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화장실 앞에서 먹은 등갈비

생후 11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호야와 처음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여행 기회가 찾아왔다. 여행 기회. 이제는 정말 여행을 가려면 타이밍이 필요해진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는 돈과 시간만 있으면 여행을 갈 수 있었는데. 물론 그때도 돈이나 시간이 없어서 (혹은 없다는 핑계로) 못 간 적이 많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을 먹는 데 고려할 것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결혼도 하고 아기가 생긴 지금은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해서 고려할 것들이, 늘어난 가족 수만큼이나 많아졌다.


일단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코로나가 잠잠할 때여야 하고(이때만 해도 하루 국내 확진자가 100명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두 집에 다른 행사가 없어야 하고, 아기가 원더윅스 기간이 아니어야 하고, 남편이 직장에서 연가를 쓸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여행 날짜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돌이 남편이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줘야 하는데, 다행히 남편은 힘들기만 했다던 4개월 전 안면도에서의 기억이 조금 흐려졌는지, 싫은 내색 없이 이번의 여행지를 같이 고민해주고 있었다. 가족이 있으니 좋은 점도 있다. 항상 든든한 여행 메이트들이 곁에 있다는 것.


남편이 여행에 관심이 없어서 한 가지 이득인 것은, 목적지를 정할 때 웬만하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번 목적지를 정하는 데 내 욕심이 적극 반영됐다. 내 경우 7년 부터 국내 천주교 성지 111곳을 모두 순례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기회가 되는 대로 조금씩 다니고 있었는데, 그중 3곳을 이번 가족 여행 때 가겠다는 맹랑한 생각을 사실 오래전부터 품고, 몇 달 전부터 그러한 야망(?)을 스리슬쩍 남편에게 흘려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한 치밀한 전략이 통했는지 남편은 무교이면서도 내 바람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대전교구에 있는 성지 3곳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가까운 곳들은 거의 방문을 한 터라, 가보지 않은 성지 중에서는 그나마 대전교구 성지가 가장 가까웠다).


날이 아직은 따뜻했던 11월 중순, 그렇게 아기와 두 번째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 때처럼 아기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서. 우리의 계획은 첫날에 성지 두 곳을 방문하고, 대전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잔 다음, 둘째 날 나머지 성지 한 곳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거였다.


성지순례를 한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가 새는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하겠다(이미 이야기가 많이 샌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가는 길에 휴게소를 들르지 못하는 바람에(고속도로 휴게소는 수유실이 잘 갖춰져 있어 이유식을 먹이기에도, 기저귀를 갈기에도 편리하다) 처음 방문한 성지에서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이유식을 데워 먹이고, 분유를 탈 뜨거운 물을 챙겨가지 않는 바람에 편의점에서 라면용 뜨거운 물과 생수를 섞어 타서 먹이고, 숙소에 도착할 때쯤에는 남편과 내 핸드폰이 둘 다 배터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으며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아침 9시 반에 출발해 성지 두 곳을 들른 후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5시 반이었다. 차로 이동한 시간이 첫날에만 5시간이 넘었던 것 같다. 아기가 차에서 얌전히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남편과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기는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처음 방문한 성지에서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난 후 (남편과 나는 이후에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웠다)


이 방의 작은 무법자.




숙소를 고를 때 우리는 저번의 고생을 떠올리며, 침대가 없는 온돌식 객실이면 모든 게 괜찮을 줄 알았다. 아기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우리도 한시름 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온돌식에, 식탁도 의자도 없는, 가구가 최소한으로 비치된 객실을 찾아서 예약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아기의 입장에서 바라본 객실에는 위험한 것들이 여전히 많았다. 객실을 둘러싼 3개의 벽에는 전기 콘센트가 여러 개씩 버티고 있었고, tv장은 유리로 된 부분이 있어서 아기가 힘껏 열고 닫을 때마다 깨질까 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장 위에는 유리컵 같은 위험한 물건들이 있어 쓰레기통과 함께 벽장 안에 넣어둬야 했고, 전기 포트를 사용할 때는 아기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신경 써야 했다.


아기는 지치지도 않고 전기 콘센트나 tv장 쪽으로 기어갔고, 남편과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느끼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난의 시간을 버텼다.


그 와중에 남편은 틈틈이 우리가 먹을 저녁을,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그 저녁 한 끼가 지친 하루 끝에서 우리를 구원해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남편은 심사숙고 끝에 등갈비를 먹기로 메뉴를 정하고, 포장한 것을 사러 나갔다 왔다.


남편이 등갈비를 사 온 후에도 아기는 한참 동안 잠들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서로 예민해져 모난 말들을 조금씩 주고받을 때쯤에서야, 신나게 기고 떼쓰던 아기가 장렬히 취침에 들어갔다. 평소 잠들던 시간보다 2시간 늦은 시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밥을 먹을 장소가 없다는 걸... 우리는 불을 켤 수도, 시끄럽게 포장지를 뜯을 수도, 말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컴컴한 원룸식 객실에 잠든 아기와 함께 덩그러니 남았다.


최대한 아기에게 빛이 가지 않는 전등이 어떤 것일까 찾아보니 바로 화장실 전등이었다. 우리는 화장실 불을 켜고, 화장실 문을 열어둔 채 그 앞에 앉아 등갈비를 먹었다.


단연컨대, 그날의 등갈비는 이제껏 내가 먹은 등갈비 중 제일 맛있었다. 부드러운 육질에, 매콤 달콤한 소스, 거기에 쫄깃한 당면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우리는 등갈비를 가운데 놓고 각자 햇반 1개씩과 소주 1병씩을 깨끗하게 비웠다. 힘들어서 뾰족뾰족했던 마음들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소곤소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곧 우리도 잠이 들었다. 모퉁이에 누워있는 아기를 둘러싸고 남편과 내가 ㄴ자를 만들어 인간 바리케이드가 되어 잠을 잤다. 아기가 자다가 위험한 곳으로 굴러가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 이제 여행은 가지 말자."

잠들기 전, 남편에게 속삭였다. 저번 여행 때 남편이 했던 말인데, 이번에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이러다 행복한 기억만 남을 때쯤 아기와 함께 또 어딘가로 가게 되겠지. 그때를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리게 된다.



왼쪽 구석에 겨우 재워놓은 아기.


화장실 불빛에 의지해 남편과 먹은 등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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