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임신 기간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아기를 임신하면서 정말 다양한 태교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음악 태교, 태담 태교(스세딕 태교), 미술 태교, DIY 태교(바느질 태교), 음식 태교, 여행 태교, 명상 태교(숲 태교, 뇌호흡 태교), 학습 태교, 영화 태교, 태교 일기 쓰기 등등. 태교마다 적절한 시기도 있다. 임신 초기에는 안정과 영양이 중요하고, 임신 중기부터 태교를 하면 좋은데, 음악태교는 태아의 청각이 발달하는 임신 5개월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은 임신 7개월 때부터 하면 좋다는 식이다.


산부인과에 가면 임산부 요가나 아기용품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 일정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고, 보건소에서도 다양한 태교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하나하나 다 가보고 싶었지만 대부분 일을 하는 평일에 진행되는 것들이어서 아쉽게도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가봤던 유일한 태교 프로그램이라고는 출산 하루 전날에 보건소에서 진행한 연말 태교 특강을 간 게 전부였다(출산 전날 태교 특강이라니.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태교 프로그램을 못 듣는 것이 태교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때밖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인데 놓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은 능청스럽게 "일하는 게 태교"라고 했다. 처음엔 그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생각했는데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일을 하면 몸과 머리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적당한 긴장감 속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을 하느라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이 없다. 아마 집에만 있었다면 출산에 대한 온갖 걱정에 끙끙 앓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출산 1주일 전까지 일을 했고 지금은 그것이 훌륭한 태교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운이 좋게도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곳이었고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만삭 때는 숨이 가빠지고 허리도 아파서 힘들긴 했다. 점심시간에는 10분이라도 차에 가서 누워 있어야 좀 살 것 같았고, 오후 4시부터는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큰 탈 없이 출산 직전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복이었던 것 같다.


퇴근길에는 태교를 한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들었다.



물론 일하는 것 말고도 소소한 태교들도 했다. 남편과 저녁마다 루미큐브를 했고, 색칠 태교를 하기도 했다. 종종 집에서 출산에 도움이 된다는 요가도 했다.


루미큐브 같은 보드게임이 태교라는 것도 남편의 주장이었다. 이쯤 되니 남편이 그냥 루미큐브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지만, 게임을 하면서 꽤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루미큐브는 우리 부부에겐 훌륭한 태교였던 것. 불룩한 배를 만지며 태담 태교를 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일은 아쉽게도 우리 부부에겐 없었지만 뭐 어떤가 싶다.


남편과 자주 했던 루미큐브


색칠 태교. 남편이 나를 생각하며 색칠해준 것.



그냥 내가 태교라고 생각하면 그게 태교인 것 같다. 잠을 자면서도 뱃속 아기를 생각하며 숙면을 취한다면 잠 태교가 되는 거 아닐까?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게임 태교가 될 것이고, 방을 싹 치웠던 것도 청소 태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태교를 거창한 과제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봉사활동으로 했던 펠트인형만들기(한코리아). 태교를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좋은 태교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태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나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신경 끊기 태교'쯤 되려나?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가는 낌새를 보이면 딱 끊어버리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생긴 뒤로는, 그런 상황이나 사람이 자질구레한 것들로 밀려났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신경을 쓸수록 오히려 내가 그런 상황에 에너지를 주는 꼴이었다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상황이나 사람이 더 좋아지진 않았지만 나빠지지도 않았다. 대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진작에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하지만 잠깐 덧붙이자면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이 남편이었던 날은 이야기가 달랐다. 임신 중 남편과 다툰 날이 며칠 있었는데, 남편은 내가 생각하기 싫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임신과 육아는 남편과의 좋은 팀워크가 필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튼 일하기나 보드게임, 신경 끊기 같은 일들은 나에게는 제법 유용한 태교 방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태교는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몸과 마음을 스스로 건강하게 돌보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아기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기 위해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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