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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뇽안뇽안늉 Apr 02. 2024

ESTP인데 불확실한건 싫어한다고요?

반가운 변화일까요?

 지금 다시 해보면 많이 바뀌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 소개하는 나의 MBTI는 ESTP이다. 인터넷에서 하는 간이 검사가 아닌 고등학교 철학 시간에 했던 정식 검사 결과라 훨씬 더 신뢰할만하다. S와 T의 성향은 현재도 유효해서, 영화도 실화 기반 소재를 선호하는 편이며 판타지나 공상 과학 등 발 붙이고 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는 다소 거리감을 느낀다(아, 물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는 예외다!). 또한, 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화 상황에서 공감보다는 조언 또는 해결책을 제안해 주는 것이 좋다.

 예컨대, 내가 회사에서 어찌어찌해서 힘들었다며 상대에게 하소연을 할 때, 어떤 사람은 내 상황에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경우가 있다. 고맙기도 한데, 매번 공감만 해주면 ‘얘는 내 얘기를 진짜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하는 의심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친구와의 대화보다는 연애에서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나는 상대가 해결책을 제시할 때에 그 마음을 훨씬 더 진실하게 느끼는 편이다. 설령 공감보다 우선하더라도. 그렇다면 T의 성향은 30대까지도 변하지 않는 기질이라 보는 것이 옳다.

 반면, 내가 생각해도 변하거나 혹은 성향의 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버린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은근한 내향성과 J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설픈 계획성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던데, 고등학생 때의 나와 30대의 내가 변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K-직장인이라는 신분으로 출근이라는 굴렁쇠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 사람이라 마음 한편이 자못 씁쓸하다.


 

백과사전은 내향성을 관심과 에너지가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 즉 내부로 향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로 비춰볼 때 10대나 20대 때도 이런 성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51:49 수준으로 외향성이 내향성보다 조금 더 강했을 뿐. 혼자 할 수도 있지만 함께 할 수도 있는 것들, 이를테면 영화를 보는 것, 식사를 하는 것, 여행을 가는 것 등에서 ‘개인’과 ‘집단’ 중 나는 둘 이상의 집단과 함께 행위를 하는 쪽에 가까웠을 뿐이다. 관심사를 함께 나누거나 혹은 같이 깔깔대며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는 했다. 그렇기에 때때로 나는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쪽이었고, 종종 그룹 안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51의 성향은 특히 고등학생 때 두드러져, 가장 열심히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안타깝게도(?)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당시 E였던 나와 함께 했던 친구들은 지금 내 인생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계획성은 또 어떤가. 나는 지금도 여행을 갈 때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면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는 즉흥적인 P의 성향은 작게는 친구들과의 약속, 크게는 여행에서 아직도 강하게 작용한다. J인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 군말 없이 따르는 편이고, 기대도 안 하고 갔는데 예상외의 매력을 발견한다면 더 큰 감동을 느낀다. 나는 지금도 이런 나의 성향이 좋고,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 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들, 특히 일과 관계에 있어서는 P의 성향은 난데없고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모종의 불확실함은 몇 번이고 두드려보며 불확실함을 간파하려고 든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에 있어서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나와 결이 맞을 수는 없다. 20대 신입 햇병아리가 처음 도착한 조직은 평화로운 편이었으나 어쨌든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이래저래 오가는 말들이 많았고 동기 하나의 말실수가 크게 와전되어 상사에게 불려 가는 것도 지켜봤다.

 에피소드는 많지만,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말이란 자고로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은 잘하는 것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이 문제로 뒤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태도도 좋지 않은 편이며, 이 불평불만은 보통 직장 동료들과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상황이나 혹은 과하게 솔직할 때 튀어나오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 E의 성향을 묶어두는 편이다. 물론 사교적인 것과 말이 많고 솔직한 것은 다른 문제이나, 보통 사교적일 때 솔직해지는 쪽에 가까운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직장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간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와 직장에서의 나는 대체로 다르며, 그렇기에 이직 초반에는 ‘차가워 보인다’, ‘다가가기 어렵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한번 친해진 후에는 내가 먼저 살갑게 다가가는 편이지만). 일주일 중 5일을 조심스럽게 긴장한 상태로 보내고 나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고 싶은 욕구가 싹 사라져서는, 주말은 보통 혼자서 푹 쉬고 싶어 진다. 더불어 지금은 혼자 다니는 여행, 혼자 보는 영화, 혼자 가는 카페, 혼자 관람하는 전시회가 좋다. 혼자서 하고 싶은 대로 감상하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에너지가 충전될 때가 있는데, 요새는 확실히 그런 쪽에 더 가까워진 편이다.


 앞서 나의 변화를 ‘어설픈 계획성’이라고 언급한 데에는 J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지극히 P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시나 나에게 일말의 계획성을 심어준 환경은 직장이며, 갑자기 진행했던 신사업이 없어진다던가 혹은 스타트업에 다닐 적에 경영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내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꽤나 몸을 사리게 되었다. 일을 진행할 때에 미리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물론, 초기의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는지 중간중간 확인한다. 그렇지 않으면 빠르게 수정하거나 나의 행동을 바꿔 최대한 변화의 역풍을 피한다. 투자도 최대한 신중하게, 원금을 잃지 않는 선에서 리스크 없이 하는 편이다. 이것이 J의 성향과 크게 연결 짓긴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간에 누가 이게 좋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30대의 나는 10대의 나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우를 접했으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고, 또한 갑자기 닥쳐오는 파도처럼 급격한 흐름의 변화를 만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며, 선택에 명확한 정답은 없음을 배웠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종종 불확실했으며, 삶이란 결코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E인 내가 I처럼, P인 내가 J처럼 살아간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걸어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의 정신적 피로감과 반복되는 노동으로부터 오는 권태감, 어느 정도 사람을 파악하는데에서 오는 약간의 냉소까지. 변화의 원인이 여러모로 씁쓸한 구석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30대 신유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기특해진다. 지금까지 잘 견뎠고, 잘 버텼고, 또한 앞으로도 바뀐 나의 성향과 함께 잘 나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나의 변화가 달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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