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처리)수 공방과 원산지표시법 개정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현실정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프레임 전쟁'이다. 프레임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사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규명하는 일종의 사고의 틀인데, 프레임이 우리 편에 유리하게 짜여지면 해당 이슈가 부각될수록 득이 된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각기 다른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정치권으로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책은 인지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이다. 사람들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곧바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는 단순한 명제에서 시작한 이 책은 결국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상대의 언어가 아닌, 우리 편 고유의 언어를 사용한 프레임을 짜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사례 중 프레임 전쟁의 실패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사례는 한나라당이 노무현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에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에 대하여 당시 정부여당이 '종부세는 세금폭탄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세금폭탄'만 남게 되었다는 에피소드.
그러나 때로는 간단한 팩트 체크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프레임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오염(처리)수는 홍보하지 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례이다. 원전 사고 당시 녹아내린 핵연료와 접촉한 오염수가 축적되어 있었는데, 사고 이후 10여 년이 흘러 일본 정부가 2021년 4월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를 통해 정화한 이후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2023년 5월,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라는 용어를 '처리수'로 공식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소식이 일간지 단독보도를 통해 전해지며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여야 간의 공방이 시작됐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오염수'라는 부정적 용어로부터 탈피하고자 '처리수'라는 용어를 쓰며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줄이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현재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듯이, 대다수의 언론은 '오염수'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 '처리수'라는 단어 사용을 통한 프레임 전환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던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안으로 받아들였고, 방류를 하는 주체가 한국 국민들에겐 민감한 일본이었기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이슈였다.
야당의 공세는 거셌다. 정부여당의 '오염수'에서 '처리수' 명칭 변경 시도를 두고 창씨개명, 지록위마라는 비판을 제기했고, 오염수를 넘어 '핵 폐수'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두 달 뒤인 7월에는 정부에서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의 안전성에 대한 전문가 대담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확산시킨 것을 두고, 야당은 정부가 국민혈세를 들여 일본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공세를 이어갔다. 당시 문체부 광고예산이 약 10억 원이 투입된 이 영상을 두고 '친일 프레임'까지 저변에서 작동했다.
정부여당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야당의 공세에 대하여 '괴담', '선동'이라며 비판했고, 우리나라의 수입수산물 검역체계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수산업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반격했다.
팩트체크 + 제도개선을 위한 원산지표시법 개정안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공방이 시작될 무렵, 우리 의원실은 현장견학으로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을 방문했었다. 당시 식약처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본산 수입식품 등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후 식약처에 관련 자료를 요구해서 받아보았는데, 수치로 보면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해서는 거의 전수조사 수준(97%)의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었고, 미량 검출율도 0.009% 수준이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입식품 검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원산지가 '일본산'으로 찍힌 식품에 대해서만 이러한 철저한 검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원산지표시 조사 권한을 식약처에게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원산지표시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식약처는 식품, 의약품 안전을 총괄하는 부처이고 식품위생원이라는 전국 단위의 조직도 운영하고 있는데 반해 원산지 표시 조사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현행법상에는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관세청만 가지고 있는 원산지 표시 조사 권한을 식약처에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을 낸 것이다. 앞서 우리 의원실에서 발굴한 식약처 자료와 함께 이 법안의 내용을 일간지 단독보도로 내보냈다. 우리나라 검역체계의 안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의 목적과 함께 제도개선 방안까지 담으려 한 시도였다.
내로남불의 힘은 강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공방이 한창이던 때 발의했던 법안이라 꽤 이목을 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법안과 보도내용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역시 정책보도에는 다들 관심이 없다..)
관심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공방이 한창이던 8월은 결산심사 시즌이기도 했다. 결산은 작년도 예산이 어떻게 씌었는지 국회가 검토하고 정부부처에 성적표를 메기는 절차인데, 결산심사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과거 정부에서, 그러니까 당시 야당이 여당이던 시절 정부가 일본산 수입식품 관련한 홍보영상을 만들어서 배포한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에는 언젠가는 써먹겠거니 하고 쟁여두었었다.
그런데 법안을 발의하고 나서도 큰 이목을 끌지 못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공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고 내가 속해있던 보건복지위에서도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쟁여두었던 자료를 꺼내 들었다.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는 대충 보고 넘겼던 자료였는데, 같이 논의하던 기자님의 인사이트가 더해지니 그럴싸한 보도거리가 되었다. 이전 정부에서도 유명 유튜버를 통해 소위 국민혈세를 들여 일본산 수산물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 및 확산시켰고, 해당 영상이 배포된 시점은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하겠다는 결정을 밝힌 후였다.
현 정부여당이 일본정부 입장을 대변한다며 비난하던 야당의 주장이 다소 궁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보도는 예상치 못하게 엄청난 이목을 끌었고, 전체회의에서 야당이 해당 보도를 언급하며 왜 여당의 자료요구에만 빠르게 응하느냐고 식약처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사례의 한 줄 교훈: "역시 정책보다는 '내로남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