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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ug 13. 2021

헌혈에 실패한 사소한 이유


9시쯤 호야를 등원시킨 후 헌혈 예약시간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근처 이디야에 들어갔다(어린이집이랑 헌혈의 집이 가까운 곳에 있다). 카페에는 나밖에 없었다. 대체 이 코로나는 언제나 돼야 끝나려는지... 쓸모를 잃은 십여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사실 어제도 같은 시간에 카페에 있다가 헌혈의 집에 갔었다. 헌혈 전에 혈압을 재고, 혈색 수치를 재려고 하는데 간호사가 물었다.


"어제 잠은 잘 잤죠? 아침은 먹었어요?"


순간 아차 싶었다. 전날 밤 호야를 재우다 9시 반쯤 잠들었다가 새벽 2시에 깬 이후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잠을 많이 못 잤기 때문이다.


"5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요."


피로감이 심하지 않아서 당연히 헌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줄 알았다. 새벽에 달리기도 하고 온 건강한 몸인데, 설마 잠 좀 못 잤다고 수치가 낮게 나오진 않겠지.... 하지만 간호사는 손가락 끝을 찔러 피검사를 해보더니 헌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전혈(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것)은 혈색소 수치가 12.5g/dL 이상이 나와야 하고, 혈장(혈장만을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을 하려 해도 12.0g/dL은 나와야 하는데 내 경우는 11.8g/dL이라는 것이다.


"헌혈하러 올 땐 잘 자고, 잘 먹고 오는 게 중요해요."


몰랐다. 잠을 못 자도 헌혈을 못 수도 있다는 걸... 아쉽지만 하루 뒤인 오늘 같은 시간으로 다시 예약을 하고(지금 생각해보면 3일 뒤쯤으로 예약할 걸 그랬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젯밤에는 아주 푹 잤다. 저녁 9시 반부터 아침 7시까지. 호야도 중간에 깨지 않았고 나는 새벽 2시쯤 깼지만 다시 잤다. 아침도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두부볶음을 배불리 먹었다. 하지만 오늘도 혈색소 수치는 그렇게 높지 않은 12.4g/dL가 나왔다. 아무래도 예약 날짜를 너무 빨리 잡은 것 같다. 전혈은 못하고 혈장만 가능했다. 혈장은 뽑은 피가 다시 몸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지만, 전혈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오늘도 그냥 돌아갈 순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혈장을 했다(대신 혈장은 몸의 회복이 빨라서, 다음 헌혈까지 2달이 걸리는 전혈과 달리 2주 후면 헌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혈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혈장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간호사가 줬던 '저혈색소 안내문'을 읽어봤다. 혈색소가 부족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철분이 부족해서 생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한다. 뒷면에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식품이 적혀 있었다.




철분이 많이 함유된 식품뿐 아니라, 철분의 흡수를 높이는 것과 방해하는 것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쓰여 있었다. 비타민 C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은 철분의 흡수를 높이고, 커피, 녹차, 청량음료는 철분의 흡수를 방해한다고 한다. 그 밑에 쓰여있는 글에서 눈이 딱 멈췄다


흡연, 음주 역시 철분과 영양소를 배설시키므로 피해 주세요.


아닛. 술이 철분을 배설시킨다고? 내가 이십 대 때 헌혈을 못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비어있던 퍼즐 조각 하나가 절묘하게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헌혈 초보는 이렇게 또 조금 배웠다. 헌혈하러 가기 전에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술도 피할 것. 매번 느끼지만 헌혈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음에는 한 번에 전혈을 성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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