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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Dec 25. 2020

드디어 나도 돌끝맘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1년이'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찐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존재가 있었던가. 지난 1년이 꿈결처럼 떠오른다. 아기가 세상에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나도 아기에게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특히 아기가 신생아였던 처음 30일은 새 생명을 마주한 벅참을 온몸으로 느낀 시기이기도 했지만, 하루하루가 참 고되고 길게 느껴졌다. 출산 후 회복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아기는 자주 울었다. 아기가 잠들면 그대로 기절하는 날이 많았다. 


너무 작고 연약한 아기를 보며, 생명의 무게와 보호에 대한 책임감을 처음 느꼈다. 잠든 아기 얼굴 앞에 수십 번 귀를 갖다 대고 숨소리를 확인했고, 아기의 체온을 밥먹듯이 쟀고, 실내온도에도 민감해져서 집의 온도를 수시로 올렸다가 내렸다. 방구석에서는 온종일 공기청정기와 제습기(또는 가습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아기가 목욕할 때는 아기욕조 두 개와 함께 큼지막한 온열기가 대령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아기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출산 이틀 뒤에 아기와 함께 집에 왔는데,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기가 하루에 얼마나 먹어야 되는지, 어떻게 먹여야 되는지도 몰랐고, 당장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육아는 실전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그제야 아기가 우는 이유, 우는 아기 달래는 법, 수유하는 법, 트림시키는 법, 아기가 먹지 않는 이유, 아기 재우는 방법 같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봤다.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그때는 한 번 수유하는 데 길면 1시간도 걸렸었으니까) 유튜브나 책을 뒤졌다.


다행히 3주 동안 집에 오셨던 산후도우미에게 많이 배웠다. 안 맞아서 중간에 다른 분으로 한 번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배꼽을 소독하는 법이라던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법, 수유텀 등 첫 번째 분에게 배운 건 많았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100일이 지나 아기가 통잠을 자면서부터 나에게도 다시 낮밤의 구별이 생겼고, 6개월이 지나 모유수유를 끝낼 때는 아기의 영양공급원에서 독립된 인간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육아를 조금 일찍 시작한 친구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종종 "그때가 좋을 때야"라는 말에 질색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만삭으로 힘들어하면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야. 아기 낳으면 끝이니까 그때 즐겨."라고 했고, 4개월 원더윅스 때 유난히 보채는 아기 때문에 힘들 때는 "그래도 아기 지금 누워있잖아. 나중에 기고 걸으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반감이 생기고는 했다. 실제로 나는 만삭 때보다 아기를 낳은 후가 더 좋았고, 원더윅스때 힘들었던 것보다 아기가 기고 걷는 걸 감당하는 게 더 수월했다. 점점 힘들 거라는 말과 달리 간혹 튀는 날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점점 편해지는 중이다.


아기가 처음으로 혼자 젖병을 잡고  순간, 스스로 빨대컵을 사용할 때의 감동이 아직 생생하다. 기저귀를 떼는 건 아직 멀었지만 혼자 밥을 먹는 건 앞으로 더 연습하면 그렇게 먼 일도 아닐 것 같다. 이제  우리처럼 삼시 세 끼를 먹게 될 테고, 머지않아 유모차와도 작별하게 되겠지. 이젠 아기가 분유를 먹다 흘리거나 토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인지 빨랫감도 많이 줄었다. 빨래를 하루에 2번만 해도 된다고 좋아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빨래를 안 하는 날도 생겼다.


아기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늘면서 아기와 적절한 거리가 조금씩 생겨나고 다. 이유식을 준비할 신경 쓰고 걱정하던 마음도 줄었다. 몸과 마음이 전에 비해 조금씩 편해지니 요즘 들어 아기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소박한 돌잔치

우리는 스튜디오에 가서 돌 촬영을 하지 않았고 사람을 많이 초대하는 돌잔치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남편과 내가 그런 이벤트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다. 우리는 양가 가족들끼리 식사만 하기로 정하고 식당을 예약했는데, 2만 원을 내면 돌잡이까지 할 수 있는 돌상을 차려주는 곳이었다. 우리는 돌상에 올릴 케이크와 떡과 과일만 준비해 가면 되었다. 아기가 입을 옷도 100일 셀프 촬영 때 입었던 옷을 입히기로 해서 우리는 더욱 준비할 게 없었다.


