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처음으로 믿어준 기억

생후 5개월 때의 기록 (엄마의 최대 난제, 수면교육)

by 햇살바람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아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똑게 육아'를 읽게 됐다. 회음부가 아파서 침대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아직 젖이 뚫리지 않아 힘겹게 유축하며 그 책을 읽었다. 아기가 잠을 잘 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는데, 그때 수면교육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아기가 울더라도 몇 분 동안 내버려 두면, 아기는 당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잠드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는 것 외에 아기에게 필요한 일들(먹기, 씻기 등등)은 엄마가 해결해줘야 하지만 자는 일은 아기가 혼자 할 수 있다고, 혼자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기가 혼자 잠들 수 있다고?'

처음 읽는 내용에 놀라서 회음부와 유축의 고통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잠들기 전에 아기가 우는 걸 잠시 내버려 두라는 말인데, 그 잠시가 체감상 잠시가 아니었을뿐더러 아기가 우는 기다려주는 시간이 아기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확신이 생기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차라리 책을 안 본 셈 치고 무시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신생아 시기에 정상적인 시간 동안 울게끔 내버려 둔 아이들이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가 된다. 부모가 항상 울음을 '진압'한다면 아이가 단순한 장애물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앉아서 울며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울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는 아기를 달래려고 하는 행동이, 아기 입장에서 때로는 울음을 '진압' 당하는 일일 수 있다는 시각이 놀라웠다. 아기에게도 방법을 찾을 시간이 필요한 걸까?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모든 좌절을 막으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기회, 능력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수면교육을 함으로써 엄마가 편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그 책은 말하고 있었다. 아기를 울리는 것이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 단지 엄마가 편하기 위해서 수면교육을 강행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기를 울리는 것을 피해 가는 게 정말로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우는 아기를 안아주는 건 결국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아기는 자는 법을 배워야 하고, 배우고 나면 다음부터는 더 쉽게, 더 깊게 잠들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돕고 싶어서 하는 일(자려고 우는 아기를 바로 안아드는 일)이 아기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면 달래주기보다 기다려주는 게 맞는 것 아닐까?


그 책에서 하는 주장이 보편적인 것인지 궁금해서 수면교육 관련 영상들도 찾아봤다. 놀랍게도 많은 전문가들이 수면교육에 있어서 공통된 말을 하고 있었다.


- 엄마가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하려면 제대로 해라)

- 거의 모든 아기가 잠들기 전에 격렬하게 운다(잠들기 전에 아기가 우는 게 정상이다)

- 수면교육은 아기를 울리는 것이 아니라 아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 잠은 부모가 해결해주는 영역이 아니다


한마디로 '아기 혼자 잘 수 있으니 일관성을 갖고 기다려주라'는 거였다.


수면교육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사이, 그래도 확실하게 바뀐 게 하나 있었다. '아기는 혼자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전환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조그맣고 연약한 아기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아기는 혼자 잘 수 없다고, 무조건 안아줘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건 고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달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초보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아기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냥 기다려주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수면교육은 어쩌면 아기가 아니라 부모가 극복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 수면교육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후 4개월이 되면 수면교육을 해볼 생각이었고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서 알려주는 구체적이고 면밀한 수면교육은 하지 못했다. 우는 아기를 30분 동안 지켜본다던가 하는 일은 내겐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적어도 큰 틀 안에서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수면교육을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 생후 50일쯤부터 소소하게 해온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나는 자고 있던 아기가 울면 정말로 잠에서 깬 게 맞는지 10초 정도 유심히 관찰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아기를 재울 때 잠이 오는 낌새만 있으면 침대에 수시로 눕혀댔던 거였다. 아기가 혼자서 잘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행동의 변화들은, 의식하지 못할 뿐 더 있을지도 모른다.


생후 100일이 조금 지났을 때는 자다가 우는 아기를 5분 동안 기다려 준 적도 몇 번 있다. 그 당시에 유난히 아기가 낮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지주 울었다.

그날도 잠든 지 30분 만에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기 옆에 앉아서 5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는데, 우는 아기를 지켜만 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기가 어서 깊은 잠에 다시 빠져주길, 그래서 푹 잠들 수 있길 바랐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5분이 빨리 지나서 아기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1분이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그치지 않고 강도가 더 세지는 아기 울음소리에 '저러다 경기 일으키면 어떡하지' 걱정이 몰려왔고 손에는 땀이 났다. 눈물까지 날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속으로 계속 아기를 응원했다.

"호야야 힘내, 넌 할 수 있어. 사랑해."

악을 쓰며 울던 아기는 그 울음소리가 가장 세졌다 싶을 때쯤 갑자기 급격하게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5분이 되기 조금 전에 다시 잠이 들었다. 호야와 내가 해낸 것이다! 다시 잠이 든 아기를 바라보는 일은 성취였고 희열이었다. 아기는 깊은 잠을 잤고 그 시간은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달콤한 보상이었다.


그렇게 5분 기다리기를 대여섯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는 시간이 짧아졌고, 얕은 잠에서 깨는 일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


아기가 졸리면 "엄마, 나 이제 잘게요." 하고 등을 대고 누워서 잠들어 주는 건 아니지만, 생후 4개월쯤부터 밤에 10시간 이상 통잠을 잔다. 밤수는 5개월때 사라졌다. 나는 이만큼 아기가 잘 자주는 이유가 '아기 혼자 잘 수 있다'는 인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수면교육 이야기지만, '아기의 잠'은 내게 아기를 믿어준 소중한 기억이 됐다. '잠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아기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경험이다. 어쩌면 '우리는 잘할 수 있다'라고 믿는 꼭 그만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 06화태교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