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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ug 03. 2022

까미노 블루가 뭐길래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순례자가 그 길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상태를 ‘까미노 블루’라고 한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풍경을 잊지 못하고 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서 끙끙 앓는 증상이다. 순례를 마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까미노 블루를 앓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산티아고 길을 두 번 걸었고, 두 번째 순례를 마친 지 4년이 지났지만 이 증세는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달리기를 할 때나 길을 걸을 때면 ‘지금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나도 그 길 위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산티아고 가고 싶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남편이 지겨워하는 나의 레퍼토리 top4(산티아고, 캠핑카, 입양, 프리랜서) 안에 들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까미노 블루가 심한 편은 아니다. 순례길이 좋아서 공립 알베르게(숙소)에서 봉사자로 머무는 사람들도 있고, 순례길을 40번이나 찾은 사람도 봤다. 가끔씩 순례길을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순례길은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걷는 여정이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데, 간혹 반대방향으로 걷는 순례자가 있다. 종착지인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해서도 굳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들. 순례길에 매료되어, 위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서다. 누구보다 남루한 행색이지만 자기 안에 깊은 우물을 간직한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순례자의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 쓰인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무척 공감했다.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내 경우 ‘여행’이라는 단어를 ‘산티아고 길’로 바꾸면 더 완성된 문장이 된다. 몸은 현실에 묶여 있지만 마음은 이미 산티아고 길이 내 인생의 원점이 된 것 같다. 아니, 되려는 것 같다.


문제는 이 증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진다는 거다. 그 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강해진다. 아마 힘들게 들어온 직장이 아니었다면, 돌봐야 할 자녀가 없었다면 지금쯤 비행기표를 샀을지도 모른다.


내 원점이 산티아고 길이라고 느낀다는 건, 원점을 위해서 일상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과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 삶이 '언제든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갈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허황된 꿈처럼 보여도 꿈은 꾸고 싶다.


아니, 이쯤 쓰고 보니 스스로 황당하다. 대체 그 길이 뭐길래. 걷고 걷고 지겹게 또 걸어야 하는, 평범한 길일 뿐이잖아. 대체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른다. 40번이나 그 길을 걸었던 순례자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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