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랑 같이 여행을 간다는 것

생후 7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호야가 태어난 후 처음 맞은 여름휴가기간.

'이대로 집에만 있을 순 없어!' 생각한 나는 아기와 함께 셋이서 여행을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은 1박 2일로 짧게(우리에겐 결코 짧지 않을) 간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어디를 가느냐였다. 나는 산이나 바다나 계곡 등 자연 속에서 힐링을 하고 싶었지만 아기에게는 산도, 바다도, 계곡도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같이 등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곡에서 함께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힐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부터 이미 잘못이었다. 어디를 가든 아기를 계속 안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니 어깨나 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호야는 어느덧 몸무게가 9.6kg에 육박했다. 안아 올릴 때부터 팔이 후들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을 가는 게 과연 우리 셋에게 좋은 일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디든 가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아기는, 왠지 지금은 어디에 있든 상관없어 보였다.


아빠 머리 쥐어뜯는 게 재밌을 나이


아기가 낯선 곳에서 무난히 있어줄지도 미지수였다. 제일 큰 걱정은 이 두 가지였던 것 같다.


1. 아기가 숙소에 잘 적응할까?(숙소에서 계속 울진 않을까?)

2. 아기가 다른 환경에서 잠을 잘 잘 수 있을까?(아기가 안 자고 계속 울면 어떡하지?)


한마디로 '아기가 계속 울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유모차나 카시트, 카페, 식당 등 어디서든 대체로 잘 적응하는 무던한 아기였지만 언젠가 한번 친구 집에서 종일 울었던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럴까 봐 걱정이 됐다. 거기다 잠도 못 자고 오래 울기라도 한다면... 짐을 싸서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될 수도 있다.


갈까 말까 갈팡질팡하는 사이 휴가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남편과 나는 출발 예정일 이틀 전이 되어서야 '그래도 가보자'는 결정을 어렵사리 내렸다. 아기가 있으니 1박 2일 떠나는 걸 결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우리는 숙소에 머무르는 것 외에 다른 여행지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우리의 체력이 거기까지는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숙소가 여행의 전부가 될 예정이었고, 그러다 보니 숙소를 고를 때 가지 조건이 더 붙었다.


1. 차로 2시간 이내 거리(비상시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

2. 숙소에서 바다나 산이나 계곡이 보일 것.

3. 숙소에 계속 있어도 답답하지 않도록 테라스가 있을 것.


우리가 머문 펜션


남편과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안면도에 있는 펜션에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2시간 거리에 바다도 보이고 테라스도 있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곳이었다. 숙소에 계속 있다가 저녁에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먹는 게 여행 계획의 전부였다.


여행 당일. 일기예보는 1박 2일 동안 비가 온다고 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호야의 두 번째 끼니를 해결한 후 집을 나섰다. 밤톨만 한 아기 한 명 더 같이 가는 건데 짐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짧은 시간이고 펜션만 다녀올 거지만 어쨌든 셋이서 떠나는 첫 여행이다. 운전하는 내내 기분이 들떴다. 일요일 출발이라 차도 막히지 않았다.


집 근처에서 삼겹살을 사고, 펜션 근처 방포수산에서 광어회랑 조개를 산 다음, 입실 시간인 오후 3시에 맞춰 펜션에 도착했다. 방도 화장실도 깔끔했고, 푹신한 침대도 마음에 들었다(그때까지는).


아기를 안고 테라스에 나가 바다를 보여줬다.

"아기야, 바다 처음 보지? 바다 보니까 어때?"

아기는 대답 대신 난간만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 역시 아직 바다를 보고 좋아할 나이는 아니지.'


행복한 순간 중 하나, 냉장고 채워 넣기


여긴 어디죠, 엄마?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막상 펜션에 도착하니 불편한 게 두 가지 있었다.

1. 베이비룸이 없다(아기 옆에 한 명은 붙어있어야 한다).

2. 아기의 잠자리가 마땅치 않다.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없고 침대에 두자니 사방팔방으로 기어 다니는 아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누군가 한 명은 계속 지켜줘야 했다.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처음엔 침대에 있는 매트리스를 바닥에 내려서 셋이서 잘 생각이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왜 굳이 그러려고 했을까 싶다) 막상 매트리스 자체의 높이가 높은데다 바닥에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 애꿎은 매트리스만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결국 남편과 나 사이에서 자고 있는 아기가 혹시 떨어지진 않았는지 밤새 세네 번은 깨서 확인했던 것 같다.


차라리 침대 없는 온돌방 숙소를 잡아서 푹신한 요를 넓게 펴놓았다면 더 편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호야에게 이유식과 분유를 챙겨주고 똥기저귀를 가는 사이 순식간에 바비큐를 해 먹을 시간이 됐다.

남편은 삼겹살과 조개를 구워줬고, 나는 아기를 한 팔로 안고 남편이 구워주는 것들을 열심히 주워 먹었다. 바비큐를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 이 맛이지!'


한창 배를 채워가는데 아기가 칭얼거리며 졸림의 신호를 보내온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방 안에서 아기를 재웠고, 잠들어서 눕혀놓은 아기는 두세 번 정도 깨서 울었다.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혔더니 불편했나 보다. 결국 침대로 옮기고 테라스로 나온다. 그러는 사이 펜션 앞 알알이 달린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분위기는 좋다. 날은 곧 어두워졌다. 아기가 잘 누워있는지 수십 번 확인하며 조촐한 시간을 보낸 후 자리를 정리했다.


삼겹살 구워지는 중


피곤한 아기와 듬직한 나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아기를 재우는 동안 타버린 조개들 (다행히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날 퇴실은 11시까지 해야 했다. 아기가 있으니 이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걸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는 9시까지 꾸물거리다가 퇴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마치 주어진 시간 안에 미션들을 완수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 9시. 라면 끓여 먹기

- 10시. 아기에게 두 번째 끼니(이유식, 분유) 주기

- 사이사이에 기저귀 갈기, 설거지 하기, 짐 챙기기, 뒷정리하기

- 한 명은 칭얼거리는 아기 달래기


퇴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두 시간을 열심히 달렸지만 아슬아슬하게 11시를 조금 넘겼다. 남편과 나는 방을 탈출하듯이 숙소를 나섰다.


그 기세를 몰아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2시간을 내리 달려 집에 도착했다. 아기를 위해 마련된 것들이 많은(그래서 우리도 편한)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어제 씻지 못해 끈적끈적한 아기도 씻겨야 했다.


아기와 함께한 첫 여행의 소감을 말하자면, '충분히 힘들었고, 충분히 행복했다'. 바다를 실컷 보고, 좋아하는 회랑 조개를 없이 먹은 것만으로도 사실 난 더 바랄 게 없었다.


"여행 어땠었어?"

궁금한 마음에 며칠 뒤 남편에게 슬쩍 물어봤다.

남편은 단박에 "힘들었어" 한다.

"힘들기만 했어? 좋진 않았어?"

남편은 이번엔 잠깐 생각해보더니 "힘들었어" 하고 같은 대답을 했다. (왠지 남편은 둘이서 여행했어도 힘들었다고 했을 것 같다. 흠흠) 아기도 거의 침대 위에만 묶여 있다시피 했으니, 딱히 뭔가 좋다는 기분은 못 느꼈을 것 같다.


분명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인데, 음, 아무래도 나만 좋았던 것 같다. 가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같이 가 준 두 남자에게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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