스스로의 소박함을 내심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나보다 더했다. 나는 그래도 돌상을 더 예쁘게 꾸며줄, 이를테면 아기 대두 스탠딩이나 현수막, 풍선 같은 것들을 준비하려 했는데 남편은 그마저도 필요 없다고 했다. 내 옆에서 슬그머니 "제로 웨이스터가 그런 걸 사겠다고?"라고 하는 것이다. 남편은 내 브런치의 반강제 애독자였고, 내가 제로 웨이스트에 대해 쓴 글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잠깐 기분 좀 내려고 그런 것들을 봤자 한 번밖에 못쓰고 쓰레기가 될 게 뻔했다. 결국 나는 케이크 토퍼 하나만 주문했다.


첫돌을 맞아 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첫돌 기념 성장 동영상을 직접 만들어 본 것이다. 동영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다룰 줄 아는 프로그램은 딱히 없었고, 그냥 노트북에 기본으로 깔려 있는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만들었다. 육퇴 후 짬짬이 만들었는데, 동영상에 넣을 아기 사진을 남편과 같이 고르는 데 이틀이 걸렸고, 그것들을 편집해서 영상으로 만드는 데 나흘 정도 걸렸다. 전문가가 만들어주는 성장 동영상에 비하면 허접하기 그지없지만, 1년간 아기의 성장 모습을 돌아보고 아기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어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첫돌 당일에는 첫눈이 내렸다. 식당은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어서인지 인원수보다 두 배 넓은 룸을 준비해주었는데(정말 식당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덕분에 답답한 느낌 없이 우리만의 공간에서 아기에게 충분한 축하를 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기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걸 처음 봐서 그런지,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히 돌잔치 전에 낮잠을 자서 그런지, 사진을 찍고 식사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고 칭얼대지도 않았다. 사실 그걸로 완벽했다. 돌잔치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기의 좋은 컨디션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기억하기 위해 해 두는 기록


・ᴗ・ 호야가 일 년 동안 바쁘게 수행한 미션들

코로 숨쉬기, 분유 삼키기, 트림하기, 쉬야 응가 하기, 방귀 뀌기, 입으로 숨쉬기, 새롭게 보이는 세상이 불안할 땐 엄마한테 매달려 안정감 획득하기, 손으로 물건 잡기, 목 가누기, 엄마가 그림책 읽어주면 관심 있는 척하기, 혼자 앉기, 옹알이 하기, 뒤집기, 되집기, 이앓이 견디기, 손에 잡히는 물건은 모두 입에 넣어서 탐색하기, 음식물 씹어 넘기기, 식재료들 하나씩 맛보기, 배밀이 하기, 기기, 잡고 서기, "엄마, 아빠, 맘마, 물" 하기, 알 수 없는 말("맴맴, 빠끔, 깡깡") 하기, 혼자 서기, 손가락으로 무언가 계속 가리키기, 걷다가 안정적으로 넘어지기


・ᴗ・ 엄마가 일 년 동안 행복을 느낀 순간들

- 이유식 먹일 때 아기새처럼  벌릴 때

- 아기 냄새 맡을 때(입냄새, 손 냄새, 발 냄새)

- 아기가 무심코 나에게 올린 손에서 온기가 느껴질 때

- 아기의 눈을 응시하고 웃을 때

- 볼록하게 튀어나온 찹쌀떡 같은 뱃살 조몰락거릴 때

- 아기가 놀다가 알아서 잠들 때


・ᴗ・ 엄마가 맥 빠졌던 순간들

- 쉬야 기저귀 갈자마자 응가했을 때

- 재울 때 오래 걸렸는데 잠든 지 한 시간도 안돼서 깼을 때

- 안아줬는데도 울거나 짜증 내면서 샤우팅 할 때

- 머리로 엄마 턱을 아래서 위로 치받을 때

- 엄마 머리카락 쥐어뜯을 때

- 엄마 안경 잡아채서 안경다리 벌어질 때(그래서 고개만 숙여도 안경이 벗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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