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백업을 하려는데 양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 난다. 일단 다이어리부터 차근차근 저장해야겠다, 그렇게 하나씩 읽어보는 사이 옛날의 내가 생경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정말이지, 20대 때 나는 사랑 때문에 너무 아팠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이 있기도 했지만 제일 아팠던 이유는 20대 초반에 만났던 한 사람 때문이었다.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했던 사랑을, 20대 내내 잊지 못했다.
사랑을 했다곤 하지만 사귀지도 않은 사이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썸 타는 관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3주 정도 지냈다. 나는 너무 두근거려서 문자를 할 때도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저릿해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한 번 약속 시간에 늦었고, 그 뒤로 우린 끝이 났다. 그 사람은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마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이 잘못의 전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너무나 달라진 그 사람의 태도에 나는 당황했고, 아파했고, 오래 자책했다.
그 시절은 싸이월드를 붙잡고 살 때였다. 컴퓨터를 켜면 거의 싸이월드만 했다. 그 사람 미니홈피를 밥 먹듯 훔쳐봤고, 미니룸을 꾸미고 음악을 사는 일에 꽤 많은 도토리를 썼다. 그리고 밤이면 싸이월드에 들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밤을 새우면서 하는 일은 딱히 없었다. 그냥 다이어리 창을 열어놓고 한참을 있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어떻게든 써야 할 것 같았지만 떠나간 사람에게 질척대는 것 같아서 뭔가를 쓰기가 어려웠다. 밤새 끙끙대다가 알 수 없는 말들을 남겨 놓기도 하고, 아무것도 쓰지 못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말들을 쓰면서도, 그 사람이 알아봐 주길, 그래서 돌아와 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싸이월드 감성이라 민망하지만, 다이어리에 있던 몇몇 글은 대충 이런 내용들이었다.
2008.11.15
기대 안 하는 게 익숙하고 그러다 보니
뭐 됐어 상관없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말이 짧아지는 만큼 마음도 짧아지고
애써 외면하면 외면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 있는 진심들을 간절함도 없이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때도 어쩔 수 없었던 걸 지금 와서 뭘
어쩌고 싶다는 게 이상한 거지 뭐 그래서
며칠 전에 냉정과 열정사이를 다시 봤을 때
그렇게 마음이 아팠나 보다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밤이 싫다
2011.04.22
절대적인 설렘이 있었던
그때도 알고 있었어 우리가
그렇게 빨리 끝나버릴 줄은
몰랐지만
내 일부는 아직도
시간이 멈춰져 있는 걸 느낄 때
나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온전한 나일 수 없을 것 같아
2011.07.16
우린 기억에 남기에 충분했지만
나 외에 과연 누가 우리를 기억해 줄까?
그래서 적어도 나는 오늘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기억들을 곱씹었다
2015.09.30
그때의 공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던 특별한 느낌들이 내 팔을 툭툭 건드린다.
'안녕? 기억나니?'
그때의 내가 낯설게 내 앞에 서 있네.
울지 못해 가을바람이나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던 모습으로...
주머니에는 차비밖에 없었고, 버스는 지독하게 오지 않았고, 밤은 길고도 짙었다.
'그립다'는 말이 새롭게 사무친다. '보고 싶다'는 말도.
그때는 '진심'이라는 게 왜 그렇게 전해지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았을까?
'알고 있니.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순간순간이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물론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느낌은 평생에 한 번 뿐일 거라던 그때의 예감은 아직까지 틀리지 않았다.
그 사람을 몇 년에 한 번씩 만나기는 했었다. 오랜 친구처럼. 사귀었던 사이도 아니니, 오랜 친구가 맞긴 맞다. 딱히 어색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사람을 만나기 직전이면, 이상하게 항상 손이 저려왔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지 몇 년이 지났다.
싸이월드백업을 하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그때는 몰랐다. 한번 닫힌 마음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걸. 지나가는 인연은 지나가게 둬야 한다는 걸.그걸 몰라서, 닫힌 문 앞에서 참 오래도 서성거렸다. 그런데 초라하기 짝이 없던 그때가 눈부신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어째서일까. 어쩌면, 눈물처럼 반짝이던 순수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