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기를 몸 쓰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다. 남들은 재밌게들 하는 클라이밍도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팔 아프고, 다리 아프고,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든 낑낑 오르다 ‘푸드덕’ 대며 결국 떨어지고 마는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란 ‘돈 아깝다. 당장 그만둬라.’였다. 아무튼간에 게임 성격을 띤 스포츠(예를 들어 볼링, 배드민턴 등)가 아니면 잘 못하니까 흥미도 느끼기 어려워서 꾸준히 하지 못했다.
다만, 유일하게 오래 지속한 운동이 있다면 필라테스다. 작년 3월에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 꾸준하게 운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밌어서 한다고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초급반 클래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꾸준히 잘 나가다가 너무 가기 싫어서 약 두 달간을 쉬기도 했다(올 1월에는 정말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서 저번주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나의 움직임을 보시며 안타까움에 가까운 감탄사를 자주 연발하시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능글맞게 피식 거리며 ‘선생님, 좀 봐주세요’ 하는 듯한 불쌍한 눈빛을 보낸다.
재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왜 그럼에도 필라테스여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글쎄, 사실 딱히 이유는 없다. 일단 3개월치 비용을 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필라테스 학원이며, 굳어 있는 내 몸에 그나마 약간의 유연성이 생기기 때문일까? 지속하는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냥 한다. 정말 그냥. 멤버십을 끊어놨으니까, 그래서 결석하면 돈이 아까우니까, 미약하나마 단련 중인 근력을 계속 키우기 위해서, 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밤마다 레깅스를 입는다. 그리고 나선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지금은 필라테스할 시간이니까 다녀와야지,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나는 연초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살겠다는 문장 형식의 방향성 또는 키워드를 다진다. 원하는 것을 내 손으로 직접 기록하면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리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나는 한 해 가장 이루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적는다. 일상을 꾸리는 방향도 대체로 한 문장으로 완성된다. ‘다이내믹하게 살자’, '내 리듬대로 일상을 꾸려가자’, ‘활력소를 찾자’ 등 추상적이지만 나 자신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이처럼 작년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완성되던 한 해의 그림이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작년에 이별과 이직이라는 굵직굵직한 것들을 경험했고 현재 안정을 찾는 과정인지라 목표가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큰 목표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대하는 태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설정하고는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어떻게,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이러한 방향의 부재는 실로 오랜만이라 다소 당황스럽긴 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필라테스를 가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왜 꾸역꾸역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가? 못하지만, 재미도 없지만, 그럼에도 운동은 하긴 해야 하니까, 그리고 멤버십을 끊어놨으니까 그냥 가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끝나고 나면 그래도 오늘 하루 뭐라도 했다는 소박한 성취감이 이유라면 이유랄까.
그렇다면 올 한 해를 필라테스를 하는 마음으로 꾸려나가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며, 그렇기에 거창한 목표도 없고 2024년의 방향성도 정의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냥 하자-라고. 다만 필라테스 선생님의 동작을 어떻게든 따라 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주어진 나의 일에서, 또는 주변인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을 열심히, 충실하게 지내자고. 할 때는 힘들지만 운동이 끝난 후 맞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2024년은 일상의 작은 성취감을 벗 삼을 생각으로 그냥, 꾸준히, 지속적으로 나아가보자고 생각한다.
못하지만 꾸준히 할 것이다. 비록 초급반이지만 성실하게, 중급반을 올라가건 말건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몰입해서. 그리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되뇌며 잠자리에 들어야지. 올 한 해는 그렇게 살겠다.