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어지는 팔뚝, 자존감은 덤
생후 5개월 때의 기록
해 질 무렵, 잠든 아기 옆에 쓰러지듯 누워있다가 배가 고파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기를 재우느라 한바탕 씨름을 했더니 어깻죽지랑 팔이 얼얼하다. 남편은 야근이라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해서 라면 물을 대충 올렸다. 헝클어진 머리는 다시 묶을 힘이 없어 미친 사람 꼴을 하고 있고, 아기 울음소리가 뒤흔들어놓은 머릿속은 아직도 멍해서 작동을 멈췄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육아가 힘들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게 뭐가 힘들다는 거지? 아기는 작고 귀엽잖아. 편할 것 같은데'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아기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온 생후 3일부터, 그야말로 혼이 쏙 빠졌다. 아기는 살기 위해 울어댔고 나는 아기가 왜 우는지 파악하고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느라 몸도 마음도 늘 지쳐 있었다. 출산 직후에는 회음부가 아파서 제대로 앉지도 못했기 때문에 엉덩이를 비스듬하게 바닥에 댄 채로 모유수유를 해야 했고, 그렇게 이상하게 뒤틀린 자세로 길게는 1시간을 꼼짝않고 있느라 바닥에 짚은 손목도 열일을 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일할 때에 비해서 심하진 않은 것 같다. 난생처음 해보는 육아라 공부할 것도 많고 멘붕이 올 때도 많지만, 어쨌든 까다로운 업무 지시가 내려오는 일도, 긴장할 일도 없으니까. 그 대신 때로 뭘 원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말 못 하는 아기가 있다. 배고픈 것도 아니고, 졸린 시간도 아니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상황도 아니라면 그때부터는 아기를 안고 속으로 "어쩌라고"를 연신 뱉어내야 하는 것이다. 혹시나 아기에게 험한 얼굴을 보일까 싶어 표정에 신경을 쓰고 목소리도 최대한 부드럽게 "응 그랬어~" 한다. 나에겐 그야말로 정신 승리의 순간이다. 물론 아기 울음소리에 "응 그랬어~"가 묻혀버릴 때도 많지만. 게다가 아기는 웬만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발버둥 친다. 발버둥 치다가 혹시나 떨어질까 봐 안고 있는 팔에 더 힘이 들어간다.
기저귀 한 번 가는 일도 아기가 뒤집으려고 자꾸 구르면 열댓 번은 돌려놓아야 한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아기가 정말 맞나 싶다. 유모차에 태울 때도 허리가 아프다. 목욕을 시킬 때는 또 어떤지... 요즘에는 배밀이를 시작한 아기를 수시로 들어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팔이 고생이다.
처녀 시절의 나는 아기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겉에서 보는 아기 엄마들은 아기들을 번쩍번쩍 잘만 안고 있길래 가벼운 줄로만 알았다. 아기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아기가 5kg쯤 되었을 때부터였다. 그 무렵 목과 어깨 쪽에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목을 위아래 양옆으로 1cm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목에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는 자세를 하려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아기를 봐야 하니 빨리 나아야 된다는 생각에 일주일 정도 매일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번갈아가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기는 앞으로 점점 무거워질 텐데...' 하는 걱정과 함께 '출산 전에 건강하던 몸은 이제 끝났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맨날 아프다고 골골대니 남편은 "할머니랑 결혼한 것 같다"며 놀렸다.
이제 5개월 된 아기의 몸무게는 8kg 정도다. 5kg의 아기를 키울 때의 나는, 8kg의 아기를 안아 올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물론 좀 힘들긴 하지만 지금의 나는 8kg의 아기를 거뜬히 목욕도 시키고 잠도 재운다. 그 사이에 내 몸이 단련이 된 거다.
그러면서 문득 이 세상 아줌마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굵은 팔뚝을 보면 이제는 '그녀의 육아는 얼마나 고됐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굵어지는 자신의 팔뚝을 보며 슬퍼하지 않았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모두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였는데... 하지만 모두 견딘 거다. 자신이 낳은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는 위대하다.' 정말 그렇다.
그렇다고 임신했을 때 찐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다이어트는 출산 후 몇 달째 숙제로 남아있다. 번번이 실패하고 있긴 하지만 '불어난 몸무게로 계속 살고 싶지는 않다'라고 생각한다. 단지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걸을 때,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옆을 지나가도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내 굵직해진 몸은 나에겐 훈장과 다름없다. 아직 육아 5개월 차니 그렇게 대단한 훈장은 못되지만 나한테는 큰 자랑거리다. 내가 그동안 했던 일 중에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아마 아줌마의 아름다움은 아줌마밖에는 모를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남들이 몰라준다고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 뒤에 숨겨진 양육자의 희생이 보인다.
아는 언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기를 키우면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라고.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요즘 자존감이 올라가고 있는 걸 느낀다.
'이 어려운 걸 내가 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생명을 지켜내고 있구나.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할 수 있구나.'
힘든 만큼 자존감도 올라가는 것이다. 아기를 돌보느라 단련된 팔뚝만큼 마음도 튼튼해지고 있나 보다. (물론 엄마가 된 후로 예민해지고 화가 많아진 부분도 있다.)
'내가 지켜줄게, 아기야.'
세상모르고 자는 아기를 보며 오늘도 다짐한다. 내일도 내 몸이 버텨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