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다독여 주기로 했다

생후 8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호야는 얼마 전 생후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아기가 성장한 만큼 육아의 강도도 얼마간 더 세졌다. 아기가 통잠을 자고 수유텀이 길어진 대신 활동 범위가 더 넓어졌다. 여기저기 기어가려 하고, 관심 가는 것마다 손을 뻗으려 하고, 입에 넣으려 하고, 잡고 서려고 한다. 푹신한 아기침대나 아기매트 위에 아기를 올려놓긴 하지만,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맨바닥까지 기어가서 머리를 꿍 박고 으엥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다. 베이비룸이나 쏘서에 있을 때 외에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위험한 곳으로 가는 아기를 온몸으로 막거나 잽싸게 안아 올려야 하고, 잡고 서려고 하면 뒤에서 인간 쿠션도 돼줘야 한다. 아령 드는 것도 귀찮아하던 팔이 요즘 부쩍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유다.


육아에 허덕이던 나는, 얼마 전에는 냉장고에 있던 소주를 꺼내 마셨다.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에 마신 건 처음이다.

아기는 세 번째 끼니를 먹고 거실에 있는 베이비룸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전날 미리 배달시켜 놓았던 쌀국수를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였다. 가스불 위에 육수를 올리고 끓기를 기다리는데 오른쪽 어깨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아무래도 이 만성적인 통증은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어깨뿐이랴. 손목도 허리도 자기들도 아프다며 아우성이다. 아기가 잠들기까지 아직 많은 체력이 필요한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때 전에 마시다 남은 소주가 생각났다. 한 잔만 마시면 아픔이 좀 가실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다 냉장고 구석에 있는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낮술이야 예전에 종종 즐기곤 했으니 낯설지 않았지만 몸이 힘들어서 마시는 술은 낯설었다. 다행히 잔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내친김에 한 잔을 더 마시고, 남은 쌀국수 국물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때로는 육아에 쉽게 지치는 자신이 엄마로서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주위 사람들이 수월하게 육아하는 것처럼 보일 때면 나는 더 작아진다. 하지만 SNS에서 보이는 행복한 모습이 삶의 전부가 아니듯이, 각자 무게는 달라도 육아가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해본다. 나조차도, 지금처럼 힘들어서 낮술을 마시는 모습이라던가 아기를 신경 쓰느라 뒤늦게 불어 터진 라면을 먹는 모양 빠지는 모습을 굳이 SNS에 올리진 않으니까.


육아의 힘듦을 "당연히 엄마가 해야 할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갑갑했던 적도 있다. 그때는 다들 하는 일인데 나만 힘들다고 유난 떠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주양육자로 살아본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육아를 쉽게 말한다. 그 말에 휘둘려 나까지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힘듦을 굳이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건 불가능해 보이니까. 나 역시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알지 못했고, 보조 양육자인 남편도 육아에 많이 신경을 쓰긴 하지만 100% 공감하지는 못하는 눈치다.


육아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아마도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많은 체력이 요구되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육아에 걸리는 시간을 보면, 아기가 깨는 아침 6시부터 아기가 잠드는 저녁 7시까지 13시간 노동을 하는 셈이다. 저녁 7시보다 늦게 잠드는 날은 많은 인내력이 필요하다.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1~3시간을 뺀다고 해도 10~12시간 노동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아기가 잠든 후에 이유식을 만드는 날이면 개인 시간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몸을 쓰지 않는 일이라면 그나마 괜찮을지 모른다. 8개월 된 호야는 이제 10kg 가까이 나간다. 10kg짜리 쌀자루만큼의 무게를 시도 때도 없이 번쩍번쩍 안아야 한다. 심지어 한 팔로도 안는다. 엄마니까 하지, 아니었으면 못했을 것이다. 가끔 스스로도 '와, 나 참 대단하다' 하며 감탄한다. 아기가 버둥거리는데도 꿋꿋이 버티는 내 팔이 경이롭다. 스스로의 한계를 넘을 때마다 이게 모성애인가 싶다.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데서 따라오는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아기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 아기에게 알맞은 발달 자극을 줘야 한다는 초조함이 한 번씩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아기를 다시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뭔가 빼먹은 것은 없는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지만 확인받을 길이 없다.


아기와 있으면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다. 밥도 대충 먹는다. 아침과 점심은 대부분 고추장에 비빈 밥이나 라면, 아니면 냉동식품이다. 당연히 힘이 날 리가 없다. 그래서 더욱 남편이 퇴근 후 맛있는 걸 사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먹어야 버티겠다 싶은 날은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도 한다. 가끔이라도 나를 위해 맛있는 걸 먹으면 그나마 기운이 난다.


예전에는 유모차를 끄는 여자들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나 옷차림을 보면 왜 자신을 가꾸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막상 출산을 하고 나니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화장은 무슨 화장? 유모차 산책을 할 때는 로션에 선크림이 전부다. 지금은 예전의 무지함이 부끄럽다. 엄마는 아기를 보살피느라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지 못했다. 유모차를 끄는 다소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 뒤에는 사실 그와 상반된 고단함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엄마들이 육아를 묵묵히 해내고 있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당연히 힘든 일이고 누구라도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육아에 쉽게 지치는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자격은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식을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노력 속에서, 부서질 듯 아픈 몸이지만 우는 아기를 어떻게든 달래 보려는 노력 속에서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그걸로 엄마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만은, 육아 때문에 지친 나를 인정하고 다독여주기로 했다. "오늘도 힘들었지. 고생했다."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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