한 법안 중 보건복지위를 통과하여 법사위 제2법안소위에서 가결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발단이 되었다.
개정안의 골자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즉 IL센터를 장애인복지법 상 장애인복지시설로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뭐가 문제인가 싶지 않은가? 장애인복지시설로 편입되면 국가 지원도 확대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IL센터는 법적 근거를 갖고 있는 단체였고, 국가의 예산지원도 일부 받는 센터였지만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련 단체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센터였고 국가의 회계감사, 관리감독을 전혀 받지 않았다.
A단체 회원들의 주장의 요지는 IL센터가 장애인복지시설로 편입되어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게 되면 자율성을 잃게 되어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운영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의 세금이 들어가는 시설에 대해서 회계감사, 관리감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우리 의원실의 입장이었다. 자립생활센터를 다수 운영하는 또 다른 단체인 B단체의 경우 IL센터에 대한 법적 근거 미비로 인해 국가 지원, 운영 투명성 등의 한계가 있어 우리 의원실의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즉, 이 문제는 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는 단체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할만큼 의견이 분분한 이슈였다는 것이다.
시위라는 헌법적 권리와 불법점거 그 사이 어딘가
시위는 엄연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고, 최대한 광범위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나도 늘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이게 막상 시위의 극단을 직접 겪어보니 책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긴 했다.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이슈몰이를 위해서 의원실 항의 방문을 할 수 있다고는 본다. 다만, 과연 어디까지 이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사무실에서 몇시간 동안 고성을 지르며 업무를 방해한 것은 차치하고, 국회의원 보좌진의 업무공간을 넘어 국회의원의 집무실까지 밀고 들어가서 피켓을 여기저기 붙이고 이를 SNS에 생중계 하는 행위는 정당한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비장애인 활동보조들이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촬영하며 의원실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며 고의로 충돌을 유발하는 행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것도 다 시위의 권리에 해당하는 일일까?
아무튼, 이들의 점거는 18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이 진풍경을 보도하기 위해 의원실 문밖에 십수명의 기자와 방송카메라가 몰려들었다.
점거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자 바로 전날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가결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마땅히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어 가결되고 본회의로 직행했어야 할 법안이었는데 말이다. 다들 A단체의 타겟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 눈치를 보고 있던 거였다. 이 밖에도, 우리 의원실에서 발의한 장애계의 숙원입법이었던 장애인권리보장법안에 대한 심사에도 제동이 걸렸다.
분하지만 일단 전반적인 상황은 불법점거를 단행한 A단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불법점거로 인해 입법권을 침해당한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에 의원실 입장에서도 강경대응이 필요했다. 점거 다음 날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원님은 신상발언을 통해 불법점거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불법점거를 정치테러로 규정하고, 기자회견까지 하셨다. 아울러, 불법적으로 의원실을 점거한 A단체 회원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의원실 허가 없이 의원실에 출입하고, 18시간 동안 방치한 국회사무처에 대한 법적 조치까지 취했다.
의도한 결과와 그렇지 않은 결과
어떠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여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상황에 대한 후속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해서든 사태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것이 국회의 업무 패턴이다. 이때 대응을 제대로 못하면 더 큰 사태로 번지기도 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수개월 동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로 한다.
우리가 경험한 의원실 불법점거 사태는 잠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는 했으나, 의원실 차원의 강경대응으로 인해 더 확산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언론의 집중조명으로 인한 열기가 가라앉으면 그때부터는 다시 차분한 입법과 후속조치의 시간이 찾아온다.
의원실에서 불법점거의 부당성과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널리 알린 결과, 결과적으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몇달 후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심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21대 국회가 총선 국면에 접어들며 심사가 미뤄지다가 결국 임기만료폐기를 맞이했다. 입법적으로만 보면 절반의 승리였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둘러싼 불법점거 사태는 국회 방호체계 강화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불법점거를 방치한 혐의로 국회사무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나서 의원실 차원에서는 후속조치로 관련 부서와 제도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수차례 실무협의를 이어나갔다. 그 결과, 국회 무단출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부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이후 국회 방호직 선발시험에는 국회 청사 출입 제한조치 등에 대한 개정 규정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규정이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과 혼란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이처럼 국회라는 공간은 때로는 전혀 의도치 않은 사안으로 인해 이 사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제도가 개선되기도 하는, 그런 수수께끼와도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