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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Sep 03. 2020

'월간 산티아고'에 기고하기

까미노 블루 - 산티아고가 그리울 때 2


2017년 봄, 그리고 2018년 여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많은 순례자가 그렇듯이,  또한 그때의 기억이 특별하게 남아 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쌓이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났고, 묻어두었던 과거의 나를 만나 화해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벅찬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팔을 스치는 외로움 속을 걷기도 했다. 매일이 자유로웠지만 나를 증명해주는 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게 와 닿기도 했다.


'월간 산티아고'라는 산티아고 전문 잡지가 있다는 걸 올해 초에 알게 됐다. 작년 8월에 창간한, 20페이지 정도 되는 작은 잡지였다(잡지 관련 링크). 분량은 많지 않지만 순례길 정보와 순례자들의 에세이를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 일부러 창간호부터 챙겨서 구독하고 있다. 산티아고를 추억할 수 있어서 좋고, 다음 순례길(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을 준비하는 데도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줄 듯싶다.


월간 산티아고를 읽는 것만으로, 산티아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순례자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아, 나도 그랬는데' 하고 지난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고 다른 이가 얻은 깨달음에 공감하기도 했다.



월간 산티아고



잡지를 쭉 읽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기고하고 싶은 여행기가 있으면 보내달라'라고 적혀 있었다.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행기를 써보기로 했다.


전에 메모해놨던 글을 찾아 수정 작업을 했다. A4 용지 한 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글을 쓰는 데 며칠이 걸렸다. 아기가 4개월일 때라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바쁜 일정을 비집고 잠깐씩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즐거움을 느꼈다. 산티아고를 떠올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설렜다. 4월 말에 메일로 보낸 원고는 8월호에 실렸다.



내가 기고한 글



이때의 기고는 브런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글을 계속 쓰고 싶었고,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을 찾던 중 브런치를 알게 되어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는 산티아고가 내게 알려준 길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브런치 외에도 산티아고가 내게 알려준 길은 많다. 키보드를 사서 연습해보기도 하고, 기타 연습을 다시 해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그냥 하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 그게 중요하다는 걸,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 직접 해 먹는 음식의 따뜻함을 알게 되어 간단한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적은 물건만 갖고 지낼 때의 충만함을 알게 된 후로 물건에 대한 욕심이 더 사라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죽음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던 길이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을 때, 그것이 죽음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길을 다 걷고 나니 기대만큼 큰 감동도, 대단한 성취감도 없었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종착지에 도착해 있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산티아고는 삶의 축소판 같았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이야기가 딴 데로 샌 것 같지만, 아무튼 산티아고는 이렇듯 내 삶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월간 산티아고에 기고를 한 것도, 덕분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된 것도, 산티아고가 내게 안겨준 행운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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