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의무가 되었다

생후 5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2019년 겨울, 6시간 진통 후에 출산 가방을 싸서 산부인과에 도착한 날, 엄마가 되었다. 물론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가 되긴 했지만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을 한 건 출산 후부터였다.


내 몸에서 나온 아기 사람을 마주한 다음부터 다른 차원이 삶이 펼쳐졌다. 전에는 내 앞가림만 하고 살면 됐었는데, 이제는 아기의 앞가림을 해주느라 내 앞가림 따위는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막 태어난 아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는 일밖에 없어서 모든 일을 다 '해 드려야' 했다. 아기와 둘이서 서로의 생존을 위해(먹고 자고 싸는 일) 매달렸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동안 100일이 지나갔고,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제정신도 함께 돌아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달라진 것들이 그때부터 하나둘씩 보였다.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고 자주 묻기 시작한 게 그중 하나였다.

원래 그렇게 묻는 습관이 있긴 했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그 횟수가 더 잦아졌다. 출산 후 읽은 육아서들 때문이다. 아기는 낳았는데 육아는 깜깜이라 답답한 마음에 육아서 몇 권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다음의 말이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부모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자녀가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래서 전보다 부쩍 자주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고.

'응 지금 행복해.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어' 하며 한 번씩 짚고 넘어가는 버릇이 생겼다.

살면서 지금처럼 나의 행복을 신경 쓴 적이 있었나 싶다. 나의 행복을 확인하고, 아기도 행복하기를 바라며 웃어줄 때면 아기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더 활짝 웃는 듯했다.


현재의 행복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행복해지기 위한 소소한 일들을 챙겨서 했다.

예를 들면, 아기가 잠든 시간에는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했다. 아기가 첫 낮잠에 들어가면 바로 커피를 타서 탁자 앞에 앉아 책을 읽는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물론 힘들어서 뻗어있느라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날도 있지만.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빨래나 청소 같은 집안일은 최대한 아기가 깨어 있을 때 했다. 어느 날은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은 날도 있다. 친구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1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모차를 끌고 아기와 산책을 갈 때는 달달한 커피를 사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챙겨 듣는다. 저녁에 아기를 재운 후에는 글을 쓰고 책도 읽는다.


무엇보다 주말에 3시간은 꼭 자유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남편이 아기를 봐주는 동안 잠깐의 일탈을 즐겼다.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보통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을 통해 1주일을 버티는 힘을 얻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충전된 상태에서 보는 아기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동시에 행복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멀리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SNS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TV 보는 시간도 줄었다. 나에게 상처가 될 것 같은 말이나 행동은 내 마음에서 전투적으로 물리쳤다. 쓸데없는 생각도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멀리하는 것들에 있어서 아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기를 달래느라 너무 힘들 때면, 그래서 내가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면, 아주 잠시라도 아기와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아기가 울고 있어도 "아기야 잠깐만, 10초만." 말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일들은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한 채로 아기를 계속 달래는 것보다 나았다. 사소해 보이는 '나를 돌보는 잠깐의 행위'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큰 차이를 느꼈다. 육아를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준 나만의 팁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내가 챙기는 행복은 10%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무방비하고 순수하게 온 존재를 다해 웃는 아기를 보면 순간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눈 앞이 밝아지고, 내가 챙기는 행복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면서 행복이 의무가 되었다. 어떤 게 더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인지 예민하게 걸러낼 수 있게 됐다. 불과 1년 전에 우울증 때문에 허덕이던 때에 비하면 참 다른 모습이다. 아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돼야 했고, 그제야 처음으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일들을 찾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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