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둘째를 임신한 게 아닌데요?
생후 8개월 때의 기록
호야와 유모차 산책을 다녀온 어느 날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엘리베이터 문을 누군가 잡아주고 있었다.
'이런 친절한 이웃이 있었다니!'
나는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며 열림 버튼을 눌러주고 있는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준 사람은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분이었고, 5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여성은 유모차 안을 살짝 들여다보더니 몇 개월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잠깐의 대화를 나눴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그 여성 분은 내리기 직전에 내 배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어머, 둘째 임신하셨나 봐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머릿속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쳤다. 하지만 마치 길을 걷다 넘어지면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밀려오는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게 되듯이, 나는 짐짓 호탕하게 내 배를 퉁퉁 두드리며 말했다.
"아하하. 제 배에요~"
"어머! 죄송해요."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 여성 분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듯이 내렸다.
"하하하, 아니에요. 제가 배를 너무 내밀고 다녔죠... 하하하."
그 여성 분은 너무나 미안한 표정을 잔상으로 남기고 엘리베이터에서 사라졌고, 나는 남은 층수를 올라가는 동안 거울에 비친 옆모습을 유심히 쳐다봤다. 임신 때부터 뱃살에 신경 쓰지 않고 배를 당당히 내밀고 다니긴 했지만 배를 내밀고 있으나 배에 힘을 주고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동안 '둘째를 가진 거 아니냐'며 남편이 아무리 놀려도 한 귀로 흘려 들었었는데, 다른 사람(그것도 초면인 사람)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내 뱃살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내게 다가왔다. 그 여성은 내가 둘째를 가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출산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임부복을 입고 있었다. 출산 이후로 살이 찐 몸에 맞는 큰 옷을 새로 사지 않았고(마지막 남은 자존심 같은 거였다), 임신 전에 입었던 옷들은 작아서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임부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모유수유가 끝나면 다이어트를 할 계획이었지만 단유를 한 지도 벌써 2달이 넘었다.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때까지 살면서 이렇다 할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웃의 말은 남편의 놀림과 달리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나를 특별히 괴롭힌 건 아니었지만 은근한 사실로서 내게 남아있었다. 그 이후로 2주가 흐르는 동안 아메리카노 외의 커피는 마시지 않게 됐고 간식도 자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노력으로는 작은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한 운동을 추가해보기로 했다.
일단 한 달간 케틀벨 스윙 운동을 하기로 했다. 어제 택배로 받은 케틀벨로 오늘부터 100개(50개씩 2번)를 하기 시작했다. 4kg짜리인데도 제법 무겁다. 목표는 살을 빼는 것이지만 한 달간은 꾸준히 운동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몇 kg을 빼야지' 하는 목표가 지금은 없다. 한 달 뒤에 살이 빠지지 않더라도 매일 운동을 했다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운동이라고 하지만 100개 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뭔가 다른 노력도 해야 할 것 같아 저녁도 굶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육퇴 후 맥주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저녁 대신 맥주 한 캔을 마시기로 했다.
이렇게 '별로 독하지 않은 다이어트'가 시작됐다. 한 달 뒤에는 그 이웃에게 감사하게 되려나, 아니면 또 자괴감에 빠지게 되려나.
만삭 때보다 7kg가 빠진 뒤로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 몸무게. 앞으로 적어도 10kg는 더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