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로 이동하는 시간
인생의 즐거움 찾기 8
초등학생 때까지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버지가 워낙 국내 방방곡곡으로(특히 인적 드문 외진 자연 속으로) 다니는 걸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새벽부터 삼남매를 차 뒷좌석에 태우고 어딘가로 몇 시간을 달리곤 하셨다. 잠이 덜 깬 채로 차에 탄 우린 금방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잠을 푹 자고 일어나도 차는 여전히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고 길었다. 우리는 창밖 풍경을 보며 구운 오징어를 먹기도 하고, 깜빡 또 잠이 들기도 하고, 아버지가 내는 퀴즈를 풀기도 하고, 까치집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차는 막히고, 몸은 찌뿌둥하고, 가끔 멀미를 했다. 그때는 지루하게만 느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참 애틋하다. 복작복작 다섯 명이, 차에 짐을 가득 싣고, 낯선 곳을 향해 한참을 달리던 시간이.
오늘 남편과 호야와 강원도 횡성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낮 12시, 차에 타자마자 호야는 까무룩 잠이 들었고, 남편과 나는 번갈아 운전을 하며 3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풍경은 한결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를 갑갑하게 둘러쌌던 건물이 걷히고, 첩첩 쌓인 울긋불긋 산들이 멀찍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야는 차에서 한참을 잤고, 자다가 깬 이후에는 도착할 때까지 뚱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언젠간 도착하겠지, 하는 체념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도 저랬겠지. 그때 내 부모님도 지금의 나처럼, 우리와 놀러 간다는 생각에 신나게 달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좋아졌다. 여행지로 이동하는 길고 긴 시간이. 그 시간이 품고 있는 설렘이. 반짝이는 풍경과 맑은 공기가.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충분히 충만한 시간이라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