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9. 바람 사이에서 별처럼 지나치는 사람들
순례 7일 차 (8월 17일)
벤토사 → 그라논 (37.9km)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훌륭한 그늘막이 되어줬다. 걷기 좋은 날을 놓칠 수 없어 쉬는 시간을 포함해 12시간을 걸었다.
구름으로 뒤덮인 까미노. 시원해서 걷기 좋다.
그라논에 도나티보(기부제) 알베르게가 있어 그곳에 체크인을 했는데, 알베르게가 마치 집시의 소굴 같았다. 나름의 멋이 있긴 했지만 너무 낡은 건물이라 언제 어디서 어떤 벌레가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알베르게에서 조리해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 순례자들이 전부 식탁에 모였다. 각자 이름과 국적, 직업, 걸어온 순례길 여정 등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대부분 듣는 척만 했다.
잠을 자려고 침낭 속에 누워있는데, 머리맡을 기어가던 작은 벌레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비명을 삼키며 벌떡 일어나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튕겨 벌레를 쫓았다. 혹시 베드버그인가 싶어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찝찝했지만 다른 알베르게로 옮겨가기엔 늦은 시간이라, 베드버그여도 조금만 물리기를 바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라논의 파로이시알(paroissial) 알베르게.
순례 8일 차 (8월 18일)
그라논 →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28.4km)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 보니 다리에 몇 군데 벌레 물린 흔적이 있었다. 물린 자국이 모여 있는 걸 보면 베드버그 같긴 한데, 별로 가렵지 않은 걸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벌레에 물렸다는 사실도 금방 잊어버렸다.
순례길의 해바라기 밭.
길에는 해바라기 밭이 장관을 이뤘다. 길가에 있는 바(bar) 야외 테이블에서 빵과 커피로 점심을 먹으려는데, 누군가 반가운 얼굴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제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났던 페데리코였다. 그는 키가 크고 머리가 하얀 이탈리아인으로, 피곤해 보였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명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같이 순례길을 걸었다. 페데리코 배낭이 크고 무거워 보여서 스틱을 한번 써보라고 내 스틱을 빌려줬다. 그는 스틱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곧 한결 편하다며 연신 웃었다. 나도 다행히 걷는 데 어느 정도 단련이 된 터라 그날은 스틱 없이도 걸을 만했다. 누군가에게 도움만 받던 까미노에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오후 3시에 도착한 비야프랑카에서는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을 기른, 괴짜 같은 청년 K를 만났다. 짧은 영어로(물론 나보다는 능통했지만) 자신의 일행인 러시아 여성에게 열심히 말을 거는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 눈길이 갔다.
순례 9일 차 (8월 19일)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 부르고스 (40km)
작년에 들렀던 곳들 중 기억에 남는 곳은, 저절로 발길이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아헤스의 매운 스파게티도 다시 먹어보고 싶던 음식 중 하나였는데 시에스타 때문인지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 그냥 지나쳐야 했다.
대도시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길은 아스팔트 등으로 포장된 딱딱한 길이 많아서 발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순례길 화살표도 별로 없는 다소 불친절한 길이다. 위에서는 땡볕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밑에서는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더위에 헉헉대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타나 인사를 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K였다.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지친 발을 쉬는 중.
<내 마음에 박힌 별, 산티아고>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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