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

생후 14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다른 사람 앞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을, 아기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할 때가 있다. 부끄럼 없이 옷을 훌렁훌렁 갈아입는다던가,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상한 춤을 춘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그래쪄요 저래쪄요 하면서 호야보다 더 혀 짧은 소리를 뽐내기도 한다.


그런 행동 가운데 하나가 코 파기였다(ㅎㅎ). 보통은 혼자 있을 때 슬쩍 코를 파지만, 호야와 둘이 있을 때는 개의치 않고 보란 듯이 신나게 코를 팠다. 코딱지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아 시원해~" 하며 흡족한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호야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마구 행동해온 거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호야가 졸리면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코파는 걸 따라 하는 거라고는 상상 못 했다. 얼마 전 호야가 두 번째 손가락을 콧구멍에 슬그머니 넣을 때도 "졸려?"하고 물어보기만 했다. 옆에서 남편이 "누가 그렇게 코를 팠어~?" 하기 전까지는.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못된 짓을 들킨 사람처럼 머리털이 쭈뼛 섰다. 호야 앞에서 시원하게 코를 팠던 무수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호야는 '윙크'나 '빠이빠이'처럼 시키는 모방 행동만 따라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바람직한 행동이든 그렇지 못한 행동이든 부모의 모든 행동을 그대로 복사하게 된다"든가, "부모의 행동 자체가 교육"이라는, 전에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그제야 피부로 와 닿았다. 다행히 아직 말을 하기 전이라 다행이지, 조 귀여운 입에서 무서운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덜컥 겁이 났다. 그때부터 호야 앞에서 행동과 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도 호야 앞에서 안 좋은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코 파는 것 외에도 최근에 바람직한 모방 행동을 보인 적도 있었다. 가제손수건으로 바닥 닦는 시늉을 한다던가, 돌돌이로 먼지 닦는 시늉을 했다. 그럴 때면 '요 녀석 봐라? 잘 키우면 쏠쏠하게 도움이 되겠는 걸?' 하며 앞으로 분담할 집안일을 기분 좋게 상상해보기도 했다.


조심한다고 해도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얼마 전 나도 모르게 또 호야 앞에서 시원하게 코를 파고 말았다. 아차 하며 옆에 서 있는 아기를 돌아보는 순간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호야와 눈이 딱 마주쳤다. 호야의 눈이 초롱초롱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하..." 머쓱하게 웃으며 몸을 쓱 돌렸다.


'아기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


코를 파는 하찮은 일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호야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쯤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미리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바닥 닦는 시늉하는 호야







2월 5일부터 30일 동안 매일 글을 발행합니다. (28/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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