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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ug 20. 2022

술을 '마시지 않아서' 눈에 초점이 풀리는 중

 


2022.8.20. 금주 7일 차.




지난 휴일에는 가까운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본 지 2주가 지나니 냉장고에 먹을 게 똑 떨어졌다. 두부, 계란, 우유 등 사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금주 2일째이던 그날은 사야 할 것보다 사지 말아야 할 것에 더 정신이 팔렸다. 사지 말아야 할 그건 바로 술...! 술이었다. 장을 볼 때면 소주며 맥주며 야금야금 카트에 담아 냉장고에 조르륵 꽂아 두는 게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다.


남편이 마트로 차를 모는 동안 술 대신 살 음료가 없을지 검색해봤다. 뭐라도 좋으니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뭐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술 대체 음료’를 찾아봐도 ‘와 이거다!’ 하고 꽂히는 건 없었다. 검색해서 나오는 건 보리차 같은 차 종류나 탄산수 정도…. 그렇지, 술을 대체할 만한 게 있었다면 술이 그렇게 잘 팔릴 리가 없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술을 좋아했을 리가 없다. ‘술 대체 음료’라니 애초에 답이 없는 걸 찾은 꼴이다.


나는 초점을 잃은 멍한 눈으로 마트를 한 바퀴 돌았다. 나의 허전함을 알 리 없는 호야는 카트에 앉아 해맑게 재잘거렸다.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며 돌아다니는 동안 주류 코너 쪽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시선이 향했다. 환한 조명을 받으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술병들이 눈에 들어온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나… 무알콜 맥주라도 살까?"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불쌍한 눈을 하고 남편을 슬쩍 떠봤다.

"그럴 거면 그냥 술을 사. 너 무알콜 먹다가 다시 술 마시려고 그러지?"

"... 알았어. 안 사면 되잖아."

남편은 가끔 내 상상을 뛰어넘는 이성적인 대답을 하곤 한다. ‘오구오구 술 참느라 힘들지? 그래 이제 시작 단계니까 무알콜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도록 해.’라는 대답을 기대한 내가 바보 같다. 나는 할 수 없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 ‘마트에서 술 사지 않기’ 미션을 꾸역꾸역 성공했다. 냉장고에 술이 있던 자리에는 술 대신 다양한 음료수들이 놓였다. 콜라와 온갖 주스와 다양한 맛의 우유와 두유까지…. 남편이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의 금주는 지금보다 훨씬 가혹한 일이 되었을 테니까.


오늘도 술을 마시지 않는 데 성공한다면 어느새 금주 7일 차가 된다. 그 사이에 ‘맥주 없이 치킨 먹기’ 미션도 하나 달성했다.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집에 술이 없었고, 치밥을 먹으면서 ‘이건 치킨이 아니라 반찬’이라고 생각했다. 금주 7일 차에 드는 생각은 ‘아직까진 괜찮다’, ‘생각만큼 그렇게 힘들지 않다’이다.


금주가 생각만큼 힘들진 않지만 내 인생에 술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면 순간 멍해진다. ‘애주가’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내가 나일까? 그게 정말 나일 수 있을까? 술 없는 일상이 낯설어서 자꾸 멍해지고 눈에 초점이 사라진다. 그게 티가 나는지 어제저녁에는 호야와 시가에 갔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뭐야? 너 술 마셨어?”

“아니, 안 마셨는데.”

나는 거실에 누워있다가 막 일어나 엉거주춤 선 채로 대답했다. 남편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다시 물었다.

“근데 사람이 왜 이렇게 눈에 초점이 없어?”

“그래? 내가 지금 그렇긴 하지…. 술 마신 줄 알았어?”

“어. 맨 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무기력해 보이고.”

무기력하고 맨 정신이 아닌 모습. 나는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는 금주 7일 차의 내 모습은 대략 이렇다.


‘술을 끊는 건 생각만큼 그렇게 힘들지 않다.’

오늘도 열심히 자기 최면을 건다. 사실 금주는 뭔가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뭔가를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뭔가 논리적 오류에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술을 끊으면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하다는데, 그런 기분은 언제쯤 느낄 수 있는 걸까? 아직은 여전히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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