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 끝, 음주 시작

생후 6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아기가 잠들어 있는 밤, 나는 거실에 앉아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경건하게 앞에 놓인 맥주를 바라봤다. 13개월 반 만에 마시는 술이었다. 임신 기간 중 7개월 반, 그리고 모유 수유를 했던 6개월 동안 금주를 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동안 술맛은 기억 속에서 미화될 대로 미화되어 있었다. 다시 마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을 더듬고는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고, 마지막에는 오색찬란한 맛의 향연이 혀 위에서 뛰놀 것만 같았다.


한껏 기대를 안고 첫 모금을 꿀꺽 삼켰다.

'... 응?'

오랜만에 마신 맥주의 맛은 허무할 만큼 평범했다. 다시 벌컥벌컥 마셔봤다. 그냥 알던 맛이었다. 마치 일주일 전에도 마셨던 것 같다. 김이 새서 옆에 있는 애꿎은 안주를 우걱우걱 씹었다.

'이게 뭐야.'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알코올이 퍼져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몸은 정직했다. 너무 기대를 해서 실망스러웠던 맥주의 맛, 뒤늦게 풀리던 피로, 그렇게 모유 수유의 마침표를 찍었다.


임신과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커피는 요령껏 꽤 마셨다. 임신 기간에는 임신 20주부터 휴직을 하던 출산 2주 전까지 하루 한 잔 꼴로, 오전 오후에 반잔씩 나눠서 마셨고, 출산 후에는 아기 생후 50일부터 하루 두 잔씩, 정신 차리기용으로 모유 수유 직후에 호로록 마시곤 했다. 하지만 술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모유 수유 기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게 가장 좋긴 하지만 마시려면 마실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대신 한 잔을 마시면 알코올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3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많이 마실 수록 모유 수유를 못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소량의 술로 내가 만족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일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였다. 줄 수 없는 모유는 유축해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러려면 유축기도 필요해진다. 여러 일들이 번거롭게 느껴져서 차라리 안 마시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원래 술을 안 좋아했다면 모를까, 애주가인 나는 임신 기간에 이미 술 생각이 날 때면 짜증의 가시가 슬그머니 돋아났다.

"왜 여자만 이렇게 참아야 하는 거지!"

금단증상처럼 때때로 툴툴거렸고 남편은 같이 금주하는 마음으로 절주를 해줬다. 그때는 출산만 하면 술을 마실 수 있는 줄 알았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실 수 없다는 말에, 모유 수유를 하지 말까 잠깐 갈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유가 나오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모유가 나온다면 그 기회를 버리는 일도 썩 내키지 않았다.


모유를 주고 싶은 '엄마'와 술을 마시고 싶은 '애주가'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내가 계획한 모유 수유 기간은 6개월이었다. 6개월로 정한 이유들은 그밖에도 많았다. 복직 전에는 단유를 해야 하니까(그때는 육아휴직을 6개월만 낸 상태였다), 아기의 이가 나기 전에 단유를 하면 좋으니까, 이유식을 주기 시작할 때니까 거기에 집중해야지 등등.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술이었다. 그 이상 금주를 하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아기를 낳은 후 4일째 밤, 젖몸살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 돌처럼 굳어버린 가슴을 얹고 꼼짝없이 누워있는 내게 산후도우미 관리사님이 마사지를 해줬다. 유난한 부끄러움 때문에 목욕탕도 잘 안 가는 나였지만 젖몸살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사치였다. 마사지를 받은 다음에는 남편이 보건소에서 빌려온 유축기와 씨름을 했다. 모유는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려야 겨우 한 방울씩 떨어졌다. 2시간 넘게 유축한 끝에 초유 20ml를 먹였다. 그렇게 모유 수유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모유 양이 많지 않아서 분유랑 같이 줬는데, 나중에는 쉬는 시간이 갖고 싶어서 혼합 수유를 계속하기도 했다. 분유는 내가 아니라도 줄 수 있고, 내가 주더라도 먹는 속도도 모유보다 훨씬 빠르고 수유 자세도 비교적 자유로워서 내게는 쉬는 시간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일부러 분유를 줘서 내게 쉴 틈을 주려고 했다.


모유 수유 기간에 아기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아기가 모유를 먹어야 하기 때문도 있지만, 때맞춰 젖을 주지 않으면 젖이 붇다 못해 아파왔기 때문이다. 아기는 모유를 먹기 위해서, 나는 모유를 주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했다. 그건 보이지 않는 단단한 구속이었다.


한번은 아기를 시가에 맡기고 남편이랑 바다를 보겠다고 을왕리에 갔다가 가슴이 아파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6시간 이상 아기와 떨어져 있는 동안 가슴은 터질 듯 아파왔고 두통까지 몰려왔다. 시가에 도착하자마자 뛰어 들어가 배가 고프지도 않은 아기를 붙잡고 '나 좀 살려줘' 하는 심정으로 젖을 물렸던 기억이 난다.


단유는 생각보다 쉬웠다. 한 달 정도 기간을 잡고 모유 수유 횟수를 천천히 줄였는데, 그 무렵은 수유 텀이 길어져 수유 횟수가 하루에 5번 정도였고 그중 모유 수유는 3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모유 수유 횟수를 하루 2번으로 줄인 다음 편해지면 다시 1번으로 줄였고, 1번이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가슴이 아파지면 수유를 했다.


그런데 모유 수유를 하루 한 번으로 줄인 다음부터 어쩐지 수유를 하면서 애틋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단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지난 6개월의 기억들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그리고 하루 한 번 모유 수유를 한 지 10일쯤 지났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종일 모유를 주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단유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쉬운 마음에 이틀 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모유 수유를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 아쉬워 아기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거짓말처럼 찔끔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그때까지 젖이 붇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아쉬운 기분이 좀 가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신 직후에 더 울적해졌다. 며칠 동안은 다시 모유 수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때때로 강하게 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단유를 하면 아기에게 미안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만 해왔는데, 정작 그런 미안함은 없었고 내가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 우울한 것 같아."

잠들기 전 남편에게 말했다.

"네가 단유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일축했다.


나는 최대한 행복한 육아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싶었다. 모유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모유 수유를 하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분유 수유를 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기와 나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나'를 챙기다 보면 아기를 향한 미안한 감정 또는 이번 일처럼 스스로에게 드는 서운함 같은 감정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모유 수유에서 느끼던 행복은 술을 마실 때의 행복과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는 걸 술을 마시고서 느꼈다. 하지만 '그건 마시고서야 알게 된 거고 아마 누군가 그 사실을 말해줬더라도 더 이상의 금주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모유 수유는 분명 더 큰 행복이지만 '계속 모유 수유를 했다면 과연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나는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였다. 단유로 인한 우울감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아쉬움까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모유 수유를 하는 일은 없었고, 단유를 한 지 2주 정도 지나니 울적한 기분도 많이 사라졌다. 찾아보니 단유를 하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모유 수유는 아기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행복이었다. 행복을 알려준 아기한테 고맙다. 그동안 잘 먹어준 것도. 지금은 그런 고마운 마음이, 우울했던 마음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전 07화아기를 처음으로 믿어준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